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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재출항 '진화위' 선장 정근식 "과거사 규명은 삶·철학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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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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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다시 시작]③ 2기 위원장 인터뷰…"소명에 응답할 것" "미진했던 과거사 조사 및 과거 여성·아동 문제까지 다룰 예정"

[편집자주]국회 앞에서 농성하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지난해 927일 만에 천막을 걷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2020년 12월 10년 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뉴스1>은 과거사 피해 현장을 찾아가 목소리를 듣고 정근식 진화위 2기 위원장과 만나 해법을 모색한다.

정근식 진실&middot;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6일 서울 중구 진실&middot;화해위원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2021.1.6/뉴스1 &copy; News1 오대일 기자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2021.1.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박종홍 기자 =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정근식 위원장(63)은 통이 컸다. 지난 30년 동안 학계에 있으면서 피해자들을 수도 없이 만나며 이해의 폭이 커졌고,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진실을 찾고자 하는 그들의 소망을 화통하게 받아주리라는 기대도 받고 있었다.

최근 진화위에 진상규명 신청을 하러 온 서산개척단 피해자들을 위원장이 사전 약속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 넘게 독대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는 점은 그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열려있는지를 보여준다.

30년 넘게 전남대·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한국 현대사와 관련한 학계를 이끌던 정 위원장은 이번 진화위에서 첫 공직을 맡게 됐다. 수십년 간 들어오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꺼낼 적기이기도 하다.

<뉴스1>은 정 위원장을 만나 10년 만에 다시 열린 진화위의 활동 방향과 과거사 문제 해결 방법 등에 대해 물어봤다.

◇"간첩 몰린 아버지 말하던 섬 주민, 밤새도록 통음하며 이야기 꺼내"

그는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시절, 1990년대 초반, 전남 완도군 소안도에서 만난 동네 주민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과거사 문제에 본격적으로 접근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만난 주민은 정 위원장 앞에서 소주를 병으로 마시면서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털어놨다고 한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는데 해방 후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고 간첩으로 몰려 가문이 풍비박산이 났다는 것이었다. 독립운동을 한 다른 이들은 마을의 기념탑에 명단에 올려졌지만 그의 아버지는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 양반이 소주를 댓 병 갖다놓고 밤을 새워가며 통음을 하면서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냈어요. 당신은 내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

과거사 문제를 연구하는 일은 가느다란 실로 엮여있는 실타래를 하나씩 푸는 것과 같았다. 정 위원장은 소안도의 항일 기념탑과 이를 둘러싼 마을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얽힌 실을 하나하나 풀듯이 모두 담아 논문으로 완성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국가폭력 피해자 생존자와 유족들, 이들이 살았던 현장을 찾아가 역사를 대면했다. 경산 코발트 탄광 학살터, 고양 금정굴, 진주 민간인 학살터,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터, 강화도 학살터, 오마도 간척터. 그렇게 꼬여있던 실타래를 찾기 위해 전국을 뚜벅뚜벅 다녔다.

정근식 진실&middot;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6일 서울 중구 진실&middot;화해위원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2021.1.6/뉴스1 &copy; News1 오대일 기자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2021.1.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과거사 문제 해결, 더 높은 정치공동체 위한 조건"

과거사 문제의 원점에 대해 묻자 정 위원장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분단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전쟁의 와중에서 생존투쟁을 경험했고, 국가권력에 대한 반대를 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 폭력이 자행되었다"고 처음을 짚어냈다.

그는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적 도리를 넘어선 것이 많이 있다"며 "때때로 법률로 치유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적 도리를 중요시하는) 자연법적 원리로 해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공소시효가 끝났던 문제도 과거사 문제로 끌고 올 수도 있다. 정 위원장은 "실제 진화위가 갖는 어려움은 왜 우리가 이 시기에 과거사를 정리해야하는 것이냐는 의문에 대해 답해야 하는 점이다"라며 "사실 과거사 문제는 인간의 삶과 철학,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철학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져야 국가와 피해자 또는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미래 세대들이 더 이상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진화위2기가 만들어진 것은) 우리 스스로가 대한민국을 한 단계 더 높은 정치 공동체로 만들자는 주문을 한 셈"이라며 "새로운 역사적 소명에 대한 응답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middot;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민원실에서 진실규명 신청을 하기 위해 찾아온 한 시민이 빼곡히 정리한 자료를 들고 있다. 2020.12.10/뉴스1 &copy; News1 김진환 기자
10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민원실에서 진실규명 신청을 하기 위해 찾아온 한 시민이 빼곡히 정리한 자료를 들고 있다. 2020.12.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복지원·여성·아동 인권문제 두루 다룰 것"…배보상 문제도 언급

지난 2010년 5년 간의 임기를 종료한 진화위 1기 활동에 대해서 그는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진실에 기초한 사회통합의 문제를 던진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며 진화위 결정을 바탕으로 재심이나 국가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정 위원장은 "정부 부처에 권고한 사항들 이행과 관련해서 현재까지 완료되지 않는 등 미흡한 부분도 있다"며 "1기 위원회 활동이 마무리 된 이후 지난 10년 동안 국민들의 인권의식도 향상돼 당시에는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들도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계획 중인 것이 있냐'묻자 정 위원장은 "당면 과제로는 형제복지원 등 신규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건과 미진했던 과거사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중·장기적으로는 관련 부처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 건립을 점검하고 1기 진화위 권고사항 등이 이행되고 있는지도 점검할 방침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생존자와 유족 관계자 간담회, 면담, 자료조사 등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불법적 입소경위, 시설 안 불법행위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예정이다. 4일 기준으로 형제복지원과 관련된 진상규명 신청은 지자체를 포함해 총 223건이다.

그는 이어 "진화위 1기 때는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직접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문제가 주로 과거사 문제로 인식이 됐고 여성과 아동 문제는 상대적으로 약했다"며 "정인이 사건도 사실 과거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을 수 있다"며 과거 아동 학대 문제까지도 진화위2기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암시했다.

배상과 보상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높아진 인권감수성의 차원에서 보면 사회적 치유와 함께 법률적 치유인 배보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여야 합의가 안 돼 문제다"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해 포괄적인 배보상을 하라는 것이 1기 진화위의 권고사항이기도 했다"며 "앞으로 입법부와 관련부처 등과 협의해 입법적으로도 배보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배보상 문제와 관련해서 국회에는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말 대표 발의한 과거사법 개정안이 존재한다.

정근식 진실&middot;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6일 서울 중구 진실&middot;화해위원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1.6/뉴스1 &copy; News1 오대일 기자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1.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진화위를 믿고 와서 조사관이나 위원장 등에게 언제든지 하소연해달라"

정 위원장과 진화위 2기에 거는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관심도 높다. 21일 기준으로 진화위2기에 제출된 신청은 1200건이고 신청인 수는 2000명이 넘는다. 지난 1기 때 첫 달에 367건이 들어온 것에 비해 3배가 넘는 신청이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진화위 2기가 1기와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진실규명 신청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됐다는 점이다. 아울러 비공개이긴 하지만 위원회 조사방법 중에서 청문회 규정이 신설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정 위원장은 "과거사 관련해서 청문회 규정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신청 건들을 신중하게 검토할만한 인력을 빨리 충원해야하는데 과정이 지금 더딘 면이 있어서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신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위원회 구성이 늦어져서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화위 2기 위원회는 현행법상 대통령이 추천한 위원장을 포함해 여당 추천 4인, 야당 추천 4인인 총 9명으로 구성된다. 국민의힘에서 추천한 정진경 변호사가 최근 성추문 의혹으로 임명 전에 위원직을 사퇴했으며 아직까지 야당 추천 위원 1명이 비어있다. 위원회 구성이 되지 못해 진화위2기는 직원채용 등 실무적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정 위원장은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이제는 진화위를 믿고 목소리를 내주십시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신청하고, 하소연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위원장이나 조사관 등에게 언제든지 와서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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