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사건'에 성추행 말고 "성희롱"…인권위의 선택, 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인권위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 안건을 의결했다./사진제공=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 25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 대해 5개월여의 직권조사를 거쳐 '성희롱이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박 전 시장의 비서에 대한 성추문을 사실로 인정한 것이지만, 일각에선 '성추행' 표현이 없어 사건을 축소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인권위의 조치가 부적절했다는 논란이 재차 제기됐다.

인권위는 피해자인 비서 A씨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자료와 진술, 이를 직접 보거나 들었다는 참고인의 진술 등을 토대로 "박 전 시장이 늦은 시간 A씨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A씨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이라며 "피조사자(박 전 시장) 진술을 청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관계를 엄격하게 인정했지만, 인정 사실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부연했다.

인권위의 이 같은 결론에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은 "성희롱일 뿐 성추행이 아니다", "손톱 만진 게 성추행이냐", "성희롱도 객관적 증거는 없다" 등의 게시글을 올리며 반발하고 있다. 인권위 발표가 '성추행' 대신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면서 논란을 부추긴 셈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후 서울광장에 차려졌던 분향소. 2020.07.13. /사진제공=뉴시스

성희롱은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서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유형 등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범주의 단어다. 육체적 성희롱이 성추행을 포함한 개념인 만큼, 인권위의 성희롱 표현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희롱은 형법상 처벌 가능한 죄목이 아니며, 행위 유형과 대상에 따라 다양한 죄목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반면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을 수반하는 '성추행'은 해 성폭력범죄특례법에 처벌이 규정돼 있다. 단어의 사전적 정의와 관계없이 대중이 성희롱과 성추행을 달리 인식하는 이유다.

이처럼 '성희롱·성추행' 표현을 여론이 어떻게 수용할지 살폈다면, 인권위가 박 전 시장의 집무실 내 피해자에 대한 신체적 접촉을 인정하고서도 성추행이 아닌 성희롱 단어를 쓴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법원도 박 전 시장에 대해 성추행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지난 14일 법원은 A씨 성폭행(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장 전 직원에 대한 판결문에서 A씨의 상담 내용에 비춰 보면 A씨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인 피해를 받았다는 게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인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26일 SNS에서 "인권위 발표를 보면, 누가 봐도 성추행의 구체적인 사례인데 인권위는 성추행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며 "인권위의 줄타기 쇼"라고 강력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