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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싸우라"는 총리와 K배터리[오동희의 思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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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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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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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한 토론회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3년째 이어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당국자로서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정부가 개별기업의 쟁송에 관여하는 모습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총리의 발언을 마냥 나무랄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정 총리는 28일 서울 양천구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K-배터리의 미래가 앞으로 정말 크게 열릴텐데 작은 파이를 놓고 싸우지 말고 양사가 나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우리 기업끼리 소송전을 벌여 수천억의 비용과 시간이 드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의 다툼이 경쟁국들에게 어부지리가 될 것에 대한 우려도 담겨 있다.

2차전지 사업 초기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연구개발을 지원해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훈수를 둘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사업화 이후 열심히 기술을 개발한 기업들의 경영 행위에 총리가 개입하는 것은 자칫 관치논란을 불러올 수 있어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정 총리를 마냥 비판할 수도 없는 것은 지난 3년간 양사의 소모전을 지켜본 정부로서 국가적 차원의 해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 경쟁력을 따지는 정치인과 주주의 이익을 따지는 기업 경영자 입장의 차이다. 총리 입장에서는 두 기업 모두 '대한민국 기업'이고, 미국에서 둘이 싸우는 데 투입하는 시간과 돈이 결국은 우리 국부의 손실을 가져온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 옳으냐는 대체적으로는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갈린다. 앞선 국내에서의 세 차례에 걸친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 판결에서 법원의 판단이 갈린 것도 이런 이유다.

1심 법원은 헌법에 정해진 직업선택의 자유를 더 큰 가치로 보고 회사를 옮긴 직원들과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줬다. 직업선택의 자유인 이직을 제한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1심이 SK의 손을 들어준 이유였다.

반면 2심과 대법원은 직업선택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이보다는 LG가 지켜야 할 영업비밀의 가치가 더 크다고 봤고, 이직한 직원들이 재직시 받았던 임금과 성과급 등에는 전직금지 기간의 비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 LG화학 (831,000원 상승59000 -6.6%)(현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줬다. 국제무역위원회(ITC)도 LG의 손을 들어줘 최종 판결만 앞두고 있다.

사실 두 기업 전문경영인 입장에서는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인 것은 맞다. 싸움을 멈추고 밀릴 경우 CEO 자신의 안위까지 걱정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해법은 두 기업 총수들에게 찾을 수밖에 없다. 대승적 차원에서 한발씩 양보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최태원 SK (262,500원 상승14500 -5.2%) 그룹 회장과 구광모 LG (93,900원 상승2400 -2.5%) 그룹 회장이 최근 사적 모임을 자주 갖고 재계 공통의 현안을 논의하는 만큼 양사의 문제에서도 좋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과거 삼성 그룹이 '지역전문가' 제도를 두고 직원들을 해외연수를 보낼 때의 일이다. 1990년대초 1인당 5억 정도의 비용으로 200명씩 1년간 해외 각지로 보낼 때니 연간 2000억원이 드는 큰 사업이었다.

그런데 지역전문가를 다녀온 직원들의 이직이 늘어나자, 전문경영진에서 이 제도를 없애자는 보고를 이건희 당시 회장에게 했다. 이에 이 회장이 "지역전문가로 다녀온 친구들이 어디로 이직하냐"고 물었고, 그 경영진은 "국내 경쟁사 등으로 옮긴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삼성에서 인력을 키워서 국내 다른 기업으로 이직하면 그 사람들도 다 우리나라 자산이니 외국으로 안 나가면, 국가 전체적으로는 손해가 없는 것이니 제도는 그대로 시행하라"고 했다고 한다.

오는 3월 타계 20주기를 맞는 아산 정주영 회장이 현대건설을 운영할 때도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

이런 생각을 국가주의적 사고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외국으로의 이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의 고민도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기업의 기술자원과 영업비밀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다. 그렇다고 한국기업끼리 시장 개척에 쏟을 힘을 소송전으로 보내는 것을 마냥 놔둘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남의 나라 변호사들과 법의 힘을 빌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정도의 해결능력이라면 정부의 개입을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달 10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이 전에라도 대승적 합의의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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