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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통계를 늪에 빠트린 미디어[오동희의 思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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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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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통계를 늪에 빠트린 미디어[오동희의 思見]
약 14년간 국내 굴지 기업의 사장과 CEO를 지내고 지금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인과의 점심 자리에서의 일이다.

‘사실에 충실하지 못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문득 2019년 국내서 번역 출간된 ‘팩트풀니스(FACTFULNESS: 사실충실성)’(김영사)라는 책의 앞부분에 있는 13가지 질문에 대한 정답률을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책에서의 질문은 대체로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와 같은 식이다.

전세계 극빈층의 비율, 여성의 교육기간, 기대 수명, 자연재해 사망자 수 등을 객관식으로 묻는 13개의 질문 중 기자가 두 개(정답률 15.4%)를 맞혔다고 하자 그는 3문제(정답률 23.1%)를 맞혔다고 했다.

기자는 인간의 평균정답률인 16%를 조금 밑도는 수준이었고, 그는 평균을 넘어서는 수준이긴 했지만 침팬지가 찍어서 맞힌 평균 정답률인 33%에는 못미쳐 ‘도긴개긴’이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참모습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는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게 저자 한스 로슬링의 주장이다.

세계적인 통계학자이자 스웨덴 ‘국경 없는 의사회’ 공동 창립자인 한스 로슬링은 이 책에서 인간은 사실 그 자체보다는 극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세상을 더 나쁘게 보게 된다고 했다. 여기에는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미디어의 역할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과정에서 자주 거론됐던 ‘OECD 국가 중 산재사망율 1위 국가’라는 오명은 그 어떤 재계의 반대 목소리보다도 울림이 컸다. ‘산재 1위’라는 숫자는 다른 어떤 명분보다도 선명하고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산재 사망율 1위’라는 통계수치의 뿌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OECD 37개국이 산업재해를 보는 시각이나 방법, 데이터를 추리는 기술 등이 통일되지 않고 제각각이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는 것이 취재 중 들은 전문가들의 일관된 목소리였다.

문제는 학술적 논의를 위한 통계 자료에서 ‘무의미’하다고 한 그 지점을 미디어가 파고 들어 세상을 두 갈래로 갈라치기 하면서부터 사실이 왜곡됐다. 우리가 적용하는 통근재해는 포함시키지 않고, 사고 후 1년 이내 사망자만 통계에 넣고, 뇌심혈관질환은 산재에서 제외하는 영국보다 산재 사망율이 10배 높다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ILO의 OECD 국가 10만명당 치명율’ 1위라는 불명예인데, ILO에는 시기와 내용을 정확하게 비교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통계의 기본은 같은 기준인데 ILO에는 산재사망 관련 서로 다른 기준과 서로 다른 시기의 각국의 데이터만 존재할 뿐이다.

2010년 한 언론이 산업안전보건공단 용역조사보고서를 토대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고, 문제를 단순화해 극적으로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만들었다. 기사 말미의 ‘국가간 통계 기준이 달라 단순비교는 어렵다’는 면피용 멘트 한 줄은 ‘한국 OECD 중 산재사망률 1위’라는 극적 제목에 가렸다.

산재 사망율 1위라는 통계는 그렇게 고착화되고, 이제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됐다. 혹자는 산재 사망율 1위는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자가 OECD 평균을 넘어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아니냐고 할 수 있다. 맞는 얘기다. 그렇다고 가장 나쁜 나라와 나쁜 기업이라는 오명을 억지로 쓸 이유는 없다.

한스 로슬링은 우리의 착각과 달리 세상이 나날이 진보하고 있음을 데이터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안타까운 산재 사고 소식이 뉴스를 통해 계속 들리지만, 사실 통계청의 산재 사망만인율(o/ooo으로 표기)을 보면 1994년 34.1o/ooo에서 매년 낮아져 2019년 4.6o/ooo으로 29.6o/ooo 포인트 개선됐다.

산업재해 제로가 되는 그날까지 산재를 줄이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다만 정치적 구호나 포퓰리즘을 배제한 정확한 통계의 기반 위에서다. 그동안 산업재해로 다친 근로자의 쾌유를 빌며,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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