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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실패에 기회 주길 인색한 사회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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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1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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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타지에서 공통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가까워진다. 20대 중반을 넘겨 대학에 입학한 A와 나는 머나먼 타지에서 금세 친해졌다.

A와 나는 열정만으로 통하지 않는 세상을 이미 경험한 상태였다. "대학 졸업장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운이 좋아 차별을 아직 겪지 않았거나 적어도 평균 이상의 학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A는 늘 쪼들리며 생활했다. 그의 형편상 유학은 기로에서 던진 승부수나 다름없었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가야 할 거리를 걸어서 이동했고 끼니때면 초콜릿으로 해결하곤 했다.

한 번은 카페에서 커피 '리필'을 해달라고 했다가 면박을 당했다. 대신 화내려는 나를 그는 붙잡았다. A는 순간의 수치심보다 앞으로 날들이 더 걱정이었다. A는 "정말 악착같이 모았어, 악착같이 유학비를 끌어모았다"고 말하곤 했다.

졸업 학년이 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수십 곳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한여름에 짙은 색 정장을 입고 어느 날은 강남으로, 다른 날엔 종로로, 또 다른 날엔 여의도로 향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글 쓰는 일 말고 다른 길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면접이 끝나고 편집국 간부가 다가와 잠시 대기하라고 하더니 이내 합격 통보를 전해왔다.

그 무렵 A와는 연락이 뜸해졌다. A는 나보다 더 근성 있고 어른스러웠으며 열심히 공부했기에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취업한 지 3개월쯤 됐을 때 A와 연락이 됐다. A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했다. 유난히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그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고생했는데'라고 차마 위로할 수 없었고 앞으로 계획을 물을 수 없었다.

며칠 뒤 A의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지만 받지 못했다. "밥 한번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A에게 전화했는데 다른 사람이 받고선 울먹이며 "A가 떠났다"고 말했다.

시간이 모두 정지된 채 '떠났다'는 말만 또렷하게 울렸다. 밤이 깊어지고 침묵이 이어지는데 누군가 빈소에서 술잔을 스스로 채우며 외쳤다.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길이 열릴 줄 알았는데 막상 귀국해보니 그렇지 않았어. 세상은 예상과 완전 딴판이었어."

마치 A가 하는 얘기 같아서 주변은 울음바다가 됐다. 2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던진 '승부수'가 통하지 않았을 때 개인이 그 책임을 홀로 감당하는 게 맞는 것일까. 그날 빈소에 모인 누구도 A의 선택을 그의 책임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는 것에 한국 회는 여전히 인색하다. A가 떠난 지 8년이 지났으나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자살 예방 기획 '극단선택 끝내자'를 준비하면서 실질적인 대책을 보도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실질적 대책보다 더욱더 필요한 것은 근본 대책이었다.

실패해도 극단선택 충동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근본 대책이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그런 사회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실패할 자유가 없는 나라여서 파국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며 "게다가 극단선택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과 관련 지어 인식하는 경우가 두드러진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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