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 아니야"…'학폭 피해'로 힘든 그대에게

'학교 폭력'이 벌어졌다. 가해자를 향해 분노한다. 네가 인간이냐고, 똑같이 당하라고, 넌 인생 끝났다고, 강하게 벌하라고, 사회서 매장 시키라고, 다신 눈에 안 보이게 하라고.

그래서 다소 후련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남았다. 원치 않게 학폭 피해를 당한 이들의 소중한 삶. 학생이거나, 학생이었던 피해자들이 감내하는 것들. 우린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싶다. 진정 그들을 우리 곁에서 다시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학폭 피해자들과 전문가들을 취재한 내용을 대화 방식으로 구성해 봤다. 생판 모르는 남이 아니라, 내 친구, 내 지인, 내 딸, 내 아들이라 생각하고 읽어주기를. 실제 그들이 겪은 이야기이므로.

제가 좀 아픕니다

/사진=픽사베이

소중이(학폭 피해자): 꽤 오래 전 일입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그X에게 이유 없이 맞았습니다. 쉬는 시간엔 머리채를 잡고 안 놔줬고요. 지나가면 발을 툭 걸어 넘어뜨렸고요. 제게 청소도 시켰고요. 괴롭힘은 1년 넘게 계속 됐습니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그X만 생각하면 우울합니다. 억울합니다.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졸업 앨범 사진 속 그X 얼굴을 칼로 수백 번 그었지만 용서가 안 됩니다.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이 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자식까지 돌아갔으면 합니다.


토닥이(전문가): 많이 어리고 예민한 나이였을 겁니다. 그런데 세상이 이런 곳이구나, 배우게 됐을 겁니다. 강자가 약자를 장난치듯 괴롭히고요. 그런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무력감도 들었을 테고요. 가장 약할 때, 처음 시작할 때 그런 폭력을 당한 겁니다. 이 사회가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소중이: 특히 일진 녀석이 저를 때릴 때, 그로 인해 다들 저를 피할 때, 홀로 남은 것 같은 기분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토닥이: 학폭을 겪으면 피해자 대부분이 고립됩니다. 주변 친구들이 안 당하려고, 강한 자에게 몰리기 때문이지요. 함께 살고, 함께 보고, 함께 생각하기에 인간인데 그 고리를 끊은 겁니다. 괴롭힘 뿐 아니라 고립되는 힘듦까지 겪은 겁니다.

고립을 유발하는 폭력을 당하면, 뇌에서 죽을 때 나오는 신호들이 나옵니다. 진짜 죽는 것만큼 아픈 겁니다. 실제 공 돌리는 게임을 할 때, 한 명만 따돌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러니 뇌에서 계속 매 맞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고요.(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소중이: 정말 그랬습니다. 심할 땐 자해하기도 합니다. 심리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요. 밤에 잠을 자는데 복통이 심해 응급실을 간 적도 있었습니다. 검사하니 아무 이상도 없었어요. 우울감이 바닥에 떨어져 죽고 싶단 생각을 하고, 실제 죽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토닥이: 계속 반복돼 떠오르고, 비슷한 이를 회피하고, 깜짝 놀라는 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맞습니다. 심하면 환청이 들리고 환각이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대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겁니다. 6개월 넘어서도 그러면 전문가 상담과 치료가 필요합니다.(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저는 왜, 그렇게 힘들어야 했을까요
소중이: 때론 학폭 피해를 당한 게, 다 제 잘못인 것 같아 자책할 때도 있습니다.

토닥이: 피해 학생들끼리 모여 있는 '해맑음센터'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내가 X신이어서 당했나", "바보라서 당했나", 이렇게들 말합니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거지요. 그럴 때 아이들끼리 서로 이렇게 위로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침묵하는 것보다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해"라고요. 같은 상처를 입은 친구들의 말에 힘을 얻지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불씨가 됩니다.(차용복 해맑음센터 선생님)

소중이: 저는 왜 그렇게 힘들어야 했을까요. 어떻게 해야 괜찮았을까요.

토닥이: 가해자가 행동을 뉘우치는 걸 느꼈다면,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고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정말 미안해하고, 그게 느껴지면 어느 정도 풀리는데 그렇지 않으니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그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가해자에게 "명백히 네 잘못"이라고, 피해자 편에서 설득하는 과정이 있으면 좀 낫습니다. 그런 게 없으면 더 힘든 겁니다.(이현숙 탁틴내일 대표)

피해자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법소중이: 지금은 가해자에게 사과조차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이 듭니다.

토닥이: 피해자가 용서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사과를 계속 해야하는 겁니다. 1년이 걸릴 수도, 10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 결과로 상대방은 말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잖아요. "힘들었던 너의 10년을 사과할게", 그렇게 해야하는 겁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미안해", 그게 최악의 사과입니다. "야, 나와봐. 내가 사과할게." 이건 또 다른 폭력입니다. 대중에게 하는 게 아니라, 일대일로 하는 거고요. 가해자가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하는 실수인 겁니다. 큰 사과 하나로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게 가장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사과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는 문화가 많아서 그렇지요. 어른이라고 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걸 위해선 가해자도 교육이 필요한데, 전문가가 도와줘야 하는 겁니다.(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절 위해 뭘 하면 좋을까요

/사진=픽사베이

소중이: 살아 있는 모든 날이 '분노'로 채워질까 걱정입니다. 시간이 흘렀고, 마주치지 않으니 괜찮겠지 하다가도, 어디선가 우연히 만날까 두려워합니다. 그런 제 모습에 화도 나고요. 계속 이런 시간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토닥이: 주기적으로, 반복적으로 시간을 내어보세요. 위로하면서 "넌 괜찮아" 이렇게요. 아무도 날 위로해주지 않아도요. 내가 날 위로하는 건 '자기 지지'입니다. 혼자 있는 경우가 많지요. 물론 주변에서 해주면 더 좋습니다.

작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것도 좋아요. 종이를 접어서 만드는 소소한 거라도, 내게 선물하고 칭찬하고 그렇게 말입니다. '너도 뭔가 할 수 있어', 그렇게 무력감을 해소하는 것도 좋습니다.(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피해자를 위한 '섬세함'으로

/사진=해맑음센터

소중이: 학폭 상처를 잘 치유한 친구 이야기도 해주실 수 있나요.

토닥이: 경북 지역에서 학교 폭력 피해를 당한 친구가 있었어요. 해맑음센터에 있었지요. 그 때 담임 선생님, 상담 선생님이 와서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얘길 나눴습니다. 학교로 돌아갈 때쯤엔 아이가 불안해 하자, 그 선생님이 나섰습니다. 아이가 친하게 지냈던 애들과 반을 다시 편성해주고, 가해 학생은 먼 학급으로 분류시켰고요. 2차 피해를 겪더라도 꼭 돕겠다고 안심을 시켜줬지요.

그 친구는 학교로 돌아가 잘 적응했고, 지금은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고 있어요.(차용복 해맑음센터 선생님)

소중이: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네요.

토닥이: 무슨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런 마음 하나로 큰 힘을 얻고, 큰 위로를 받습니다. 이게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닐까요.(차용복 해맑음센터 선생님) 시스템보다 더 필요한 건 '섬세함'입니다. 피해자들 심리와 마음 상태를 고려하면서 사안을 풀어가는 게 필요해요.(이현숙 탁틴내일 대표)

그X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소중이: 언젠가 저는, 그X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토닥이: 언젠가는 피해자인 분들도 본인을 위해, 용서를 해야해요.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인해, 평생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 2차 세계대전서 유대인들이 나치 악행에 대해 말한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겁니다.

용서도 사람이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거예요. 신체와 마음이 같은 굴레에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정신력으로 극복하라'하는데 잘못된 겁니다. 몸과 정신이 같이 망가진 거니까요.

그러니 잘 먹고, 잘 드시고, 잘 주무시라고 합니다. 건강해질 수 있게 스스로도, 옆에서도 할 수 있고요. 그동안 많이 지쳤고 많이 힘들었을테니까요.(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