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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말에 담긴 권위의 무게를 감당하라 [서초동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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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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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많은 사건들이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모여 듭니다. 365일, 법조타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인간의 체온인 36.5도의 온기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주문이 헌법재판소 재판정을 울렸다. 우리 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던 헌재는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는 탄핵사건을 마주한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가 의결된 법관 임성근 부장판사가 그 대상이다.

현직 판사의 탄핵소추는 그 자체로 사법부의 오욕이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번 탄핵 사건과정에서 불거진 대법원장의 거짓말이다.

임 부장판사는 사퇴를 결심한 2020년 5월경 김명수 대법원장을 찾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기억한 그날의 대화는 서로 달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의 사표 반려에 탄핵 등의 사유를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임 판사가 녹취를 공개하자 대법원장의 해명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물론 임 부장판사가 대법원장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을 두고 잘했다고 편들 생각은 없다. 허락없이 녹취를 한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신뢰를 저버린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을 '밥한번 먹자'며 지키지 못할 말을 내뱉는 일상사의 빈말과 같은 급으로 여길 수는 더더욱 없다.

김 대법원장은 비대법관 출신이자 전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보다 13기수 후배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낸 그는 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으로 피폐됐던 법원의 현실을 일갈하면서 진상규명을 강도높게 촉구했다.

당시 파격이라는 세간의 평가 속에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김 대법원장은 "31년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이라며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보여드릴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로 현장 판사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장을 알고 재판정에서 마주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읽고 있다며 추락한 법원의 신뢰를 높이고 국민을 위한 대법원장으로서 역할을 다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던 것이다.

취임 이후에는 법원행정처 혁파에 나섰다. "관료화되고 폐쇄적인 법원의 구조 때문에 법관들이 독립적이고 양심적인 재판기관으로 헌법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국가 최후의 보루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정의롭고 독립된 법원이라는 가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법원이 선명성, 공정성, 독립성이라는 당연하지만 어려운 과제를 이뤄내기를 국민은 현장에서 30여년을 보낸 새로운 대법원장에 바랐다. 그 희망의 크기 만큼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과 좌고우면의 행보는 그래서 큰 실망감으로 다가온다. 취임 때 보였던 전투력은 사라지고 녹취 속의 그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 그냥 수리해 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하잖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망루에 올라 그저 바람결(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승망풍지(乘望風旨)의 모습으로 남았다.

사법부는 김 대법원장 말대로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라 불린다. 법적 사건이나 분쟁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한다. 판사들은 직업적으로 거짓말을 가리고 정의와 불의를 판단해야 한다. 재판정에 선 사람들은 판사의 판단에 운명이 뒤바뀐다. 하지만 판사의 판단에 거짓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판단을 수긍하고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하물며 대법원장마저 거짓말 하는 형국이라면 어떠할까.

바다의 물결이 물고기의 비늘에 새겨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우리 사법부 역사에 고통스런 상흔을 새겼다. 대법원장이 한 거짓말의 수치는 일선 법관들에게 전이된다. 그래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간 김 대법원장은 재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거나 어려운 문제 일때는 뒤로 물러나 있었다. 재판의 결과로 법원이 여론의 공격을 받거나 정치권의 질타를 받을 때도 앞에 나서서 외풍을 차단하는 모습을 보인 바가 없다. 그러면서 본인이 쇄신을 주장했던 인사에 있어서는 친정부 코드인사로 분란을 자초했다. 거짓말에 코드인사, 조직을 지키지 않는 대법원장의 모습은 국민들이 사법부에서 구현되기를 바라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대법원장의 말은 범인(凡人)의 말과 무게가 다르다. 명사(名士)의 말은 지위 그리고 그가 걸어온 길에 따라 보다 큰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의 말에 담긴 무게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다면 그것은 꽤 안타까운 일로 기록될 것이다.

배성준 부장(법조팀장)
배성준 부장(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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