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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환해지는 나의 아지트 나의 퀘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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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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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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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 빼기:道 -8 / 나의 퀘렌시아 완성하기

눈 감으면 환해지는 나의 아지트 나의 퀘렌시아
앞으로는 바다입니다. 에메랄드 빛 바다입니다. 마당을 질러 돌계단을 내려가면 반달 모양의 은밀한 해안이 열립니다. 살랑대는 그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싶군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황금빛 노을에 잠기고 싶군요. 뒤로는 언덕입니다. 푸른 언덕입니다. 그 언덕 너머로 오솔길이 구불구불 이어집니다. 언제든 그 길로 마음껏 거닐 수 있습니다.

집은 원통 모양에 원뿔 지붕입니다. 30평 남짓인데 천정이 높은 복층 구조지요. 둥근 곡면을 따라 긴 띠처럼 창이 나 있습니다. 단, 오른쪽과 왼쪽 벽면은 통째로 책장입니다. 큼직한 스피커도 양 편에 놓여 있군요. 원형의 넓은 거실은 훤히 비어 시원합니다. 바다 쪽으로 널찍한 책상이 있고, 적당한 자리에 편한 의자와 테이블도 있군요.

여기는 나의 아지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나만의 안식처지요. 나만 알고 나만 들락이는 비밀 공간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당장 눈을 감으면 조명이 탁 켜지듯 머릿속에서 환하게 그 집이 나타납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당도하는 거지요. 나는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노을에 젖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습니다. 고단한 몸을 누이고, 번다한 시름을 내려놓고, 어수선한 감정들을 보듬습니다. 몸과 마음을 북돋아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이 아지트의 이름은 '퀘렌시아 태평'입니다.

투우장의 황소가 전의를 가다듬는 곳을 스페인 말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한다지요. 퀘렌시아는 황소만 아는 그만의 안식처입니다. 투우사와 겨루던 황소는 틈틈이 그 곳으로 가서 거친 숨을 고르며 쉽니다. 그 잠깐 동안에 기운을 차리고 힘을 모아 다시 내달립니다. 그런 곳이 없으면 생사가 달린 그 살벌한 싸움터에서 황소는 미쳐버릴 겁니다. 돌아버릴 겁니다.

제 산골 집은 '태평家'입니다. 심심산골 태평家에서 태평歌를 부르며 살겠다는 뜻으로 애초부터 이렇게 지었지요. 이 '태평家'가 물리적인 차원의 나의 집이라면 '퀘렌시아 태평'은 환상적인 차원의 나의 집입니다. 마음이 울적해서 태평가를 부를 수 없을 때 나는 퀘렌시아 태평으로 갑니다. 그뿐인가요. 화날 때도 가고, 분할 때도 갑니다. 심란할 때도 가고, 낙심천만일 때도 갑니다. 눈을 감으면 탁 켜지는 그 집으로 가서 숨을 고르며 쉽니다. 그 잠깐 동안에 기운을 차리고 힘을 모읍니다.

안타깝지만 이 환상적인 집에 당신을 초대할 수 없군요. 하지만 당신도 당신만의 퀘렌시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눈을 감고 머릿속에 꿈같은 집을 지어보시죠. 퀘렌시아 태평보다 더 멋지고 환상적인 당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보시지요. 그리고 그 집에 문턱이 닳도록 들락여 보시지요. 눈만 감으면 탁 켜지는 나만의 안식처에 언제든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설레는 기쁨인가요? 얼마나 든든한 위로인가요?

퀘렌시아는 내 안에도 있고, 내 밖에도 있습니다. 내 안의 퀘렌시아는 자기 머릿속에 직접 지어야 합니다. 내 밖의 퀘렌시아는 투우장의 황소처럼 스스로 발견해야 합니다. 체로키 인디언들은 저마다 숲속 어딘가에 자기만의 비밀 장소를 갖고 있다고 하지요. 그곳은 누가 찾아 주거나 지정해 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곳은 나하고만 주파수가 맞는 곳이어서 오로지 나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왠지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놓이고, 기운이 나고,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면 그 곳이 나의 퀘렌시아입니다. 체로키들은 저마다 그런 비밀스런 공간에서 어머니 대지의 품에 안기고 위대한 정령과 소통하나 봅니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두어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뒷산 어귀 늙은 물푸레나무가 서 있는 자리입니다. 어쩐지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곳이지요. 또 하나는 집 앞의 개울이 산자락을 감아 돌면서 여울지는 곳입니다.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지요. 저녁 산책을 할 때마다 그곳에서 저절로 멈추게 됩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쉬게 됩니다. 그와 함께 편해지고 환해지고 개운해지지요.

나의 퀘렌시아는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물론 당신도 그럴 수 있습니다. 당신만의 퀘렌시아를 안에서 짓고, 밖에서 찾아 아주 멋지게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설레는 기쁨인가요? 얼마나 든든한 위로인가요?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21년 2월 24일 (10:15)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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