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없어요. 못믿어요?" 약발 안듣는 '금리' 딜레마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에서 경제를 구하려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노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 경계감 속에 국채금리(수익률)가 뛰면서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시중 금리도 올라 자본조달 비용이 늘어난다. 주식 시장에서 투매를 부추겨 금융시장 혼란이 커질 수도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사진=AFP

로이터는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은커녕 초저금리 기조를 접을 생각이 없다고 연일 밝히고 있음에도 시장이 믿지 못하는 것 같다고 24일(현지시간) 분석했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24일 1.4%를 돌파하면서 1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 들어서만 0.5%포인트(p) 가까이 뛰었다. 연말이면 2%까지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규모 부양책과 코로나 백신 보급으로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반등해 결국엔 중앙은행이 예상보다 빠르게 통화부양책을 축소하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경제 낙관론은 금리 상승을 정당화할 수 있지만 실질 금리가 너무 빠르게 오르거나 물가 상승률을 초과할 때 문제가 된다. 자본조달 창구가 급격히 빡빡해지고 증시에서 돈이 빠져나가 결과적으로 경제 회복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10년물 국채 금리가 1.75~2.0%에 접근하면 위험자산에 파장을 던질 위험이 있다"고 봤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 3개월 움직임/사진=인베스팅닷컴

난처해진 각국 중앙은행은 당분간 완화적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잇따라 발신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23~24일 의회 증언에서 "물가 상승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며 강력한 금융 완화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문제는 중앙은행의 메시지가 시장에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월 의장이 의회 증언에서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까지는 3년 이상 남았다고 밝힌 직후에도 미국 국채 금리는 0.02%p 떨어지는 데 그쳤다.

그 이유를 두고 ING은행은 시장이 중앙은행의 초완화 정책이 끝날 것임을 점점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은행은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어찌나 광범위하고 강력한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배는 이미 항해를 시작했다"면서 "우리는 올해 말 테이퍼링이 일어날 것으로 보며 시장 의견도 이쪽으로 수렴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인사이트인베스트먼트의 에이프릴 라루세 채권 투자 총괄은 "시장은 '너무 앞서 간다'는 중앙은행의 메시지를 들으면서도 (경제가 이전보다 회복됐다는 내용의) 새 지표가 나올 때마다 중앙은행이 변심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백신 보급에 따른 본격적인 경제 개방 땐 소비가 폭발하면서 경제가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며 "이 경우 중앙은행의 강력한 가이던스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미국의 금리 상승은 유럽, 일본 등 다른 나라의 금리까지 끌어올리며 파장을 던지고 있다. 독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해 11월 -0.6%에서 이달 -0.3%까지 올랐고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0.12%로 2018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파월 의장은 국채 금리 상승과 관련해 경제 전망의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에 비해 경제 회복력이 약한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금리 상승이 더 달갑지 않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2일 ECB가 국채 금리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고 에이드리언 오어 뉴질랜드 중앙은행 총재는 뚜렷한 지표 개선에도 경제의 하방 위험을 강조했다.

미국의 금리 상승은 대외 자본 의존도가 높고 자본 흐름이 불안정한 신흥국에도 위협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2013년 미국 연준의 테이퍼링 소식에 신흥국 자산이 급락했던 ‘테이퍼 텐트럼' 현상이 재현될 위험도 있다. 때문에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올해 아르헨티나, 브라질,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이 매파적인 기조를 취할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