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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찰의 뿌리'…대전지역 순국선열 '강산 김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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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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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2주년···숨은 독립운동가 재조명 목소리
상해임시정부 경무국장…대전경찰 '김용원홀' 기념

독립운동가 강산 김용원 선생 (대전지방보훈청 제공) © 뉴스1
독립운동가 강산 김용원 선생 (대전지방보훈청 제공) © 뉴스1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시대가 마침 이러하여 독서열이 나지 않고 눈물만 떨어지니···뇌수에 국혼을 쏟아 붓고 심신에 국성을 새겨 국권을 회복하고 백성을 구제할 것”

대전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강산 김용원 선생이 1915년 휘문의숙 재학 중 쓴 몽견초패왕(夢見楚覇王) 등에 남긴 글이다. 나라를 뺏긴 시국에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3·1절이 어느덧 102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가 세상에 알려졌지만, 여전히 숨은 순국선열들이 있어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전경찰청 별관 강당 ‘김용원홀’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 선생 역시 지역의 숨은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다. 현재의 경찰청장과 같은 상해 임시정부 제2대 경무국장을 지내 경찰의 뿌리라고 평가받고 있기도 하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자료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1892년 3월 24일 당시 충남 대전군 기성면 원정리 덕동(현 대전시 서구 원정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양반가문이나 유복하지 않은 소농의 자식으로 자랐다.

7살 때부터 부친에게 한학을 배우기 시작한 선생은 1912년 당시 사립학교인 휘문의숙을 다니며 한문과 수학, 물리, 체조 등과 영어, 일본어까지 두루 익혔다.

이미 14살이었던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망국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김 선생은, 휘문의숙에서부터 독립운동을 위한 동지를 모으면서 과격한 언동을 보여 일본군의 감시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강산 김용원 선생에 대한 일제 감시카드 (대전지방보훈청 제공) © 뉴스1
강산 김용원 선생에 대한 일제 감시카드 (대전지방보훈청 제공) © 뉴스1

졸업 후 1916년부터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을 도모하던 선생은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왜왕 암살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시 귀국하기도 했다.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11월에는 대동단에 가입해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을 상해로 탈출시킬 공작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후 상해로 망명한 선생은 1921년부터 2년간 백범 김구 선생의 뒤를 이어 임시정부 제2대 경무국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선생은 군자금 모금활동에 매진하면서 뉴욕에서 열린 태평양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문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무장투쟁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지병으로 대전 본가에 내려왔다가 밀고를 당해 1924년 9월 체포되면서 사실상 활동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군자금모금 등으로 2년형을 받은 뒤 지병으로 한때 풀려나기도 했던 선생이지만, 출소 후 다시 동지를 규합하는 등 활동하다 체포됐다. 이후 몇 차례 옥고를 치르고 병석방된 1934년 순국했다.

정부는 이 같은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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