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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밀정 처단, 차남은 밀정의 정보원…독립운동가의 안타까운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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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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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전재산 내놓은 이석영 선생 代 끊겨
상해 빈민가서 고독사…87년 만에 고향 남양주서 첫 추모식

(남양주=뉴스1) 이상휼 기자
87주기 이석영 선생 추모식 © 뉴스1
87주기 이석영 선생 추모식 © 뉴스1

(남양주=뉴스1) 이상휼 기자 = 1934년 중국 상해의 냄새가 지독히 역한 빈민가의 어느 다락방에서 80세 노인이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숨졌다.

숨진 노인이 가진 재산이라고는 중국식 '뢰이푸상세이(藍布上衫)' 1벌 뿐이었다. 현지 언론이 취재한 바 그토록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노인은 조선의 거부(巨富)이자 남양주시민 영석 이석영(李石榮·1855-1934) 선생이었다.

당시 선생의 유해를 화장해서 고향 남양주시(당시 양주 가오곡)로 모시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직계 후손이 모두 끊겨 이런 일을 도맡아 할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홍저우 공동묘지에 안장했는데 도시개발로 유해도 사라졌고, 선생은 그렇게 87년여의 세월 동안 잊혀졌다.

이석영 선생 슬하에는 장남 이규준과 차남 이규서,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 이규준은 항일비밀운동단체 다물단 단원이었다. 다물단은 일제 주요 인사들과 일제의 회유로 변절한 '밀정'을 찾아내 암살하는 단체로 1923년 조직됐다. 다물(多勿)은 '옛땅을 되찾는다'는 뜻의 고구려 말이라고 전해진다. 또 '입을 다물고 실행한다'는 뜻도 담겼다고 한다.

다물단은 1925년 북경서 유명한 밀정 김달하를 처단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일제의 주요 표적이 됐다. 1927년 이규준은 중국 북경에서 암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규준의 직계 가족들도 일제에 의해 몰살됐다.

차남 이규서는 1932년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병을 앓던 이규서는 일제의 밀정 '연충열'과 어울리다가 숙부인 우당 이회영 선생에 대한 정보를 연충열에게 흘리고 만다. 연충열은 평소 이규서의 병원비와 약값을 대면서 친분을 쌓고 경계를 허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밀정은 이규서로부터 이회영 선생이 다롄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아내 일본 영사관에 전달했다. 체포된 이회영 선생은 4일 만에 고문으로 옥사했다. 조카가 숙부를 밀고한 셈이다.

이후 이회영 선생의 아들 이규창이 추적해 연충열과 이규서의 소행임을 밝혀냈다. 이규창과 독립운동가들은 연충열을 모처로 유인해 처단했다. 또한 이석영 선생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었던 이규서도 처단했다.

이석영 선생의 후손은 대가 끊겼다.

이석영 선생 © 뉴스1
이석영 선생 © 뉴스1

이석영 선생은 1910년 12월 우당 이회영, 성재 이석영 등 6형제와 함께 일가 40여명이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만주로 망명한 뒤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해방될 때까지 청산리 대첩 등 독립전쟁의 주역이었으며 광복군의 주축이었다. 광복군 지청천 사령관과 1지대장 김원봉, 2지대장 이범석, 3지대장 김학규 등 광복군 고위 지휘관들이 모두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 선생은 일제가 '불령선인'으로 지명수배하자 심양, 북경, 천진, 상해 등을 유랑하면서 빈곤하게 생활하다가 1934년 2월16일 상해에서 서거했다.

선생은 당대 굴지의 재산가였던 양부인 이유원 대감의 재산을 상속받아 형제들과 함께 엄청난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경기도 양주에서 한양까지 80리 언저리 전답이 모두 이유원의 땅'이었다고 한다. 이석영 선생 일가는 이 재산을 상속받아 모두 독립운동에 쏟아부었다.

이석영 선생은 1918년 일제로부터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지명수배돼 서거할 때까지 지하활동을 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핍박은 더 심해졌다. 고립됐던 선생은 1934년 2월16일 중국 상해의 변두리에서 쓸쓸히 숨져 상해 홍교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지난달 16일 남양주시 화도읍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에서 이석영 선생의 서거 87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선생이 상해에서 서거하고 고향땅에서 열리는 첫 추모식이었다.

남양주시 3·1절 독립만세운동 기념 재현행사 © 뉴스1
남양주시 3·1절 독립만세운동 기념 재현행사 © 뉴스1

이석영선생추모식 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이종찬 전 국회의원(전 국정원장)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이석영 선생은 그의 큰할아버지다.

이 위원장은 "87년 만에 처음으로 그분의 추모식을 거행한다. 남양주시민의 따뜻한 뜻으로 이제 그분의 위업이 하나씩 복원되고 있다. 나는 직계후손은 아니지만 후손의 한사람으로 남양주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하늘에 계신 이석영 할아버님께서도 늦게 추모식을 내려보시고 편히 잠드실 것이다"고 추모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영석 선생은 이 고장에서 성장한 분이다. 당대 굴지의 재산가로 이곳 가오곡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고 평생 살 수 있었음에도, 일제에 병탄되자 결연히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가산을 희사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으며 무장투쟁의 간성을 양성하는 데 모두 투자했다"고 말했다.

조광한 시장은 "남양주시 역사의 숨결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선생의 이름 석자를 곳곳에 새겨놓아 후대에도 영원히 기억되도록 온 마음과 힘을 다하겠다"며 "몹시도 그리워했을 이곳 남양주로 이제야 다시 모셔 영원히 선생을 기억하겠다.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이 선생을 향한 우리의 첫사랑이며 기억이다. 곧이어 시청의 이석영마루, 홍유릉 앞에 이석영광장, 청년창업센터인 1939with이석영 건립으로 지속적으로 선생을 새겨나가겠다"고 밝혔다.

민선7기 남양주시는 이석영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작업을 시 곳곳에서 추진하면서 잊혀졌던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의 면모가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1월 화도읍에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이 개관한 데 이어 곧 '이석영 광장', '청년창업공간 1939with이석영' 등이 시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안중근 의사 서거일인 3월26일에는 역사체험관 'Remember1910'이 개관할 예정이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14일 경기도 남양주시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에서 열린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 개관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2021.1.14/뉴스1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14일 경기도 남양주시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에서 열린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 개관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2021.1.1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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