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 출신 검사 "중수청은 일제시절 특고…여권이 일제 유령 소환"

전국 최대 규모의 서울중앙지검 평검사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일본제국 시절 '특별고등경찰(특고)'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성기범 서울중앙지검 검사(39·사법연수원 40기)는 전날 저녁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중수청:일제 특별고등경찰의 소환’이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그는 4대목에 걸쳐 중수청과 특고가 동일하다는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며 "검사는 물론 누구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는 수사기관이며 특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고안한 조직"이라고 했다.

성 검사는 "여권이 구 일본제국의 유령을 소환하고 있다"며 "특고는 일본제국이 1910년 메이지천황에 대한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하자, 그전부터 사상범만을 대상으로 업무를 수행한 고등경찰을 확대개편해 내무성 내에 사상 관련 사무를 취급하기 위해 꾸린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성 검사에 따르면 특고는 지방단체장은 물론 소속 경찰부장(경찰서장 유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내무대신에게 직보하는 업무체계를 가졌다.

이어 그는 중수청이 ‘특정한 사안만을 담당하는 별도 경찰조직’이라며 "중수청은 대놓고 하나의 경찰조직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 검사는 그 근거로 "중수청법 가안에 수사청장을 '수사총감', 차장을 '수사정감'이라고 두고 그 외 구성원을 모두 수사 1급부터 수사 7급의 '수사관'으로 두고 있다"며 "결국 대놓고 경찰공무원법을 준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조직의 얼개를 그대로 갖고 있는 조직을 뚝딱 만들고 가장 엄중한 범죄에 관한 수사만 콕 찍어 직무로 부여하고 있으니 이게 특고가 아니면 무엇이 특고에 해당되겠냐"고 주장했다.

성 검사는 또 중수청이 검사는 물론 누구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는 수사기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위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는 사법경찰에 대한 유효한 통제방법을 상당부분 잃었다"며 "중수청도 검사는 영장청구나 보완수사요구 말고는 딱히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유민주국가, 법치국가에서는 그 구성원인 시민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기본권 침해를 가할 수 있는 것이 수사기관"이라며 "그 수사기관의 직무 수행의 합법성을 통제하는 검사의 권한을, 검사의 권한을 줄인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미 쑥 빼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검사의 소중한 사명을 쏙 빼낸 다음, 중수청이라는 또 다른 괴물이 이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서게 됐다"며 "특고가 가진 위상, 직무를 그대로 가지게 된 중수청을 검사는 물론 아무도 통제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수청은 7급 이상 특정직 공무원으로 구성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중요 범죄만을 수사한다는 조직"이라며 "그럼에도 공전절후(空前絶後)한 조직이다. 역사, 경험, 노하우도 없이 새로운 조직을 외인구단 만들 듯이 반짝반짝 만들어 낸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3년 이상 수차례 검찰개혁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차례의 수사,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시도 끝에 다양한 정치적 이벤트가 연이어 있는 시기에 생뚱맞게 중수청이 등장했다. 그런데 과연 생뚱맞은가"라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이 사람들의 생각에 거스르는 일체의 세력을 새로운 칼을 휘둘러 소위 국사범(國事犯)으로 엄중히 처단할 의도가 있다고 보면 안 되냐"고 했다.

끝으로 성 검사는 "제 글은 웃고 넘어가셔도 좋습니다만, 검사, 검찰공무원이 아니라도 자유민주국가의 시민이라면 이 웃기는 상황은 웃고 넘어가시면 안 된다"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는 법치국가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림이 이번 '중수청법' 제안에서도 역력히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물론 중수청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시민의 기본권을 지켜내기 위해서, 이 글이 미친 소리에 불과했다고 조롱을 듣게 되도록 본분에 더욱 충실히 임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성 검사는 2004년 경찰대학교를 졸업했다. 경찰 재직 중 2008년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임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