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돈 많이 썼으니…영국이 먼저 쏜 '세금 인상'

영국 정부가 코로나19(COVID-19)으로 인한 정부 재정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3일(현지시간) 법인세율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국 중 첫 '팬데믹 대응' 증세로, 다른 국가의 움직임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주목받는 미국의 증세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 /사진=BBC 방송화면

정부 빚 늘어난 영국, 반세기 만에 올렸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3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에 코로나19 추가 지원방안이 담긴 예산안을 보고하며 현재 최고 19%인 법인세율을 2023년 4월부터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법인세율 인상은 1974년 후 처음이다.

25%의 법인세율이 적용 대상은 순이익 25만파운드(약 3억9000만원) 이상 기업들로 영국 기업의 약 10%가 해당된다. 순이익 5만파운드 이하 중소기업들에게는 19%의 현행세율을 유지한다. 수낙 장관은 "70%가량 기업들은 세율 인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기업 신규투자 비용의 130%를 공제하는 안도 내놨다. 수낙 장관은 이 공제 제도가 기업 대상 세금감면 중 가장 크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팬데믹 지원을 위해 기업들에 1000억파운드 이상을 썼다"며 "이제 그들(기업)에게 공헌을 요청하는 것은 공정하고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득세도 간접적으로 더 걷는다. 과세표준 구간은 조정하지 면세기준을 2026년까지 조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과세 대상과 세액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영국 정부는 100만명 이상에게서 소득세를 더 걷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증세를 하는 것은 팬데믹에 대응하면서 급증한 정부 빚 때문이다. 2020~2021 회계연도 영국 정부 차입은 3550억파운드(557조원), GDP(국내총생산) 대비 17%로 2차 대전 후 최대다. 2021~2022 회계연도 차입은 GDP의 10.3%인 2340억파운드로 추산했다.


영국의 법인세율이 다른 국가보다 낮다는 점은 세율 인상 부담을 덜었다. 주요 7개국(G7)의 평균 법인세율은 약 27%며, 프랑스는 32%다. 수낙 장관은 영국이 법인세율을 올려도 G7 국가 중에서 최저이며, G20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낮다고 설명했다.

영국 법인세율 인상 추이 /출처=블룸버그통신

세율 낮추던 영국 보수당인데… 영국 경제가 기존 예상보다 반년 이른 내년 중반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거란 전망도 증세 결정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 영국은 지난해 GDP가 10% 감소하는 300년 만의 최악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빠른 백신 보급으로 경제활동 정상화를 추진 중이다. 영국 예산책임처(OBR)는 올해와 내년 영국 경제성장률을 각각 4%, 7.3%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이 팬데믹으로 인한 정부재정 타격에 대응하기 위해 계획을 내놓은 첫 번째 주요국이 됐다면서, 이 증세가 1980년대 초 마가렛 대처 총리 시대에 시작된 법인세율 인하 추이를 뒤집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낙 장관은 감세를 추진해온 영국 보수당 소속이다.

본격적 증세 결정을 내린 곳이 영국밖에 없다는 건 증세가 그만큼 정치적으로 어려운 결정임을 방증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수낙 장관이 정치적으로 보수당 동료들의 비판이라는 위험에 처했다고 전했다. 경제적으로도 모험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증세가 투자 감소로 이어지면 장기적 경제회복에도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함께 재계 인사들을 만나 코로나19 경기 부양책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미국도 세율 인상 카드를 쥐고 있다 영국의 이번 증세 계획은 미국 정부가 1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재정부양책을 추진하는 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은 법인세율 인상(21→28%)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는데, 미국의 움직임은 파급력이 커 주목된다.

일단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경제를 코로나19 충격에서 회복시키는 게 우선이란 입장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역시 지난달 25일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증세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면서, 올해 후반 교육·인프라스트럭처 등에 대한 지출·투자를 포함한 더 큰 입법 패키지의 일부로 증세가 추진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또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주도로 지난 1일 순자산 5000만달러(562억원) 이상인 부유층에 세금을 물리는 이른바 초부유세법(Ultra-Millionaires Tax Act)이 발의되기도 했다. 다만 통과 여부는 불확실하다. 위헌 비판은 차치하고, 소득이 아닌 자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할 때 이 자산을 어디까지로 규정하느냐 등의 기술적 문제가 있다. 부유층이 자산을 해외로 빼낼 가능성 등도 제기된다.

WSJ는 전세계 재정정책 전망이 결국 팬데믹 경로에 달려 있다고 짚었다. 변이 바이러스 확산이나 대규모 감염이 다시 발생하면 정부 지원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는 증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알프레드 캐머 국제통화기금(IMF) 유럽부문 책임자는 "만약 (팬데믹에서의) 회복이 지연되면 (정부) 지원책이 예상보다 더 오래 유지돼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