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오른다"…'인플레 첨병' 원자재, 슈퍼사이클 진입?

(서울=뉴스1) 이성철 기자 = 화이자 백신 '낭보'에 국제유가가 8% 가량 폭등한 가운데 10일 서울의 한 주유소가 차량들로 붐비고 있다. 국제 유가가 국내 주유소 기름값에 실제 반영되기 까지는 보통 2~3주가 걸린다/사진=뉴스1

"모든 것이 오른다."(Everything rallies.)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외신들이 전방위적인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을 묘사한 표현이다. 일각에선 원자재값 상승 추세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제가 코로나19(COVID-19)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하자 이젠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엄습하고 있다.



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에너지 비중이 높은 국제 원자재 지수인 S&P GSCI(S&P Goldman Sachs Commodity Index) 지수는 전월말 대비 10.7% 뛰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WTI(서부텍사스산원유)는 전거래일 대비 4.2% 급등한 배럴당 63.8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019년 4월30일(63.91달러) 이후 1년10개월 만에 최고치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국제유가의 기준물인 5월분 북해산 브렌트유는 2.67달러(4.2%) 오른 배럴당 66.74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폭등한 건 OPEC+(석유수출기구)가 당초 예상을 깨고 현재 감산 수준을 유지하기로 하면서다. OPEC+는 전날 화상으로 진행한 석유장관 회의를 통해 이번달 생산 수준을 다음달에도 이어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음달 러시아와 카자흐스탄만 적정 수준 증산을 허용하고 나머지 회원국들은 현재 수준을 이어가기로 했다. 또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루 100만배럴 규모의 감산을 다음달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2월 중 비철금속 가격에서도 전품목 강세가 지속됐다. LME(런던금속가격) 지수는 9년래 최고치를 기록한 구리 가격(전월말 대비 +15.5%)등의 영향으로 원자재 슈퍼 사이클이 있었던 2010년대 초반 수준까지 상승했다. 국제금융센터는 "비철금속 가격은 친환경 인프라 수요 증대로 핵심 원자재인 구리 등 공급부족이 예상되는 품목을 중심으로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원자재 가격 랠리는 저금리가 만들어낸 유동성에 기인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세가 본격화되면서 원자재 수요가 늘고 있고, 비금속의 경우 코로나로 공급 차질을 빚으면서 수급 불안이 더해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인프라 투자 부양책 실시 기대감도 원자재 시장에 우호적 영향을 미치면서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되고 있다.

미국 은행 JP모건체이스는 최근 원자재 사이클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원자재 사이클은 지난 100년 동안 4차례 있었는데, 최근엔 미국 제로금리와 달러 초약세, 중국 투자 붐이 맞물렸던 1996~2008년 사이클이 있었다. 이런 원자재 장기 호황이 다시 찾아왔다는 분석이다.

국제유가 추이/자료=국제금융센터

그러나 변수는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유가 관련 변수로 △미국 한파에 따른 원유 공급 회복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봉쇄조치 완화 기대감 △이란 핵 협상 등을 꼽았다.

다만 국제유가의 경우 당분간 큰 폭의 추가 상승이 있을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 전문위원은 "OPEC+의 결정이 시장의 기대와 반대로 나오긴 했지만 계절적으로 비수기(3~4월) 진입도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5월부터 미국 독립기념일을 전후로 성수기에 진입하면 이에 맞물려 증산을 결정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계속 된다면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생산자 물가에 압박을 가하면서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애 추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원자재 슈퍼사이클 국면의 특징 중에는 투자사이클 붐과 더불어 저금리와 달러 약세, 인플레이션이 동반됐다"며 "그러나 현 국면은 저금리(유동성)를 제외하고 달러화 약세 및 인플레이션 강도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