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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뉴턴도 계산하지 못한 주식시장의 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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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종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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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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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은 말했다. "나는 천체의 궤도는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

뉴턴도 어쩔 수 없었던 사람들의 광기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류 최초의 주식 버블로 불리는 1720년 '남해기업(South Sea company) 버블'이다. 남해기업은 영국 정치가 로버트 할리가 1711년 설립했다. 그는 스페인이 남아메리카와 서인도 제도의 독점 교역권을 허가할 것이라며, 남해기업 투자를 유도했다.

27세에 케임브리지대 수학교수가 된 뉴턴도 평생 번 돈 2만 파운드(현 시세 20억원)으로 이 주식을 샀다. 그리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투자 원금의 90% 이상을 날린다. 뉴턴은 1727년 사망할 때까지 '남해기업'이라는 말만 들어도 괴로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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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해기업의 인기 비결인 '남미 독점교역권'에는 함정이 숨어 있었다. 남해기업 독점교역권은 영국인들 스스로 원한 것일 뿐 당시 남미를 지배하던 스페인의 의중과는 전혀 상관 없었다. 스페인은 영국에게 독점교역권을 주려하지 않았고, 줄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영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남해기업에게 1년에 단 한번, 이익의 25%를 내는 조건으로 페루와 칠레 등에서 교역을 허가했다. 남해기업 배들은 그렇게 1717년에서야 이들 국가에 닻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교역은 이익은 커녕 손실이 더 컸다. 남해기업은 투자자들에게 또 다른 꿈을 심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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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기업은 '전환사채'라는 묘수를 냈다. 영국 정부는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르며 재정적자가 5000만 파운드(현 시세 5조원)으로 급증한 상태였다. 남해기업은 이 중 3000만 파운드(현 시세 3조원)을 자신들이 매입하는 대신, 투자자들에게는 남해기업 주식을 나눠주는 전환사채 발행을 추진했다.

겉으로는 영국 국채 이자가 주목적이었지만 또 다른 노림수도 있었다. 전환사채는 주가가 오를수록 남해기업이 발행할 주식수가 적어져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주가가 100파운드일 때 남해기업 이익은 5%지만, 주가가 200파운드로 뛰면 이익은 105%로 급등한다.

남해기업은 영국 정부와 의회에 로비하는 것은 물론 주가를 올리기 위한 온갖 작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해기업이 남미 주요 항구들의 통상권을 따냈다거나, 심지어 남미 최대 은광인 포토시 광산의 운영권을 획득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끓었다.

1720년 1월 128파운드였던 남해기업 주가는 3월 들어 300파운드를 돌파했다. 그해 4월7일 남해기업 전환사채 발행안이 영국 의회를 통과하자 남해기업은 주당 300파운드짜리 전환사채 공모를 단 1시간만에 끝냈다. 남해기업은 청약증거금 비율을 20%로 낮췄고, 주식을 담보로 사람들에게 이 증거금까지 대출해줬다. 사람들은 남해기업 주식을 맡기고 대출 받아 더 많은 주식을 샀고, 그 주식을 담보로 또 주식을 샀다.

1720년 6월초 주가는 890파운드로 뛰었고, 6월말 급기야 1000파운드를 찍었다. 불과 6개월새 800%에 달하는 폭등이었다. 뉴턴이 남해기업 주식을 산 것도 이 무렵이다. 은광 운영권 획득 같은 소문이 돌자 뉴턴은 2만 파운드어치 주식을 샀다. 사실상 묻지마 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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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 주식을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해기업 버블은 그 실체를 드러냈다. 1720년 6월 영국 정부가 남해기업의 방식을 모방하려는 기업들을 막는 '버블법'을 발표하자 투자자들은 진짜 '옥석 가리기'에 나섰다. 그들은 남해기업 사업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남해기업 핵심 주주들이 주식을 처분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너도 나도 주식을 매도했다. 7월 이후 하락으로 반전된 남해기업 주가는 그해 9월 180달러로 떨어졌고, 12월에는 124파운드까지 주저 앉았다. 1년간의 탐욕과 광기는 그렇게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남해기업 버블 붕괴는 당시 엄청난 사회 문제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뉴턴처럼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파산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영국 증시의 버블은 테마만 달라질 뿐 계속 이어졌다. 1846년 당시 최고의 기술주였던 증기기관차가 철도주 버블을 낳았고, 1898년에는 혁신적인 자전거주들이 똑같은 패턴으로 버블을 불렀다. 유럽의 투자 구루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증시의 90%는 심리라고 말했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볼 때는 한번쯤 옆을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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