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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안 갈 수만 있다면 안 가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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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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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이호승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열린 대통령비서실 정무직 인사발표에서 임명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1.3.29/뉴스1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이호승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열린 대통령비서실 정무직 인사발표에서 임명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1.3.29/뉴스1
#1.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08년 2월25일, 경기도 과천. 대선 후 두달여 만에 만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노무현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를 만들고 사수해온 그는 이미 종부세 폐지론자로 변신해 있었다. 정말로 생각이 바뀐 건지, 말만 다르게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민망할까봐 묻지 않았다. 세상이 뒤집혔으니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터다.

혹자는 관료에겐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염치까지 없는 건 아니다. 자신이 손수 만든 정책을 뒤집는 일이 마음 편할 리 없다. 그걸 시키는 것도 정권 입장에서 민망한 일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차관보·실장 등 1급 이상 고위직 상당수가 물갈이되는 이유다.

#2. "안 올 수만 있다면 안 오고 싶었죠. 부처 선배들도 지금은 절대 BH(청와대)로 가지 말라고 했어요." 박근혜정부 후반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당시 청와대 비서관의 말이다.

정권이 바뀔 경우 직전 정부의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중용되긴 쉽지 않다. 박근혜정부 청와대에서 기획비서관을 지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몇 안 되는 예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나마 홍 부총리는 박근혜정부 말기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국무조정실장을 지내며 청와대 티를 벗은 덕을 봤다.

정권 말기 관료들은 청와대 행(行)을 꺼리지만, 역설적으로 정권 말기 청와대는 더욱 더 관료들을 원한다.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행정부 장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다. 정권 교체시 문제가 될 수 있는 정책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말 안 듣는 공무원들을 움직이는 방법엔 몇가지가 있는데, 가장 쉬운 게 승진이다. 국장을 차관보로, 차관보를 차관으로 발탁하면 다음 정부에서 승부를 본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접고 일단 열심히 한다. 다른 방법은 선배 관료의 손과 입을 빌어 일을 시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라인에 관료를 배치한다는 얘기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 인사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적용된 사례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셋값 인상 논란'으로 낙마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그 자리에 기재부 출신의 이호승 경제수석을 뽑아 올렸다.

청와대 정책실장에 관료가 앉은 건 노무현정부 말기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이후 약 14년 만에 처음이다. 지금까진 장하성, 김수현, 김상조 등 학자들이 주를 이뤘다. 박근혜정부 시절 관료 출신의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등이 있었지만, 차관급 수석이 장관급 실장과 같을 순 없다.

후임 경제수석엔 안일환 기재부 2차관, 그 직속 경제정책비서관에는 이형일 기재부 차관보가 투입됐다. 정책실장부터 경제수석, 경제정책비서관으로 이어지는 청와대 핵심 정책라인이 모두 기재부 출신으로 채워졌다.

7일 서울시장 선거 참패로 이제 '레임덕'은 불가피해졌다. 권력누수가 시작되면 의지할 곳은 결국 관료들 뿐이다. 정치권에선 더 이상 청와대로 오려고 하지도, 청와대를 적극 도우려 하지도 않는다. 청와대로 불렀을 때 그나마 순순히 오는 건 관료들 밖에 없다. 역대 대다수 대통령들이 정권 말기 관료에게 포획된 건 그래서다.

관료에게 포획되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관료들에겐 분명한 장단점이 있다. 대체로 예측가능하고 합리적이다. 반면 개혁을 기대하긴 어렵다. 정권 말기 안정적 국정운영을 원한다면 관료가 답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국정과제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꿈꾼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견고한 논리와 노련함으로 중무장한 엘리트 관료를 요직에 앉혔다면 더욱 그렇다.

걱정되는 건 혹시라도 이번 청와대 정책실장 인사에 '윤석열 트라우마'가 작용한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색깔이 강한 인물에게 중책을 맡겼을 때 어떤 사달이 날 수 있는지 뼈 저리게 경험한 터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소신파 학자들보다는 상명하복의 공직사회에서 수십년 닳고 닳은 관료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건 아닐까. 만약 앞으로도 이런 생각으로 인사를 낸다면 쓸 수 있는 사람은 확실한 '내 편' 아니면 관료들 뿐이다. 그런 경우라면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남은 1년이 어떨지는 굳이 안 봐도 뻔하다.

"청와대, 안 갈 수만 있다면 안 가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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