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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덕혜옹주, 천재화가 임용련… 내 손을 거친 작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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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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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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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고미술의 매력에 빠지다' 펴낸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초록의 정원을 배경으로 살구 빛깔 쉬폰 원피스를 입은 묘령의 여인이 먼곳을 응시하고 있다. 가늘고 길게 옆으로 늘어진 눈에는 은은한 미소가 비친다. 조금은 창백해 보이는 피부,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불행은 엿보이지 않는다. 인상주의 화풍으로 채색된 이 유화 속의 주인공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1912 ~ 1989)로 추정된다.
덕혜옹주 초상화로 추정되는 황경식 교수의 소장품. /사진제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덕혜옹주 초상화로 추정되는 황경식 교수의 소장품. /사진제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지금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이는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74)다. 황 교수는 저서 '고미술의 매력에 빠지다(행복에너지)'에서 이 초상화를 미스터리 특선 20선 중 하나로 소개했다.
덕혜옹주의 고교 시절 사진. /사진제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덕혜옹주의 고교 시절 사진. /사진제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저 대신 일본을 드나드는 큐레이터가 도쿄 인근에서 덕혜옹주 초상화를 봤다는 연락을 줬어요. 도쿄의 한 고미술상이 큐레이터에게 '국보급 그림'이 있다며 한 유화 초상화를 보여줬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덕혜옹주임을 알아봤대요. 그림 속 덕혜옹주가 오른손에 들고있는 패랭이꽃도 한국이 원산지고요. 심증이 갔죠. 결국 제가 이 그림을 사들였습니다. 그런 후 그림의 화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를 수소문했어요. 옹주와 이혼한 전 남편 소 다케유키가 재혼해서 낳은 아들이 일본 레이타쿠대 교수로 재직한다는 걸 알게됐죠. 그에게 이 그림의 진위가 알고싶다며 연락을 했는데 '노 코멘트'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아마 일본인들이 옹주에게 했던 몹쓸 짓 때문에 확답하기가 여의치 않았겠죠."

황 교수는 지난 20여년간 수백여점의 고미술품을 수집한 자타공인 고미술 애호가다. 그가 꽃마을한방병원 이사장으로서 집무를 보는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는 여태까지 모아둔 고미술품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책상 위에는 소형 금동탑이, TV 뒤에는 십장생자수병풍이 자리하고 있었고 벽면에는 덕혜옹주의 초상화, 장승업의 노안도 등이 전시돼있었다.

작품의 뒷얘기를 소개하는 노학자의 눈빛에는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책에는 그가 오랜 세월 마음을 담아 수집한 작품들의 뒷얘기가 담겨있다. 화가 이중섭의 스승이자 오산학교 미술 담당 교사였던 천재화가 임용련의 예수 십자가상부터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까지, 그가 모아온 콜렉션의 종류와 이야기는 박물관 하나를 만들고도 남을만큼 풍부했다.

실제로 황 교수가 미술품을 모아온 것은 미술관을 세우고싶다는 소망때문이었다. 반평생을 철학자로 살면서 존롤스의 정의론 등 다수의 역서·저서를 남긴 그는 아내 이름을 딴 박물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미술로의 외도'를 시작했다.

"제 아내는 국내 최초 여성 한의학 박사인 강명자 꽃마을한의원 원장입니다. 아내가 불임과 난임 치료에 열과 성을 다한 그 동안의 성공 사례가 1만여건이 넘습니다. 그런 아내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었어요. 아내의 호인 '여천(如泉)'을 이름으로 한 미술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아내도 탐탁지않아 했어요.(웃음) 고미술품이란 게 갈고 닦기 전엔 쓰레기나 다름 없거든요."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그가 관심을 갖고 모은 콜렉션 중 하나는 모자상이다. 수 많은 난임부부에게 아이를 가져다 준 아내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가장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가톨릭의 성모자상에서 시작한 콜렉션은 중국 송자관음상, 일본 마리아관음상 등 다양한 국적의 모자상으로 이어졌다.

"송자관음보살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중국에 드나드는 큐레이터에게 '아기를 안고있는 관음보살(송자관음)이 있으면 모아달라'고 한 게 어느 덧 80점 정도가 돼갑니다. 제가 갖고 있는 송자관음상이 중국 전역에 남아있는 것 보다 많을 지도 몰라요. 일본 마리아관음상은 유래가 흥미롭습니다. 일본에 가톨릭교가 전파된 건 400여년 전입니다. 이 때 일본에서 신부들이 한꺼번에 순교하는 등 심각한 박해가 이어졌어요. 그래서 마리아도 관음보살로 위장하게 됐죠. 멀리서 보면 관음보살 상인데 가까이서 보면 마리아인 거죠. 마리아 관음은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수백 년 전 생겨나 지금도 하나의 종교로 잔류하고 있답니다."
임용련이 미국 유학 시절 예일대 졸업작품으로 남긴 십자가의 상. /사진제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임용련이 미국 유학 시절 예일대 졸업작품으로 남긴 십자가의 상. /사진제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비운의 화가 임용련의 '십자가의 상'은 그가 돈을 받고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립미술관)에 넘긴 첫번째 작품이자 아픈 손가락이다. 임용련은 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의 오산학교 스승이다. 1929년에 미국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지만 6·25 전쟁 직후 북한군에게 끌려가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데다 작품도 많이 남아있지 않아 평가는 답보 상태다. 현재 한반도에 남아있는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있는 '에르블레 풍경'과 다른 소장가가 보유한 '금강산', 그리고 황 교수가 갖고있던 '십자가의 상', '단양계곡 추경' 정도다.

"십자가의 상이 이충렬씨라는 콜렉터를 통해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해도 국립미술관에선 이 작품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어요. 인수 제의가 들어갔지만 사지 않았다고 해요. 곧바로 제게 인수 제의가 왔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화라는 가치가 있어서 가격 고하를 막론하고 산다고 했죠. 그런데 얼마 전부턴 국립미술관에서 한국미술사에 대한 전시회를 열 때 마다 이 작품을 대여해갔어요. 입장이 바뀌었죠. 지난해엔 국가에 이 그림을 팔 생각이 없느냐고 의견을 물어오더군요. 제가 고집 부릴 이유가 없죠. 제값 이상을 받고 넘겼습니다."

그가 세계 각국의 미술품을 모으며 느낀 점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 미술품은 빈곤하다는 사실이었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는 간송미술관 등을 제외하면 남아있는 콜렉션이 많지 않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을 중인 이상으로 대우해주지 않다보니 특유의 예술 세계가 발현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만큼 즐길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국립중앙박물관의 박물관대학에 다니며 열심히 고미술을 공부했더니 지금처럼 즐길 수 있을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었죠. 즐기는만큼 모으고 싶더군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너무 즐거우니까요.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국내 미술계가 더욱 많은 작품으로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다른 분들도 고미술을 공부해서 저처럼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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