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이성윤과 황운하의 특별했던 하루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이성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1.4.29/뉴스1

1962년생 동갑내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4월29일은 특별했다.

검찰총장 물망에 오르내리던 이 지검장은 결국 이날 최종 후보군에서 탈락했다. 이날 황운하 의원은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는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물론 이성윤 지검장이 현직을 유지할지, 황운하 의원이 험난한 재판에서 살아남을지 변수는 적지 않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이은권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황 의원을 상대로 낸 국회의원 당선무효 소송에서 원고 기각 판단을 29일 내렸다.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도 같은날 열린 회의와 심사에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구본선 광주고검장·배성범 법무연수원장을 신임 총장 후보로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했지만 유력 후보로 꼽히던 이성윤 지검장은 제외시켰다.


같은 잣대로 묶기는 어렵지만 이성윤 지검장과 경찰 출신인 황운하 의원은 동갑내기(태어난 달도 9월로 같다)라는 것 외에 몇몇 인연이 겹친다. 대표적인 것은 1999년 5~6월 긴박하게 벌어졌던 검경 충돌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것. 당시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뜨거웠고 경찰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청에 파견돼 있던 경찰관들을 원대복귀시켰다. '대외기관 파견에 따른 업무지시'라는 딱딱한 제목의 문서가 각 경찰관서에 뿌려졌고 실제 충돌이 이뤄진 곳은 서울 동부지청(현 동부지검)과 성동경찰서였다.

당시 성동경찰서 황운하 형사과장은 경찰대 1기라는 상징성이 있었고 "검경관계가 재정립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원대복귀를 지시했다. 그 당시 이성윤 검사가 일하던 곳이 동부지청이었다. 막전막후로 1999년5월 당시 서울지검 윤석열 검사는 경찰의 실력자인 경찰청 박모 정보국장을 구속시켜 사태를 촉발시킨 사실이 있고 경찰관 원대복귀 뒤 김성호 동부지청장(뒤의 국가정보원장)은 성동경찰서장, 동부경찰서장 등과 협의를 했다. 파장이 확대되자 5 ~ 6명이던 파견인원을 2명 정도로 줄이는 선에서 황운하 과장도 물러섰고 하루이틀 뒤 파견재개로 타협을 봤다. 동부지청에는 뒤에 청와대 민정수석이 되는 박정규 부장검사와 정동기 차장검사, 국회의원이 되는 권성동 검사도 재직했고 성동경찰서 형사계장으로는 최승렬 경무관(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장)이 재직 중이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한동안 수면아래로 잠겨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 다시 부상했다. 일명 조국사태 등으로 검찰에 대한 불신과 산발적으로 이어져온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누적된 결과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 축소 등 실제 제도변혁은 이성윤 지검장의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 중앙지검장 등 재직 시절에 이뤄졌다. 황운하 의원은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 있던 때 검찰의 자의적인 기소권 독점의 폐해를 보여준 일명 울산 고래고기 사건 등을 공론화시키면서 경찰의 수사권 확대를 측면 지원했다.


2020년 이성윤 지검장은 서울중장지검장으로 발탁됐고 황운하 의원은 총선에서 의원 뱃지를 달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영광 외에 두 사람은 여러 외풍에 시달렸다. 이성윤 지검장에게는 참여정부 시절의 청와대 근무이력, 대통령과의 인연 등이 끊임없이 거론되며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한다는 비난이 이어졌고 황운하 의원은 울산청장 재직시절 당시 권력층과의 직간접 교감 속에 울산광역시장 후보 주변 수사를 통해 선거결과를 왜곡시켰다는 의혹을 샀다.

5월 이후로 그들에게는 또 새로운 과제가 놓여있을 것이다. 새로운 검찰총장이 취임하면 이성윤 중앙지검장의 재신임 여부가 결정되고 황운하 의원은 청와대 이진석 국정상황실장 등과 함께 기소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재판이 이어지게 된다. 그들이 몸담거나 몸담았던 검찰과 경찰의 수사능력도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하는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 성과에 따라 다시 평가받게 된다.

이성윤과 황운하, 또는 황운하와 이성윤. 30 ~ 40대 시절 검경 수사권 문제든, 정권 관련 수사를 맡거나 권부의 핵심에서 일했을 때든 둘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나라에 헌신한다'는 공직 시작때의 결심이 충만했을 터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서인지 아니면 세간의 의심어린 눈초리처럼 권력과의 결탁 때문인지 그들은 현재 누구도 오르기 어려운 자리에 서 있다.

"어느 권력기관도 국민 위에 군림하며 권한을 남용하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황운하 총선 출마 선언문), "인권 보호가 검찰의 존재이유다"(이성윤 중앙지검장 취임사). 선거개입 관련 재판(황운하)과 김학의 불법출국금지 연루 의혹 기소 여부(이성윤) 등 그들 앞에 놓인 여정이 험난하다. 구구절절 옳은 말인 출마선언이나 취임사가 그들을 비추는 거울이 될지, 스스로를 옥죄는 족쇄가 될 지 관심이 집중된다.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긴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1.4.28/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