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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오스카로 내 삶이 바뀌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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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종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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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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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바닥에 설득이라는 것은 없다."
CJ ENM 소속 나영석 PD는 6년 전 한 인터뷰에서 연예계 세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예계에서는 오직 전작이 성공해야 그 다음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는 "술 마시면서 '형이라고 불러'라고 했고, 실제 두 사람이 형·동생하는 사이가 됐다고 해서, '설득'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연예계에서 누군가를 설득했다면 그건 형·동생하는 사이라서가 아니라 오직 전작이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은 연예계 뿐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 적용된다.

배우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과 전작의 성공을 논할 계제는 아니었다. 윤여정은 정 감독과 영화 미나리를 통해 처음 만났다. 전작의 성공도 없는데 그는 왜 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했을까. 윤여정은 미국 이민 세대의 영화 대본을 보면 짠해진다고 밝혔다. 미국에 사는 아들들이 떠올라서다. 그는 미나리 대본을 30페이지 정도 읽고 대본에서 진실이 느껴져 영화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렇게 빨리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는 아들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이민자 2세대의 대본을 받아들 때면 항상 아들들이 떠올라 그들을 돕고 싶다는 게 윤여정의 설명이다.

2.
하지만 제 아무리 '전작의 성공'이나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확실한 이유가 있어도 그들의 작업은 늘 불안하고 힘들다. 나영석은 예능물을 찍을 때마다 난감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촬영하다가 "이거 망할 수 있겠다"는 걱정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그래도 해보고 싶고, 의미가 있는 것이니, 자양분이라는 심정으로 억지로 그 상황을 버틴다.

윤여정도 진실이 느껴져 출연 결정을 했지만 미나리 촬영 내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덥고 습했고, 작은 트레일러(영화 속의 집)가 있었다"며 "모든 것이 끔직했다"고 했다. 나영석과 윤여정의 표현대로라면 '생각'과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윤여정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미나리를 찍었느냐는 질문에 급기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 때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하진 않는다"고. "그냥 서로에 대해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며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는, 한국인 이민자로서의 모습을 솔직히 표현하려 했다"고.

이런 진정성은 언젠가는 인정받게 돼 있다. 나영석은 촬영할 때는 제작 의도가 전혀 안먹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청자들이 그 의미를 알아서 발견해준 적이 많다고 밝혔다. 윤여정도 "나는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재밌다고 한다"고 했다.

3.
나영석과 윤여정 사이에는 거창할 것이 없다. 나영석은 윤여정이 오스카 시상식을 위해 미국으로 갈 때 "아카데미 잘 다녀오셔서 또 쿨하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신 후 저와 여러 식당도 하고, 같이 다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한마디로 잘 다녀와서 자기와 계속 '윤식당' 같은 예능을 찍자는 것이다.

윤여정은 오스카상 수상 직후 한 인터뷰에서 마치 나영석에게 대답하듯 말했다. "오스카상을 받았을 때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내 삶이 바뀌는 것은 없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할 것이다"고.

구성원들이 한 가지 목표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수십명이 하나가 돼 뭔가를 함께 성취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 목표한 대로 안됐어도 다 같이 털고 일어서 다시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 영화나 예능이나 이 본질적인 일의 방식은 같다. 누군가와 연결돼, 함께 만들고, 같이 성장하는 나영석과 윤여정의 씬들에선 그래서 배울 게 많다. 윤여정은 오스카상 수상 이후 온 세상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식혜에 동동 뜬 밥풀 같은 인기"라고 했다. 74세의 이 베테랑이 작금의 인기에 도취되지 않고 나영석과 진짜 이야기들을 계속 만들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든다. 무엇보다 30년의 나이차를 뛰어넘는 그들의 작업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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