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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2번 받은 사진기자,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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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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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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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국립박물관 에서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 촬영중인 강형원 기자.  photo by: 최종훈 / 사진 = 강형원 기자 제공.
부여국립박물관 에서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 촬영중인 강형원 기자. photo by: 최종훈 / 사진 = 강형원 기자 제공.
"35년간의 미국 기자생활 동안 모든 사진을 '강형원'이라는 이름으로 찍었습니다. 머리는 미국이어도 영혼은 한국 것입니다."

'LA타임스'부터 'AP통신' '로이터통신'등에서 근무한 검은 머리 사진기자가 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35년 동안 사진을 촬영했다. 백악관 출입에서부터 LA 폭동, 이라크 전쟁, 9·11테러 등 굵직한 사건의 현장에 있었다. '사진기자의 꿈'이라고 불리는 퓰리처 상도 두 차례나 탔다. 강형원 기자(57)가 그 주인공이다.

강 기자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진기자다. 강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 여러 차례 외신 1면에 실렸으나 모두 'Hyungwon Kang'(강형원)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촬영했다. 자신을 '미국 머리에 한국의 영혼'으로 소개하는 강 기자는 퇴직 후 아예 한국으로 건너왔다. 강 기자는 4일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35년간 미국 언론사 누볐지만…그의 이름은 언제나 '강형원'이었다


 2009년 백악관 크리스마스 파티때 미국 대통령 바락 오바마, 영부인 미셀과 기념촬영한 강형원 기자.  Photo by: The White House / 사진 = 강형원 기자 제공
2009년 백악관 크리스마스 파티때 미국 대통령 바락 오바마, 영부인 미셀과 기념촬영한 강형원 기자. Photo by: The White House / 사진 = 강형원 기자 제공
강 기자는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인 1975년 미국 LA로 이민을 갔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한 선생님의 권유로 졸업앨범 사진을 촬영하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칭찬을 계기로 사진기자의 길을 택했다. UCLA 대학신문 인턴 기자를 거쳐 LA타임스, 타임지, 로이터통신, AP통신 등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1987년에는 한국으로 파견돼 6·29항쟁과 첫 대통령 직선제를 취재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셔터를 눌렀다. 민주화운동 현장을 취재하다 경찰로 오해받아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1992년 미국 LA폭동 당시에는 총을 들고 자신을 지켰던 한국 교포들의 모습을 담았다. 노력을 인정받아 첫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과 르윈스키 스캔들 보도로 두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두 차례나 수상하면서 미국 내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강 기자는 열정을 인정받아 백악관 사진부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강 기자는 1988년 북한과 중국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 국적까지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획득했다. 대신 모든 기사를 한국 이름인 '강형원'으로 쓰기로 했다. LA타임스 1면에 강 기자의 사진이 실릴 때에도 어김없이 '강형원'의 이름이 달렸다.

우리 현대사에서 항상 최전방에 위치해 많은 아픔을 안고 있는 독도에서 서도가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Photo (C) 2020 Hyungwon Kang / 사진 = 강형원 기자 제공
우리 현대사에서 항상 최전방에 위치해 많은 아픔을 안고 있는 독도에서 서도가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Photo (C) 2020 Hyungwon Kang / 사진 = 강형원 기자 제공

강 기자는 "동료 기자들이 '왜 미국 이름을 안 쓰느냐'고 물으면 미국 사회에 한국 이름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며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정신이 한국이라는 것은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주신 이름을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는 것도 이유다.

강 기자는 북한 방문부터 한국 대통령 취임식·방미 등 한국 관련 취재가 있으면 자청해서 현장을 찾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의 문화적인 깊이를 아는 사람이 취재해야 더욱 깊이 있는 사진이 나온다는 신념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의 인상이 '전쟁을 치른 국가'로만 알려져 있는 것에 대한 반감도 한몫했다. 강 기자는 "최근 K-팝이나 한류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영미권에서는 전쟁을 치렀던 신생 국가에 불과하다"며 "자신들의 문화만이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영미권에 한국 문화를 '만국 공통어'인 사진으로 알리고 싶다"고 했다.


'독도부터 삽살개까지'…퇴직 후 고국으로 무대 옮긴 사진기자의 진심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성을 털이 긴 삽살개 "은열" 이와 단모바둑이 "동행" 이가 돌고있다. Photo (C) 2020 Hyungwon Kang / 사진 = 강형원 기자 제공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성을 털이 긴 삽살개 "은열" 이와 단모바둑이 "동행" 이가 돌고있다. Photo (C) 2020 Hyungwon Kang / 사진 = 강형원 기자 제공
강 기자는 2019년 로이터통신을 퇴직했다. 그러나 카메라는 더 자주 잡는다. 대신 미국이 아니라 고향인 한국에서다. 그는 자비를 털어 진행한 '비주얼 히스토리 오브 코리아(Visual History of Korea)'라는 프로젝트를 인상적인 사진과, 영문기사로 SNS를 통해서 알린다. 또 한글로는 국내 미주 일간지를 통해서 영어 문화권 전역에 퍼진다.

강 기자는 "머리가 닿는 곳이 집이라는 생각으로 매일같이 전국을 누비고 있다"며 "지난해 6월 말에 방한해 14일간의 코로나19 격리를 거친 후 7월 2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벌써 총 이동거리가 2만km가 넘는다"고 했다. 그의 카메라에는 독도·제주도 등 자연환경과 삽살개·진돗개 등 다양한 피사체가 담겼다.

강 기자의 사진을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는 이들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다. 강 기자는 항상 이민을 갔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지 못해 자신의 뿌리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그는 그들을 위해 석기시대 유산인 울주 암각화부터 몽골 침략군에 맞서 싸운 삼별초 유적까지 한국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진들을 촬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강 기자는 "이역만리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왜 모국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유를 알려주고 싶다"며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직접 발로 뛰어 한 사람이라도 더 한국에 대해 알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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