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학교→의대 '원천 차단' 시끌…"취지대로" vs "과잉입법"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지난 3월25일 광주 한 고등학교에서 고3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서울=뉴스1) 장지훈 기자 = 전국 8개 영재학교가 내년도 신입생부터 의약학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 '영재학교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대학에 제공하지 않는 등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힌 가운데 영재학교 졸업생의 의약학계열 진학을 원천 차단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논란이다.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학교 설립 취지를 살리려면 영재학교 졸업생이 의약학계열로 진학하는 길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불이익을 주더라도 진로는 학생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부딪치고 있다.

6일 교육계에 따르면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지정된 전국 8개 영재학교와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시·도교육감이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지정한 전국 20개 과학고 졸업생은 의대·한의대·치대·약대에 입학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포 이후 1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시행하기로 해 재학생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강 의원은 "영재학교와 과학고가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학생들이 의약학계열에 진학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자 다른 학생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라며 "법안을 통해 영재학교와 과학고가 설립 취지처럼 과학분야 우수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영재학교장협의회는 지난달 29일 올해 고입부터 지원자와 보호자의 서약을 받아 의약학계열 진학을 희망하거나 지원하면 제재하겠다고 밝혔는데 더 나아가 법으로 금지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영재학교장협의회가 내놓은 제재 방안을 보면 영재학교 학생부가 아닌 일반학교 학생부를 대학에 제공하고 세부능력특기사항이나 창의적체험활동 등 학생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공란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상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의약학계열에 진학하는 길을 막은 셈이다.

여기에 영재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투입된 교육비와 장학금을 환수하고 진학지도를 실시하지 않으며 수업 외에는 독서실이나 기숙사 등 학교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강 의원은 영재학교 학생이 정시로 의약학계열에 진학하는 길은 여전히 열려 있는 데다 교육비 환수와 진학지도 미실시 등 조치는 실효성이 떨어져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영재학교 졸업생이 이공계열로 진학했다가 재수나 삼수를 해서 다시 의대에 가는 경우도 있다"며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영재학교를 거쳐 의대에 가는 사교육 과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해당 법안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고등학교 진학담당교사는 "어문계열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외국어고 졸업생이 다른 분야에 진학하는 것을 두고 큰 논란이 없는 것은 혈세를 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학생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의대에 가는 길을 열어 놓는다면 다른 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박탈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교원단체 관계자는 "만 16세 청소년이 과학자의 꿈을 품고 영재학교나 과학고에 진학했더라도 배움의 과정에서 꿈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며 "일정 수준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의약학계열로 진학하겠다는 것까지 제한하는 것은 과잉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의약학계열에 진학하더라도 기초의학분야 연구나 제약 등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몸담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막는 것도 과도하다"고 덧붙였다.

서울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원가에서는 몇 년 전부터 정시로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서울과학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능반'까지 운영하고 있어 현행 제재 방안으로는 의약학계열 진학을 막기 어렵다"며 "법을 바꿔 제한 규정을 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고 헌법소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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