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투자 줄고 영업압박 늘고…기가인터넷 논란은 예고된 사태"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KT 인터넷 속도저하 사건 원인과 개선방안을 발표 기자회견에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민생경제연구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KT 인터넷 속도저하 이면엔 강제준공과 실적부풀리기 관행 있다고 밝히고, KT 사과·실태조사에 그치지 말고 미흡한 약관 개선·손해배상에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2021.5.10/뉴스1

"최근 기가인터넷 속도 저하 문제는 망 투자는 줄이면서 고가 요금제 판매를 압박하는 KT의 모순이 낳은 예고된 사태다."

최근 유명 정보기술(IT) 유튜버 '잇섭'의 폭로로 불거진 10기가 인터넷 속도 저하 문제는 비용절감과 단기 실적 추구에 원인이 있다는 KT 내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KT새노조 및 희망연대노조 KT서비스지부 및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생경제연구소는 1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KT 인터넷 속도 저하의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고강도 영업압박에…1기가 인터넷, 600메가만 나와도 개통"

한 KT 인터넷 설치 기사가 제공한 카카오톡 일부. "당일개통 중 신규 건은 절대 연기하면 안된다"는 등의 영업 압박이 확인된다.

이날 KT 인터넷 설치기사들은 본사의 '고강도 영업압박'을 인터넷속도 저하의 원인으로 꼽았다. 한 KT 인터넷 설치기사는 "현장 기사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는 상황에서 돈이 걸린 문제니까, 영업압박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며 "회사 내부에서는 '영업해서 연봉 1200만원 더 받아가자'는 캠페인이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광순 희망연대노조 위원장은 "무조건 빨리 개통하고 다음 집 하나 더 처리하는 게 기사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특히 인터넷 개통 시 약정보다 낮은 품질이 나오면 당일 맞춰야 하는 물량이 있기 때문에 가개통을 하고 추후 처리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기가인터넷에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에는 개통 시 속도가 안나오면 본사에 망이나 장비 증설을 요구하는 게 당연한 절차이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속도가 안나와서 개통을 못했다면 월급이 깎이니까 그렇게 못한다. 그래서 본사에서도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게 되고 망 투자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최근에는 인터넷 개통시 보장해야 하는 속도 기준도 80%에서 60%로 낮아졌다는 후문이다. 이호계 KT새노조 사무국장은 "기존에는 1기가 인터넷 상품이면 속도 측정시 800메가 이상 나와야 개통을 해줬다면, 지금은 600메가만 나와도 개통이 가능하다"며 "기가인터넷보다 더 저렴한 500메가 상품을 가입했을 때보다 사실상 100메가 밖에 속도 차이가 안나는데 소비자들은 이를 모르고 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오주헌 KT 새노조위원장은 "투자 결정권을 갖는 본사는 비용 절감에 올인하고 고객과 부딪히며 영업하는 현장은 매출 증대에 올인하는 꼴"이라면서 "특히 지난 연말까지 기가인터넷 500만 가입자 달성을 위해 전사가 뛰어들면서 속도가 나올 수 없는 곳에서도 기가인터넷을 팔고 편법 개통처리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 유튜버의 폭로로 시작된 '인터넷 속도 저하' 파장 계속

IT유튜버 잇섭의 기가인터넷 속도 저하 문제제기 영상의 한 장면.

이같은 인터넷 속도 논란은 한 유튜버의 폭로가 도화선이 됐다. 앞서 IT 유튜버 '잇섭'은 지난달 1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KT에 10기가 인터넷 요금(월 8만8000원)을 내는데 100Mbps 속도를 제공받았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잇섭의 영상은 이틀 만에 18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파장을 일으켰고, 'KT 인터넷 고의 속도저하' 논란이 공론화됐다.

KT는 이후 "장비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고객 식별정보가 누락돼 속도 품질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고의적인 속도 제한은 없었고 기술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장비를 교체하면서 고객 서비스 프로필 정보에 10기가 아닌 100메가로 잘못 입력하는 실수였다는 것이다. 구현모 KT 대표도 "조사해보니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며 "고객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고객센터 등의) 응대 과정에서 철저히 파악했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잘못됐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KT는 10기가 인터넷 사용 고객을 전수 조사해 발견된 문제를 수정 조치하고 오류가 확인된 24명의 요금을 감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은 기가인터넷 부당가입의 진상조사 및 대책마련 촉구를 위한 집단소송을 예고하고 나섰다. 지난 5일부터 법무법인 주원의 김진욱 변호사가 법률대리를 맡아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을 통해 피해자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약관 개정뿐 아니라 이용자 고지 강화돼야"주요 시민단체에서도 인터넷 및 이동통신 서비스 약관 개선 및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참여연대 측은 "소비자가 스스로 문제 발생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증명하기 어렵고 증명한다 하더라도 당일에 한정해 배상하기 때문에 몇 천원 수준"이라며 "피해를 입은 당사자를 생각하면 너무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역시 "여러 환경이나 조건상 여건으로 소비자 간 속도 측정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약관상 최저보장속도 기준이 30% 수준인 것은 너무 낮다고 생각한다. 최소 요금제가 내세우는 속도의 80~90%는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용자 고지 시스템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사무국장은 "실제 속도가 과도하게 떨어지거나 시스템 상 문제가 생기면 통신사가 즉각 이용자에게 알리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당연히 서비스 제공자인 통신3사가 이용자에게 요금제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음을 확인시켜줄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KT는 "10기가 인터넷 관련 논란은 사람의 실수에 의한 것으로 봐야하며 눈에띄는 유선망 투자감소가 없었던 만큼 통신사 인프라 문제로 연결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투자 계획 비중에 매년 변동이 있지만 앞으로도 유선망 투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객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모든 인터넷 서비스 품질 향상에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와 과기정통부는 지난달부터 초고속인터넷 실태점검에 나섰다. 방통위는 통신사의 고의적인 인터넷 속도 저하 및 이용약관에 따른 보상, 인터넷 설치 시 절차 등에 대해 전기통신사업법 상 금지행위 위반 여부를 중점 점검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는 국내현황 및 해외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용약관에 대한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