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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K-할매에게 감사와 존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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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주(칼럼니스트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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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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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와썹 K-할매' 신박한 웃음과 감동 선사

사진출처=방송캡처
사진출처=방송캡처
할아버지에겐 죄송스럽지만, 역시 할머니다. 추억 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도, 보다 그리운 것도. 손주를 먹이고, 입히고 따뜻하게 품는 건 아무래도 할머니니까.


요즘은 할머니 전성시대다. ‘할매니얼’이라니, 이미 전부터 인기는 꿈틀대고 있었지만 윤여정 배우가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정점을 찍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평범한 할머니부터 윤여정 배우처럼 멋진 할머니까지,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사실 모든 할머니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이다. 주름 켜켜이 자리 잡은 사연, 백발 한 올 한 올마다 스민 눈물은 두꺼운 책 한 권을 거뜬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간 보려 하지 않고 듣고 싶어 하지 않았을 뿐 우리의 할머니들은 긴 세월을 건너 항상 우리 곁에 함께 있었다. 그런 할머니들에게 이제야 관심을 갖게 되다니.

요즘 우리 것 앞에 ‘K’를 붙이는 유행 덕분인지, 한국 할머니를 ‘K-할머니’라고 한단다. 그런 우리네 할머니가 급기야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셨으니, 바로 JTBC의 ‘와썹 K-할매’다. ‘외국인 손자와 시골 할매의 기막힌 동거’라는 부제로 지난주 첫 방송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던 건 내게도 이 손녀 하나밖에 모르던 각별한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시진출처=방송캡처
시진출처=방송캡처



황해도가 고향인 할머니는 한국 전쟁 때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란을 왔다. 자식은 아들 하나만 남기고 모두 병으로 목숨을 잃어 가슴에 묻었고, 그 사이 과부가 됐고, 홀로 나의 아버지를 키웠다. 그 수고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까 싶지만, 탁월한 이야기꾼이던 할머니가 틈날 때마다 들려준 서사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었고 무수한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했다. 훗날 꼭 소설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만큼.

그러나 좀 더 자란 후 이 땅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내 할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됐다. 그저 시기와 전쟁의 이름이 다를 뿐, 누구나 치열한 질곡의 길을 걸어왔음을. 딸이라고 공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못 배운 설움, 고된 시집살이, 열악한 환경에서의 출산, 쉼 없는 가사노동,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 대한민국의 역사와 개인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이른바 ‘K-할머니’의 가슴에는 그렇게 전 세계 어느 할머니와도 결코 비교할 수 없는 ‘한’이 또아리를 틀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할머니들의 진가는 그 한을 옹심으로 치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과 ‘흥’, K-할머니는 이 두 단어로 고된 일상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드는 힘을 지닌 능력자들이 아니던가. 우리 할머니들은 눈물과 한탄 대신 호방한 웃음으로, 흥겨운 노래로, 덩실덩실 춤으로, 넉넉한 인심으로 세상을 이기고 후손을 품었다.

사진출처=방송캡처
사진출처=방송캡처


‘와썹 K-할매’는 앞으로 그런 우리네 할머니들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으면 한다. 일단 호기심으로 시청한 첫 회는 낯선 이국의 손자가 지나치게 잘생기고, 착해서! 반칙이었다. 더불어 꽃무늬 일바지를 입고 밭일을 하고, 오일장에 가고, 미용실에서 ‘할머니 펌’을 하고 할머니 손맛이 담긴 음식을 먹는다는 다소 진부한 일과로 채워져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다음 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1회의 주인공 김추월 할머니가 보여준 유머와 여유 덕분이었다.

영어 한마디 못해 말문이 막히면 “먹어!” 한 마디로 상황을 종료시키는, 꿀리지 않는 당당함. 닭볶음탕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못 들은 척 하고는 마지막 날 한 냄비 끓여주는 무심함을 가장한 세심함, 평소에는 비싸서 잘 시키지도 못하는 탕수육을 시켜 주고 생색내는 귀여움까지.


사진춸처=방송캡처
사진춸처=방송캡처


진행을 맡은 장윤정과 장도연은 손자와의 이별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지만, 우리의 주인공 김추월 할머니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낯선 손자를 처음 만났을 때 ‘자이언트 스마일’을 선물했던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손자를 떠나보냈다. 얕은 눈물 따위는 우리 할머니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분명 짧은 만남 뒤 느껴질 빈자리는 몇 배로 크겠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면 좋고, 만나지 못하면 또 어쩌겠는가. 함께 있을 때 충분히 즐거웠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아닌가’ 라고 미소 뒤로 김추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와썹 K-할매’ 다음 편은 다 큰 손자가 아닌 꼬마 손자 여러 명의 출연을 예고했다. 2회에선 또 어떤 할머니가 ‘K-할매’의 저력과 매력을 보여줄까. 부디 진부함을 딛고 할머니와 함께해 행복했던 이들에겐 추억을, 할머니의 정을 느끼지 못한 이들에겐 대리만족을 선사하기를.

이 땅의 모든 할머니에게 만수무강과 축복을!


이현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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