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 괴롭혔다고 지하실서 근무…인권위 "모멸감 줘선 안돼"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일지라도 가해자 근무장소를 지하실로 지정하는 건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기 위해 가해자 근무장소를 환경이 열악한 지하실로 바꾸는 건 인격권과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12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학교 교직원인 A씨는 지난해 3월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지목돼 근무 장소 분리 명령을 받았다. 이에 A씨는 근무 공간으로 적합하지 않은 지하공간으로 근무 장소를 옮기도록 지시한 것은 인권침해라며 학교 이사장을 상대로 인권위 진정을 제기했다.

학교 측은 지하 근무공간은 다른 직원들의 휴게실로 쓰인 적이 있고, 해당 장소 외 진정인이 단독으로 사용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사용하는 장소를 진정인의 근무장소로 제공하기가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A씨는 근무 장소가 변경된 이후 수차례 연가와 병가 등을 신청했고 변경된 근무 장소에서 제대로 근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하실에 방치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A씨 근무장소로 지정된 장소는 지하 1층으로 자연 채광이 되지 않고 공기순환에 어려움이 있었다. 근처에 기름이 담긴 제초기를 보관한 창고가 있어 심한 기름 냄새가 나는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감독기관에서도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피진정학교에 진정인의 근무 장소 재지정을 검토하도록 권고했다.


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는 "해당 근무 장소는 사무환경 측면에서 매우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무공간이 지상층에 배치된 것과 달리 지하 1층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진정인에게 심리적인 모멸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진정인은 근무 장소 변경 조치 이후부터 해임 시까지 약 3개월 간 두통과 어지럼증 등을 호소하며 병가와 병조퇴를 지속적으로 신청했다"며 "관리자가 진정인의 근무상황을 확인하고 결재하는 과정에서 진정인의 건강상 고충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라고 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확인한 경우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와 함께 행위자에 대한 징계, 근무 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인권위는 근무 장소를 변경하더라도 해당 조치가 피해자 보호 취지를 벗어나 징벌에 준하는 조치 또는 행위자에게 모멸감을 줄 목적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