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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판] 비타민 먹는 척, 뇌전증 숨긴 남편…시가도 '한통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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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영희 법률N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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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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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과 관련없습니다./사진=게티이미지
본문 내용과 관련없습니다./사진=게티이미지
어린 시절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뇌질환을 앓고 있는 남편, 그런데 남편은 이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 2년이나 남편과 교제했지만 남편에게 이런 병력이 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습니다. 아내는 자신을 완벽하게 속인 남편과의 결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뇌전증 숨긴 남편…사기결혼일까

A씨는 남편과 2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남편에겐 결혼 전부터 꾸준히 복용하는 약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 약을 별다를 것없는 비타민이라고 말했고 A씨도 이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A씨는 약통에 '하루 3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 A씨. 남편이 먹는 약이 어떤 약인지 수소문해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약통에 든 건 다름 아닌 뇌전증(간질)약이었습니다.

A씨는 남편에게 따지듯 약을 복용하는 이유를 다시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남편은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때 뇌수술을 받은 후 운동장애가 생겨 약을 먹게 됐다"고 말이죠.

알고 보니 남편은 지금도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3개월마다 뇌전증약을 처방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남편은 A씨에게 한번도 병원에 간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A씨에게 뇌전증약을 먹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시어머니가 남편 대신 약을 받아왔던 겁니다.

A씨는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할 정도의 질환이 있다면 당연히 결혼 전 자신에게도 당연히 알려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사실을 속인 남편을 더이상 신뢰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혼인취소가 인정되는 경우

뇌전증(간질)이란 반복적인 발작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적인 뇌 질환을 말합니다. 뇌전증의 원인으로는 유전이나 교통사고·뇌염·뇌수막염 등으로 인한 뇌 손상 등이 꼽히지만 명확한 발병 사유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병을 숨기고 결혼한 경우, 이른바 사기결혼으로 혼인 취소가 가능할까요?

혼인취소란 결혼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혼인의 효력을 소멸시키는 제도입니다. 혼인취소를 하면 가족관계등록부에 이혼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다만 결혼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없애는 혼인무효와는 다릅니다. 혼인취소판결이 확정되면 그 이후의 결혼관계가 해소될 뿐입니다. 따라서 혼인취소 이전 두사람 사이에 자녀가 있다면 혼인 중의 출생자로서의 지위가 유지됩니다.

혼인취소는 법이 규정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청구 가능합니다. 민법은 △근친혼·중혼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 사유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해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 등을 혼인취소의 사유로 명시하고 있는데요. (민법 제816조) A씨의 경우, 질병을 숨기고 결혼한 것이 '사기'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른바 혼인 사기는 혼인의 당사자 일방 또는 제3자가 적극적으로 거짓을 고한 것은 물론 진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숨기거나 침묵한 경우도 포함됩니다. 다만 문제의 거짓말이 혼인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당사자가 미리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만 혼인취소가 인정됩니다. (대법원 2007. 10. 25. 선고 2007므1058)

실제 급성 정신병을 숨기고 결혼한 아내와의 혼인취소가 인정된 경우도 있습니다. 사건 속 아내의 정신병은 언제든 재발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아내는 결혼 생활 내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웃고 남편을 외면하는 증세를 보였고 남편은 법원에 혼인취소를 청구합니다. 이에 법원은 "피고의 행위는 혼인 여부의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실에 대한 기망행위"라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구가정법원 2017. 9. 12. 선고 2017드단103575 판결)

A씨 역시 남편의 질환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남편의 뇌전증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거나 결혼 전 뇌전증 사실을 미리 알았을 경우, 결혼 자체를 망설였을 정도였다면 혼인취소 청구가 가능합니다.

진짜 혼인취소 청구를 원한다면 가능한 한 법적 절차를 빠르게 진행해야 합니다.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는 사기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만 가능하기 떄문입니다.

◇병 자체론 이혼 안 되지만…

A씨는 남편뿐 아니라 시가 식구들 모두가 남편의 병을 숨겼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를 이유로 이혼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뇌질환 자체로는 이혼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부양·협조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질환이 충분히 치료 가능하고 배우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등의 특별한 이유가 없는 질환 자체만으론 이혼이 어렵습니다. (대법원 1981. 10. 13. 선고 80므100 판결)

하지만 남편은 A씨에게 병을 숨겼습니다. 이런 이유로 부부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다면 이혼 청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미 혼인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난 부부의 관계라면 이를 계속 유지시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법 역시 이런 상황에까지 이른 정도라면 그 상황 자체를 이혼사유로 보기 충분한다는 입장입니다. (대법원 2005. 12. 23. 선고 2005므1689 판결)
[법률판] 비타민 먹는 척, 뇌전증 숨긴 남편…시가도 '한통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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