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된다"...외국계운용사 '코리아 엑소더스'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국내에서 혹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국내 공모펀드 시장이 침체되면서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자 한국시장을 철수하거나 새로운 상품 출시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3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블랙록자산운용은 국내에서 공모펀드 사업을 철수키로 하고 최근 관련 사업부문을 DGB자산운용에 1대 0의 비율로 흡수 분할합병키로 결정했다. 분할합병기일은 오는 9월29일이다. 블랙록운용은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2008년 설립한 한국 법인이다.


국내 등록된 첫 외국계 운용사인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도 최근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 국내 공모펀드 이관작업을 위해 자산운용사와 협의 중이다.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은 2019년 삼성액티브운용과 합병이 추진됐지만 불발됐다.

호주계 운용사 맥쿼리자산운용은 지난달 16일 '파인만자산운용'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파인만인베스트가 인수한 뒤 이름을 바꿨다.

앞서 2012년엔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JP모건자산운용도 국내 진출 11년 만인 2017년 한화자산운용에 펀드를 이관했다.


외국계 운용사들은 해외 선진운용기법을 전수하고 고용을 창출한다는 명분으로 2005년 이후 우후죽순 들어섰다. 하지만 국내 공모펀드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외국계 운용사들은 적자를 기록하거나 AUM(운용자산)이 크게 줄었다.

블랙록자산운용과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의 지난 11일 기준 AUM은 각각 1조724억원, 4745억원으로 국내에 등록된 운용사 순위 100위권 안팎에 머물고 있다.

금융당국이 펀드시장 규제 강화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사태 이후 지난 3월25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 시행에 이어 지난 10일 고난도 금융상품 관련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여기에 코로나19(COVID-19) 이후 직접 투자가 늘면서 상장지수펀드(ETF) 열풍과 해외 주식을 '직구'하는 일이 늘면서 외국계 운용사들의 설자리가 더 좁아졌다. 이같은 변화에 영국 프루덴셜 금융그룹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은 연내 국내에서 첫 ETF 출시를 검토 중이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외국계 운용사의 경우 전체 수탁고 대비 한국 수탁고 비중이 매우 낮고 기대감도 많이 떨어졌다"며 "공모펀드 시장이 부진한 상황에서 한국씨티은행이 소매금융 부문에서 손을 떼기로 하면서 해외펀드를 운용하는 외국계 운용사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ETF와 직접투자가 급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공모펀드 환경이 어려워진 데다 금융당국이 판매 규제를 대폭 강화해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어 리테일 네트워크 능력이 부족한 외국계 운용사들의 경우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외국계 운용사들의 철수는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해외의 다양한 좋은 상품들을 선택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