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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와 철강왕 카네기[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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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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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20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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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삼성라이온즈 창단식에서 이건희 당시 구단주(사진 왼쪽)가 이수빈 구단 사장에게 단기를 수여하고 있다. 이 구단주는 당시 40세로 그룹 부회장이었다. (출처=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
1982년 삼성라이온즈 창단식에서 이건희 당시 구단주(사진 왼쪽)가 이수빈 구단 사장에게 단기를 수여하고 있다. 이 구단주는 당시 40세로 그룹 부회장이었다. (출처=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보유해왔던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 주식 5000주. 24조원대의 상속재산과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와 상속(지분 이동) 이후 그룹 지배구조 변화에 가렸던 미미한 규모다.

고 이 회장은 삼성 라이온즈 출범 당시인 1982년부터 2001년까지 구단주를 맡았었지만 주식까지 보유했던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다만 당시의 정황만이 이건희 회장의 야구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정도다.

1981년 정부로부터 프로야구단 창설의사를 타진받은 삼성그룹은 이건희 당시 부회장 중심으로 발빠르게 움직여 당시 6개 구단 중 가장 먼저 팀을 발족시켰다. 초대 구단주는 이건희 그룹 부회장, 구단 사장은 이수빈 당시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사장이었다.

이건희 구단주는 초창기 선진 야구기술의 접목과 어린이 등 아마야구 저변확대도 직접 지시했다. 일본과 미국의 야구 영웅 나가시마 시게오와 행크 아론을 초청해 창단 초기 구단을 방문토록 했고 미국 명문구단인 아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초청해 친선경기도 가졌다.

이 회장이 동양방송(TBC) 재직 시절 주연 못지 않게 조연의 중요성을 강조해 TBC를 드라마 왕국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라이온즈 이만수, 이선희, 김시진, 장효조, 유중일, 양준혁, 오승환 등은 모두 주연이자 조연이었다. 이 구단주가 회장으로 승진한 이후인 90년대에는 초중고 야구대회를 개최해 홈런왕 이승엽 등 꿈나무를 발굴했다.

호화군단이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85년 반쪽 우승(한국시리즈 생략)을 제외하고는 무관에 머물렀던 라이온즈의 도약에는 이건희 회장의 방침인 S(슈퍼)급 인재 영입전략에 힘입은 바 크다. 감독출신 구단 CEO로 처음 발탁된 김응룡 사장은 취임 당시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나를) 낙점하고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승엽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타자로 아시아의 홈런왕으로 성장한 것도 이건희 회장과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말년에 이 회장이 병상에 있었을 때 삼성의 경기 중계 당시 이승엽의 홈런 장면을 보고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마저 있을 정도다.

그처럼 애지중지했던 이건희 회장의 라이온즈 주식 5000주의 주인이 지난달 말 대구광역시로 바뀐 것이다. 이건희 기부의 소소한 내역이지만 이건희 평가의 또다른 시작일 수 있다.

미국에는 카네기홀로 기억되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있다. 카네기는 철강 수요의 증대를 예견하며 미국 철강시장의 70%를 생산하는 US스틸사를 일궈냈지만 경영 과정에서 무자비한 인수.합병과 노동자에 대한 탄압 등 여러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2500여개의 공공 도서관 건립과 기증, 글로벌 명문 카네기멜론대학 설립, 공연장 카네기홀 건립 등 3억5000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700억 ~ 800억 달러(한화 77조 ~ 88조원))의 기부로 자선가로 이미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국내 수위기업 삼성을 넘겨받았던 이건희 회장도 반도체와 이동통신 등에 주목해 현재의 글로벌 삼성을 일궈냈다. 그 과정에서 부의 편법적인 승계와 정경유착 의혹, 비관련 사업 다각화와 노동자들의 희생 등 그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기부 내역까지 폄훼돼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이 파종부터 수확, 탈곡, 조리까지 다 마친 것은 아니지만 카네기의 철강과 이건희의 반도체는 나란히 '산업의 쌀'로 불린다. 카네기홀 홈페이지에는 '카네기가 미국의 위상을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기부문화로 바꿔놓았다'고 쓰여있다. 이건희 회장에게도 대입해 보자. 공식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는 성격 탓에 '은둔의 제왕'(hermit king, 2003년 11월 뉴스위크 보도)으로 불렸던 이건희 회장의 별칭을 사후라도 기부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선가(philanthropist)로 칭하는 것까지 인색할 필요는 없다. 국보급 미술품이 다수 포함돼 국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외에 일단 주식 5000주는 삼성팬들, 아니 체육.야구계에 대한 큰 논쟁 없는 선물이었다. 대구시는 "연고 지자체가 프로야구단 주주로 참여하는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했다. 이건희 재평가의 첫걸음이다.

배성민 경제에디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배성민 경제에디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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