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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근대국가와 모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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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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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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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근대국가와 모병제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는 국민국가의 통화 주권에 도전하는 새로운 흐름이다. 진정한 금융민주화와 세계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결제수단보다 투기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고 미국과 중국 정부의 반격에 직면해 주춤거리고 있다. 통화 주권과 함께 근대국가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노동력 이동에 대한 통제다. 지구화의 진전과 더불어 심화하는 통화 주권과 노동 주권에 대한 도전은 전통적 국가 역할의 위기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최근 한국에서 국가 위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는 모병제 논의일 것이다. 근대국가의 군은 물리력 독점을 통해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고 징병제를 통해 시민군을 구성하는 것이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공동체를 침략하는 외부의 적에 맞서 언제라도 싸울 단호한 의지를 시민의 덕목으로 강조한 것이나 루소가 용병이나 대표들로 구성된 군이 국가를 멸망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비판할 때 이들이 강조한 것은 공히 시민이 곧 군인이 되는 공화주의적 이상이었다.

한국에서도 징병제에 근거한 군의 구성은 국민들의 강렬한 평등주의적 열망을 대리하는 중요한 상징이었고 어쨌든 모든 시민은 군인이 된다는 공화주의적 이상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전쟁 없이 평화를 누리는 상황에서 조국을 수호하는 것의 가치나 군인의 역할에 대한 무관심이 늘어났다. 다시 말해 사회 전체적으로 공화주의적 덕목이나 제도가 쇠락하는 가운데 징병제에 대한 국민들 간의 합의가 약해졌고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게 모병제 논의로 이어졌다.

미국은 1960년대에 전체 군인 가운데 징병제에 근거한 의무병 비율이 30% 정도로 낮았고 따라서 1973년 상대적으로 쉽게 모병제로 전환했다. 국가적 부의 생산이 증가해 직업군인의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면 모든 시민이 군인이 될 필요가 없다는 자유주의적 입장 강화도 한몫했다. 모병제 아래서 군의 구성은 사회경제적 약자들로 이뤄질 확률이 높다. 미국의 경우 인구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흑인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과소 대표되지만 유독 군에서는 21% 정도로 과대 대표된다. 물리력을 독점하는 군이 특정 계층이나 인종으로 구성되는 것은 공동체의 앞날을 위협하는 위험한 일이다.

유럽국가들에서 모병제로의 전환은 냉전시대가 끝나고 소련이라는 주적이 사라진 안보환경이 가장 큰 요인이었고 징병자원의 감소라는 인구환경의 변화, 복지부담 증가와 국방비 지출에 대한 재정적 요인,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현대화한 군의 재구성 필요성 등이 주요 동인이었다. 우리도 남북대결이나 동북아 긴장 상황으로부터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적극 이끌어내고 새로운 사회적 조건들을 반영해 간다면 모병제 논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징병자원 감소라는 인구변화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군 참여를 검토하게 만들고 이 경우 군복무와 대체복무의 기회를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게 확대해야 할 것이다. 미군의 경우 여성 간부 비율이 15%, 한국군의 경우 6% 안팎임을 감안할 때 추가 충원의 여지가 있고 이 문제는 젠더 갈등의 관점보다 안보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모병제 논의는 이 모든 조건을 차분히 검토하기 보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낮은 신뢰와 국가를 지킨다는 가치에 대한 젊은 세대의 근본적인 회의가 담겼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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