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일시적'이라는 연준이 테이퍼링 앞당길 수 있는 이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채권을 사서 유동성을 늘리는 통화부양책을 예상보다 빨리 거둬들일 수 있다는 전망이 늘어난다. 연준은 최근의 물가 급등이 일시적이란 경기진단을 고수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 심리가 더 높아지기 전 이를 낮추기 위해 선제적으로 부양책 축소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사진=로이터

물가 올린 요인 '일시적'이지만…최근 발표된 미국 인플레이션 지표는 연달아 시장의 예상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28일 미 상무부가 발표한 개인소비지출(PCE) 가격 4월 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6% 뛰며 2008년 이후 가장 큰 상승세를 기록했다. 변동성이 높은 식품·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PCE도 전년 동월 대비 3.1% 뛰며 전망(2.9%)을 상회, 1992년 7월 후 가장 많이 올랐다. PCE는 노동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비해 더 다양한 상품·서비스 가격을 포함하며, 연준 정책 판단에 핵심적인 인플레이션 지표다. 이보다 앞서 발표된 4월 CPI 역시 전년 동월 대비 4.2% 뛰며 전망(3.6%)을 크게 넘어선 동시에 2008년 9월 후 가장 큰 상승세를 드러냈다.


4월 PCE 발표 이후에도 미 장기 국채금리가 하락하는 등 시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보다 이 물가상승이 일시적일 거란 연준의 전망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1.6%대로 반등했던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지난 28일 1.59%로 떨어진 것을 포함해 주요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같은 날 일제히 하락했다.

하지만 동시에 연준이 월 1200억달러 규모의 채권매입 부양책을 축소(테이퍼링)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늘어난다. 현재 연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물가상승이 일시적이고, 노동시장이 완전고용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테이퍼링에 대한 논의도 물론 아직 개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준이 조만간 테이퍼링 논의를 할 것이라고 전망하게 하는 근거는 늘어난다. 지난 19일 공개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몇몇 참석자가 테이퍼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리처드 클라리다, 랜달 콸스 두 연준 부의장이 지난주 연달아 테이퍼링을 생각할 시기가 올 수 있다며 의사록과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다.


시장은 연준이 테이퍼링 시점에 대한 논의를 올해 하반기 중 시작해, 실제 이행은 내년 이후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오는 8월 잭슨홀 미팅(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주최 심포지엄)과 11월 FOMC 사이께 테이퍼링 '신호'를 내고, 실제 단행 시점은 내년이 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테이퍼링보다 늦은 2023년 이후로 전망된다.

연준의 '선제 방어' 나올까?그러나 이 컨센서스보다 테이퍼링 논의 개시 시점 및 실제 테이퍼링 시점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30일 블룸버그통신은 물가가 오를 것이란 소비자들의 기대가 굳어져 실제로 물가상승세가 가팔라질 가능성을 막기 위해 연준이 선제적으로 테이퍼링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했다. 논의 시점도 다음달 15~16일 FOMC로 전망했다.

로렌스 메이어 연준 전 이사는 블룸버그에 "인플레이션은 올해 2.5%나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며 "주로 일시적인 요인이겠지만 인플레이션은 내년에도 2%를 훌쩍 넘길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연준이 위험관리를 위해 한 번 커지면 되돌리기 쉽지 않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서서히 높아지는 걸 피하려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르면 오는 12월 테이퍼링 개시를 전망했다.

그는 연준이 "새 통화정책체계에서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수는 없지만 선제적으로 테이퍼링 할 수는 있다"고 부연했다.

블룸버그는 연준이 경계할 수 있는 지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팬데믹 이후 공급망 병목이 해소되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앞으로 몇 분기 동안 물가 지표가 높은 수준으로 상승할 수 있다. 이런 지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거라는 심리를 만들어 실제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수 있다."

실제로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이 늘어야 공급망 병목 해소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일부 분야에선 공급 증가가 빠르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철강업계가 대표적이다. 미국 최대 철강업체인 US스틸은 철 가격 상승의 수혜를 입고 있지만 공장을 더 짓거나 고용을 늘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달 13억달러를 들여 제철소를 개조하기로 한 계획을 철회했다. 노동시장에서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감지된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고용 비용 지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 기업들의 지급한 임금 증가율은 전분기대비로 2003년 이후 가장 컸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내려갈 때보다 올라갈 때 가계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빠르게 반응한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앤드류 레빌 다트머스 대학 교수는 "자산매입 규모를 줄이는 건 금융 조건을 경색시킬 순 있다"며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영향은 투자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방지하는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