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죽으려고 해"…5층 건물 덮친 순간 어머니는 아들 번호를 눌렀다

119 구조대가 사고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처참하게 찌그러진 시내버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21.6.9/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무언가 큰 게 버스를 덮쳐서 사람들이 지금 다 죽으려고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큰 재난인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광주 건물 붕괴 사고 부상자 A씨(73·여)의 장남 B씨(46)는 지난 9일 4시28분쯤 어머니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사고 발생 6분 후였다.

지난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단지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져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사망자는 9명, 중상자는 8명 발생했다.

B씨는 평소 어머니와 하루에도 여러 통 전화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그날도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밥은 먹고 일하느냐", "엄마는 친구들을 만난다"는 소소한 근황을 나눴다.

4시28분에 걸려온 전화도 일상적인 통화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B씨는 "'무언가 큰 게 버스로 떨어져서 엄마 어깨를 쳐버렸다. 사람들이 버스에 갇혀있는데 다 죽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판단도 되지 않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차를 돌려 증심사 쪽으로 가는데 그때만 해도 이런 끔찍한 상황일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후 뉴스에서 속보가 이어졌고,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B씨는 '제발 살아만 계셔달라' 되뇌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고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차량정체가 이어졌고 B씨 속은 타들어 갔다. "정말 끔찍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현장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어머니가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B씨는 즉시 차를 돌려 응급실로 향했고 피범벅이 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갈비뼈와 등뼈, 엉덩이뼈 등 다발성 골절상을 입고 응급환자로 이송됐다. 다행히 의식은 있었다.

현재 거동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목숨을 건졌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는 그날 무등산 증심사에 산책을 하러 두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선 참이었다. 앞 좌석에 탔던 어머니와 한 친구는 목숨을 건졌지만, 뒷 좌석에 탔던 한 명의 친구는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 절친의 비보(悲報)를 접하지 않은 상태다.

10일 오후 광주 건물 붕괴 참사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광주 동구청 앞에서 한 유가족이 희생자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2021.6.10/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B씨는 "어머니가 사고 당시 뉴스를 보고 너무 놀라셔서 고인 소식을 아직 전하지 못했다. 자꾸 00이 괜찮은지 연락 좀 해보라고 하시는데…충격이 심할까봐 차마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친구 한 분도 척추를 다치셔서 상태가 좋지 않다. 살아계신 게 천운이라고 생각 될 만큼 끔찍한 사고였다. 빨리 쾌차하시기를 바란다. 다른 희생자 유족분들께도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광주시와 동구는 사고 수습반을 구성해 희생자 장례 절차와 부상자 치료 지원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현재 부상자들 트라우마 치료가 시급하다고 판단했지만, 부상 정도가 심해 추후 심리 치료 등의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사고 희생자 9명의 유족이 고인의 부검에 전원 동의하면서 전날 오후 10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순차적으로 부검이 진행되고 있다. 부검을 마친 희생자들은 장례 절차를 진행한 후 장지로 이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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