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 허탈…부산 건설현장 사망사고 원·하청 '집유'

(부산=뉴스1) 박세진 기자,노경민 기자

2019년 부산 남구 문현동 경동건설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故정순규씨의 유족들이 16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앞에서 1심 판결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2021.6.16 /뉴스1 © News1 박세진 기자

(부산=뉴스1) 박세진 기자,노경민 기자 = 법원이 지난 2019년 경동건설 공사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故) 정순규씨(50대) 사고와 관련해 경동건설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JM건설 이사 총 2명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유족들은 1심 선고 공판 이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를 규탄한다"고 외치며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4단독(서근찬 판사)은 정순규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경동건설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JM건설 이사 등 총 2명에게 각각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날 경동건설 안전관리자 1명에게는 금고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경동건설과 JM건설 업체에는 각각 10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서 판사는 "원청 업체의 경우 하도급을 주더라도 현장을 관리감독해야 하고 주의 의무가 인정된다는 게 판례"라며 피고들에게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서 판사는 "사건 경위와 관련해 목격자가 없으나 제2사다리에서 제1사다리로 이동하다가 사고가 난 것은 인정할 수 있다"며 "유족과 합의가 안 된 점과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을 수 있는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날 부산지법 동부지원 304호 법정에서 예정된 선고 공판은 오후 2시에 시작됐다. 당초 정순규씨 사건에 대한 선고는 공판 초반에 내려질 예정이었지만 경동건설과 JM건설 측 피고인들이 법정에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30여분간 미뤄졌다.

서 판사의 호명에도 피고인들이 한차례 법정에 나타나지 않자 정순규씨 가족들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정씨의 부인과 아들 정석채씨는 긴장된 표정으로 두손을 맞잡고 선고를 기다렸다. 정씨는 "유족들과 언론을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늦게 나타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3월31일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당초 선고 공판은 지난해 12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담당 판사가 바뀌면서 한 차례 재판이 미뤄졌다.

2019년 부산 남구 문현동 경동건설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故정순규씨의 유족들이 16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앞에서 1심 판결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2021.6.16 /뉴스1 © News1 노경민 기자

◇"사법부 규탄, 검찰은 항소하라"…눈물의 기자회견

집행유예와 벌금형 선고 이후 피의자들은 곧장 법원을 빠르게 빠져 나갔다. 취재진의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을 남기지 않았다.

정씨의 유족들은 법정 앞에서 허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법원 앞 기자회견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정씨는 기자회견에서 "걱정하고 예상했던 판결이 나왔다. 사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현장 동료들이 '정순규 반장님 정말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힘내세요'라고 북돋아줬다"고 울먹였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이런 결과밖에 전해주지 못해 너무나 죄송하다"며 "검찰에 항소를 하라는 의견을 다음주 제출할 계획이다. 유족들은 대법원 판결까지 긴 여정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취재진에게 "이번 재판에 중대재해 기업처벌법도 적용되지 않은 걸로 보인다"며 "법원이 솜방망이 판결을 내린 걸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족들은 직장도 다니지 못 한 채 재판부를 향해 많은 의견을 제출하고 탄원서도 제출했다"며 "1심 선고 결과를 수용할 수 없고 검찰이 항소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노정현 진보당 부산시당 위원장은 "사법부가 대놓고 편을 들어준 것"이라며 "유족들의 뜻을 이어 받아 끝까지 싸워 나가겠다. 1년에 2000명이 일터에서 죽어나가고 있다"고 엄중한 처벌을 바랐다.

부산 남구 문현동의 한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해 숨진 정순규씨의 유가족이 건설현장 앞을 찾아 노제를 지내고 있다.(유가족 동의 촬영)2019.11.12© 뉴스1 박세진 기자

◇故정순규씨 경동건설 공사현장 추락사고란

지난 2019년 10월30일 오후 1시5분께 부산 남구 문현동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하청업에 소속 작업자 정순규씨가 추락해 하루만에 숨졌다.

경찰은 정씨가 4.5m 높이에서 비계 작업을 하다 안전난간 안쪽으로 추락한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부산고용노동청은 약 2m 높이 수직사다리에서 떨어졌다고 결론내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유족들은 업체 측의 주장대로 사고 위치가 반영됐고, 사고 이후 현장이 업체 측에 의해 변경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고 현장에 목격자나 폐쇄회로(CC)TV는 없었다.

이후 유족들은 업체 측이 현장 안전관리 감독자로 정순규씨를 적어놓고 자신들이 날인을 한 사실도 밝혀내기도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해 10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국회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부산노동청을 향해 재조사를 요청했지만 바뀐 건 없었다.

한편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숨질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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