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세, 어느 나라 타격이 제일 클까

【파리=신화/뉴시스】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참여하는 보편적 기후변화 협정이 진통 끝에 최종 채택됐다. 이날 파리 에펠탑에 '클라이밋사인(CLIMATESIGN)'이라는 로고가 비춰지고 있다. 2015.12.13

EU(유럽연합)이 내달 탄소국경세 도입 법안을 공표할 예정인 가운데 철강, 시멘트, 전력, 알루미늄, 비료 등의 제품에 탄소국경세가 우선적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같은 영향으로 중국, 러시아, 터키 등이 높은 탄소세율을 적용받아 교역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EU 뿐 아니라 미국 등 주요국에서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것을 천명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친환경 제품과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는 18일 발간한 '세계 무역을 재편하는 탄소국경 조정세' 보고서를 통해 "철강, 알루미늄 생산과 같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상당한 압박을 받을 전망이고 배출량이 많은 석탄과 석유 수요가 둔화돼 글로벌 수출도 감소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또 "유럽과 전 세계가 배출량을 줄임에 따라 에너지 집약적 상품 수출국들은 단기적으로는 가격 하락, 장기적으로는 급격한 수요 둔화와 씨름해야 할 것"이라며 "반면 자국 산업의 배출량을 효과적으로 감축하고 최첨단 녹색기술을 발전시킨 국가들에게는 새로운 수출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EU 탄소국경세에 가장 큰 타격 입을 제품·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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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국경세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에 적절한 비용 제재를 하지 않는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이 온실가스 규제가 강한 나라로 수입되는 과정에 매기는 세금을 일컫는다. 생산기지를 온실가스 규제가 약한 나라로 옮겨 규제를 회피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수입국 역내에서 사업을 영위 중인 기업이 상대적으로 강한 규제로 인한 역차별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딜로이트는 "탄소 가격이 낮은 국가에 위치하며 생산 공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출 기업들이 가장 높은 세율에 직면할 것"이라며 "반대로 탄소 가격이 더 높은 국가에 위치하며 생산 공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적은 수출 기업들은 적어도 일정 비율의 세금 감면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철강, 시멘트, 전력, 알루미늄, 비료 등에 탄소국경세가 처음 적용될 전망이다. 이같은 에너지 집약적 상품의 대(對) EU 수출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러시아이고 중국과 터키도 2019년 기준 에너지 집약적 상품의 EU 수출이 각각 50억유로(최근 환율 기준 약 6조7400억원)를 넘었다.

딜로이트는 "중국,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철강 생산은 EU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더 많아 탄소 국경세가 실행되면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며 "영국 노르웨이 스위스도 상대적으로 대EU 수출 규모가 크지만 노르웨이는 EU 배출권 거래제에 속해 있고 스위스는 EU보다 탄소 가격이 높으며 영국은 EU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어서 이들 3개국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거나 미미한 영향만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들도 직간접적으로 EU 탄소국경세의 영향을 비켜가지는 못할 전망이다.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아국, 이집트는 상위 10대 에너지 집약적 상품 수출국은 아니지만 EU 수출 규모가 각각 10억 유로(약 1조3500억원)에 육박했고 이들 중 일부는 이같은 상품의 대EU 수출이 국민 소득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탄소국경세 도입, 여파는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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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러시아는 수출길이 상당 부분 막힐 수 있다는 우려에 WTO(세계무역기구)에 이의를 제기할 것을 시사하는 등 강하게 탄소국경세에 반대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다른 나라들끼리 보복 조치를 주고 받는 데 따른 갈등 수위도 높아질 수 있다. 딜로이트는 "탄소국경세를 강행할 경우 유럽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딜로이트는 "다른 나라들이 EU의 기후정책과 탄소 가격을 따라 잡는 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EU 수출이 하방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며 "2019년 한 해에만 EU는 320억유로(약 43조1500억원) 규모의 철강, 160억유로(약 21조5700억원) 규모의 알루미늄을 수출했고 미국, 터키, 중국이 EU산 상품의 최대 수입국"이라고 했다.

또 "이들 국가들은 탄소가격 이니셔티브를 실행할 때까지 EU 외 국가의 저렴하고 탄소배출량이 많은 대안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며 "해당 국가들이 EU가 탄소국경세를 줄이거나 없애도록 하기 위해 EU의 수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려는 행보를 보여왔던 미국에서도 반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딜로이트는 "미국 기후대사는 최근 EU에 탄소국경세 보류를 촉구했으며 이같은 정책이 국제 관계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며 "다른 국가들이 배출량 감축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에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시사했다"고 설명했다.

◇석탄·석유 수요 감소, 녹색기술·제품 수요 증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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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EU의 탄소국경세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하지만 미국 역시 자국내 탄소국경세 도입 움직임을 천명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탄소국경세를 포함한 친환경 정책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점이 대표적이다. EU에 이어 미국까지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가속화하면 전 세계적인 반(反)탄소 움직임은 앞으로 더 본격화될 전망이다.

딜로이트는 EU와 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이 더 구체화되면 글로벌 전역에서 석탄·석유 소비가 감소해 탄소누출 가능성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딜로이트는 "탄소가격제가 확산되면 석유수출은 불균형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캐나다, 베네수엘라의 석유생산은 탄소배출량이 많아 석유 수입국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함에 따라 가장 먼저 기피할 국가가 될 수 있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생산은 상대적으로 탄소배출량이 적어 수요가 사우디산(産) 석유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석탄에서도 호주,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 글로벌 석탄수출에서 총합 75% 이상을 차지하는 3개 나라가 불균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딜로이트는 내다봤다. 딜로이트는 "이들 중 상당수가 석탄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 석탄 의존을 탈피해 경제 다각화를 이룰 수 없다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녹색제품과 기술에 대한 수요는 커질 전망이다. 딜로이트는 "각국이 배출감축 노력을 강화하면서 저탄소 상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배출을 제한하고 재생에너지 비용을 낮추며 에너지 저장 용량을 늘리는 '그린 테크놀로지'(녹색기술)도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또 "EU는 이러한 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입장"이라며 "EU의 높은 환경기준으로 역내 기업들은 그린 테크놀로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기 때문에 EU는 '선점자 우위'의 이점을 가지게 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