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합법?' 애매한 잔여백신 매크로, 막기 어려운 이유

온라인에서 유포되고 있는 잔여백신 예약 매크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시험 작동해본 모습. 자동업데이트가 이뤄진다/사진=머니투데이

매크로(자동입력 반복) 프로그램을 사용해 잔여백신 예약에 나서는 사례가 알려지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와관련 방역당국도 매크로 이용이 공정 경쟁을 방해하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위법성 여부를 적극 검토하고 나섰다.


김기남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기획반장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매크로 이용과 관련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 자체를 금지하거나 제재하는 규정이 명확히 있지는 않다"면서도 "매크로 사용의 목적, 시스템 운영 장애 야기 여부, 예방접종사업 방해 여부 등 사안별로 다를 것이기 때문에 종합해서 검토하고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일부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잔여백신 예약을 자동처리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확산하고 이를 통한 예약하는 사례가 적지않다는 사실이 머니투데이 보도로 확인됐다. 방역당국이 이후 논란이 커지자 공무집행방해죄,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의 적용 가능성을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 [단독]잔여백신, 왜 안보이나 했더니…"매크로 돌려 예약했다"

매크로 사용은 치트키...위법 논란 가열
최근 온라인상에서 배포돼 논란이 일었던 매크로 프로그램의 경우 네이버의 PC 기반 예약 서비스를 대상으로 한다. 카카오의 경우 모바일 예약 서비스만 지원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없어서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PC 상에서 구현되며 예약 페이지의 새로고침과 신청을 자동으로 처리해 주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매크로를 이용하면 마우스로 일일이 예약을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약이 수월하다. 잔여백신 발생량에 비해 백신접종 희망자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 매크로 사용은 일종의 '치트키'(속임수)인 셈이다.


매크로가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만큼 차단과 함께 이용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사람이 백신을 여러번 맞는게 아닌 만큼 개인의 1회성 행위여서다. 기존 암표상들이 벌이는 열차표나 공연, 스포츠 티켓 되팔이 목적 '사재기' 등의 명백한 위법 행위와도 다르다.

[서울=뉴시스]조성우 기자 = 네이버, 카카오 앱을 통한 코로나19 잔여 백신 조회와 당일 접종 예약 서비스 첫날인 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위탁의료기관인 홍익병원에서 시민들이 잔여백신 앱을 확인하고 있다. 잔여백신 예약 서비스는 오후 1시 개통했지만 네이버 앱은 대부분 잔여량이 '0'을 표시했고, 카카오 앱은 시스템 오류로 사용이 한 때 중지되기도 했다. 02021.05.27. [email protected]

여론도 엇갈린다. 대다수가 잔여백신 예약에 실패해 허탈감을 느끼는 가운데 매크로의 존재가 알려지며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반면 일각에선 매크로를 이용은 잔여백신을 빨리 맞기 위한 노력일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의견도 나온다.

매크로 차단 기술적으로 어려워..배포단계서 막아야
현재 매크로 이용 자체를 직접 제재하는 법규는 없다. 다만 사법당국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프로야구·콘서트 티켓을 확보하는 암표거래나 마스크를 사재기해 되파는 경우 업무방해와 정보통신망 침해혐의를 적용해 우회적으로 처벌해왔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도 난감한 상황이다. 과거 매크로 관련 범죄는 경제적 이득을 노린 특정인이 특정 서비스나 상품을 단기에 집중 구매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 잔여백신 예약의 경우 배포된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다수의 개인이 다수의 병의원 잔여백신을 예약하는 구조여서 이상 징후를 파악하는게 쉽지않다. 최근 잔여백신 물량자체도 많지 않다.

대책 마련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PC 예약 서비스 자체를 중단하는 방법도 있지만 서비스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 봇이나 매크로를 차단하는 별도 인증 시스템(숫자나 문자인증) 적용할 경우 사실상 PC 예약을 차단하는 것과 같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매크로를 막기 위해서는 자동 반복을 막는 요소를 추가하면 되지만 대다수 이용자가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매크로 프로그램의 악성코드 감염 등의 위험요소가 있는 만큼 정부가 매크로 프로그램 배포 행위에 대한 제재와 이용 자제를 적극 권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한 IT(정보통신) 업계 관계자는 "이제 국민들 사이에서는 매크로를 안 쓰는 사람이 '바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