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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개·고양이가 VIP인, 동물병원에 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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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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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만 저렴하게 치료해주는 병원에서의 하루…'반값 진료' 때문에 월 100~200만원씩 적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계양산 개농장서 구조해 시민보호소에 있는 주페. 드레싱을 할 때에도 아플텐데 이렇게, 착하게 잘 참는 순한 녀석이다. 입양해주실 분은 롯데목장개살리기시민모임(인스타그램 @lotte250dogs)이나 human@mt.co.kr로 연락주세요./사진=동물병원 테크니션님
계양산 개농장서 구조해 시민보호소에 있는 주페. 드레싱을 할 때에도 아플텐데 이렇게, 착하게 잘 참는 순한 녀석이다. 입양해주실 분은 롯데목장개살리기시민모임(인스타그램 @lotte250dogs)이나 human@mt.co.kr로 연락주세요./사진=동물병원 테크니션님
버려진 개·고양이가 VIP인, 동물병원에 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개농장서 죽기 위해 태어났었던 큰 개가,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천사라는 뜻을 가진 '엔젤'이었다. 덩치만 컸지 어찌나 순하고 예쁜지, 마취하기 전에도 너무 얌전했었다. 죽기 위해 태어나 뜬장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살던 녀석은, 이젠 더 건강해지려 수술을 받고 있었다. '중성화 수술'이었다.

"여아는 크면서 유선종양이나 자궁축농증에 걸리기 쉽거든요. 그런데 중성화를 하면 걸릴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어요. 엔젤이도 그럴 거예요."

수술을 마친 박기범 수의사(33)가 말했다. 그는 봉합한 엔젤이의 배 아래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엔젤이는 마취가 슬슬 풀리는지, '어우우우'하고 길게 울었다. 박 수의사가 주사기를 들었다. "깨면 많이 아플 거야. 고생했다. 진통제 놔줄게." 주사기가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엔젤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병원마다 못 받는다며 거절당했다던 개가 이곳에서는 VIP(붸리 임폴턴트 펄슨, 매우 귀한 존재란 뜻)로 이리 대접받고 있었다.
유기동물만 올 수 있는 동물병원. 이 병원, 저 병원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워 시작했다고 했다. 길 위의 생명들을 치료하다보면, 늦은 밤이 되기 일쑤다./사진=남형도 기자
유기동물만 올 수 있는 동물병원. 이 병원, 저 병원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워 시작했다고 했다. 길 위의 생명들을 치료하다보면, 늦은 밤이 되기 일쑤다./사진=남형도 기자
버려진 개와 고양이들만 올 수 있는 동물병원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가격 부담도 다른 병원의 30~50% 수준으로 싸다고 했다. 뜻은 좋으나, 망하려고 작정한 병원인 걸까. 커다란 건물에 좋은 의료장비를 앞세우는 곳이 허다한데, 그 틈에서 어찌 살겠단 건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 비밀을 알 수 있다면, 길 위에서 다친 동물들이 좀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마침 일손이 늘 부족해 일할 게 많다고 해서, 그 동물병원서 하루를 일해보기로 했다.



간판도 없는 동물병원서 만난, 길 위의 아픔


앞발 신경이 죽은 귀여운 삼색이. 야생에서 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입양해줄 이가 필요하다. 입양해주실 분은  human@mt.co.kr로 연락주세요./사진=남형도 기자
앞발 신경이 죽은 귀여운 삼색이. 야생에서 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입양해줄 이가 필요하다. 입양해주실 분은 human@mt.co.kr로 연락주세요./사진=남형도 기자
간판도 없는 곳이라, 도착하고도 맞는지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보이는 건, 적십자 마크 안에 찍힌 동물 발자국 하나뿐. 그걸로 겨우 '여기가 맞겠지' 짐작했다.

들어가니 박 수의사가 바로 보였다. 털털하게 내려온 검은 머리, 분주한 발걸음을 보니 바쁘구나 싶었다. 벽에 걸린 화이트 보드에 빼곡한 진료 일정을 보니 역시나.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수의테크니션이 입는 파란 옷으로 재빨리 갈아입었다. 제일 큰 옷으로 준비했단다(그것도 실은 살짝 작았지만).

길고양이들이 머무는 방에 들어갔다. 입원실 겉유리엔 아이들 이름과 몸무게, 먹는 약 등이 적혀 있었다. 모카, 삼색이, 점박이, 야밍이, 미카. 이름을 하나씩, 작게 부르면서 천 패드를 두 장씩 갈아줬다. 그러려니 고양이를 잠시 안아야 했다. 차에 치인 사랑이를 품에 든 이후 처음이라 떨렸다. 남자 직원이 "천으로 덮어서 아기 안 듯 안으면 된다"고 했다. 아기는 없지만, 똘이(반려견, 7살, 귀여움 주의)라고 생각하고 조심조심 안았다.
윗입술과 코를 물어 뜯긴 미카. 길 위의 삶이란 이리 고단하다./사진=남형도 기자
윗입술과 코를 물어 뜯긴 미카. 길 위의 삶이란 이리 고단하다./사진=남형도 기자
작고 따스한 길 위의 존재들. 그들의 몸엔 저마다 상처가 새겨졌다. 박 수의사에게 설명을 들었다.

미카는 윗입술과 코를 물어 뜯겼다. 숨을 입으로 쉬었다. 치석 때문에 생긴 입 냄새 때문일 거란다. 친해지려 친구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으나, 냄새난다며 싫어하다 물었을 거라고. 점박인 급성신부전증 때문에 위장관에 염증이 심했다. 스스로 밥조차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박 수의사는 "길에서 살기 때문에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길바닥에 쓰러질 만큼 아픈 뒤에야, 차마 모른척하지 못하는, 마음 약한 누군가 데려오는 게다. 그래서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이 더 많다고 했다. 왜 이제야 왔을까 싶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는.



400~500만 원, 병원비가 그렇게 나온다


자꾸 만져달라고 우는 개냥이, 모카./사진=남형도 기자
자꾸 만져달라고 우는 개냥이, 모카./사진=남형도 기자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병원비다. 누가 낼까. 아픈 녀석을 모른척하지 못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구조자들이다.

한 달째 병원에 입원해 있는 길고양이 모카. 이 녀석은 가까이 갈 때마다 '냐앙, 나야옹' 소릴 내며 빤히 봤다. "모카야, 왜 그래"하며 바라보니 더 보챘다. 유리문을 열어 머릴 쓰담쓰담 해주니 그제야 울음을 멈췄다. 손에 머릴 비비며 더 만져달라고 했다. 이 녀석 완전히, 개냥이였다. 유리문을 닫으니 다시 '냐아옹'하고 울었다.

모카를 처음 발견한 건 한 학생이었다. 아마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떨어졌거나 해서 다친 것 같다고 했다. 골반을 심하게 다쳐, 변을 볼 수 없었단다. 1차로 크게 뼈 수술을 했다. 2주 후엔 수술을 한 번 더 해야 한단다.

입원 기간이 최소 두세 달은 걸리는 치료. 다른 큰 병원에 가면 400~500만원은 병원비가 나올 거란다. 학생이 그런 큰돈이 어디서 날까.

그런데 이 병원에선 진료비가 30~50% 수준이라, 150~200만원이면 된단다. 그래도 적잖은 금액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셈. 박 수의사가 구조한 학생에게, 한 캣맘을 소개해 줬다. 모카가 살았으면 좋겠단 마음이 모였고, 치료비는 무사히 해결됐다.



'적자'일 걸 알면서 시작한, 유기동물 병원


점심시간에 박기범 수의사 품에 쏙 안긴 우유. 유기견인 걸 입양해 데려왔다./사진=남형도 기자
점심시간에 박기범 수의사 품에 쏙 안긴 우유. 유기견인 걸 입양해 데려왔다./사진=남형도 기자
입원한 고양이들을 소독하고, 라인을 다시 잡고, 붕대를 다시 감아주고 하느라 오전이 분주하게 훌쩍 갔다. 그러느라 진료대가 더러워지면, 뾰족한 것과 주사기와 쓰레기를 구분해 분리해 버리는 일을 했다. 그리고 알코올을 칙칙 뿌려 휴지로 쓱쓱 닦은 뒤, 배변 패드를 다시 깔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배달한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그제야 박 수의사에게 궁금한 걸 물을 시간이 났다. 오전 내내 품었던 의문은 크게 두 가지였다. 왜 이런 병원을 차려서 사서 고생하는지, 대체 수익은 나는지.

1월에 시작한 병원, 일단은 '적자'라고 했다. 매달 100~200만 원씩 적자다. 지금은 기존에 모아놓은 돈에서 메우고 있다. 박 수의사는 "적자가 날 걸 알고 유기동물 병원을 시작했다"고 했다. 예상했다는 얘기다. 병원비를 저렴하게 해주면, 다른 병원서 반발할 수 있을 터. 그래서 아예 유기동물만 받고, 일반 손님은 받지 않는다. 그리고 100% 예약제로만 운영한다.
온라인 쇼핑몰로 수익을 내어, 향후엔 치료비를 무료로 해주는 게 최종 목표란다./사진=동물병원 홈페이지
온라인 쇼핑몰로 수익을 내어, 향후엔 치료비를 무료로 해주는 게 최종 목표란다./사진=동물병원 홈페이지
그리고 적자는, 반려 용품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수익을 내어 메울 계획이란다. 그는 "유기동물을 저렴하게 잘 치료해주면, 고마워서 손님들이 이용해주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그래서 잘 되나 싶어 병원서 운영하는 스마트스토어에 들어가 보니, 찜해놓은 사람이 고작 5명이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냐는 질문엔 예상 답변이 돌아왔다. 동물을 워낙 좋아했고, 첫 병원 때부터 유기동물을 진료해 왔단다. 아픈 유기견, 길냥이들이 돈 때문에 여기저기 떠돌거나 진료를 못 받는 게 마음 아팠다. 그래서 아직 어릴 때,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제가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재밌게 살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평탄히 흘러가는 것보단 굴곡 있는 삶이 좋다며.



잠깐만 얌전히 있어 줘, '네 발 달린 친구들'아


바둥바둥, 안겨 있으면서도 손을 핥아주던 귀여운 레오./사진=남형도 기자
바둥바둥, 안겨 있으면서도 손을 핥아주던 귀여운 레오./사진=남형도 기자
식사 후에도 분주히 진료가 계속됐다.

별수 없이 마음 졸이는 일이 많았다. 아픈 녀석들이 계속 진료대에 놓였으니. 앞발을 다쳐 신경이 죽었다는 삼색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박 수의사가 바늘로 발바닥을 쿡 찔렀으나, 영 반응이 없었다. 조심스레 기대하다 마음이 무너졌다. 할 수 있는 건, 삼색이 앞발을 살포시 쥐며 '괜찮을 거야'라고 비는 것뿐. 녀석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나 박 수의사의 팔목에 쭉쭉 긁힌 상처들은, 환자들이 그리 이상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줬다. 그는 "주로 고양이들이 많이 긁었다""애들 입장에선 당연히 갑자기 병원에 데려오니 싫을 것"이라며 너른 마음을 보여줬다. 아무래도 야생서 사는 애들이니, 다루기 더 쉽지 않을 터였다(자유분방). 야밍이는 진료 중 싫다며 '하아악' 했는데, 박 수의사는 "하악질 하는 걸 보면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며 좋아했다.
박 수의사의 팔목, 상처 자국이 많다./사진=남형도 기자
박 수의사의 팔목, 상처 자국이 많다./사진=남형도 기자
혈관을 잡아 주사를 꽂으려면, 발버둥 치지 못하게 잘 붙잡아야 했다. 스케일링하러 온 망고는 마취 전 엑스레이를 찍는데, 몹시 몸부림을 쳤다. 꽉 잡아야 하는데, 마음이 약해져 느슨히 두니 쑥쑥 몸을 뒤틀어 트위스트를 추며 빠져나갔다. 쭉 당기고, 옆으로 누이고 하는 동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망고야, 제발 가만히 있어 줘'라고 속으로 외쳤으나 소용없었다. 하긴, 똘이(기자 반려견, 7세)만 해도 진료대 위에서 트리플 악셀을 뛰니까.



병원 가기 힘들다는, 대형 유기동물 친구들도


앞 발을 다친 주페. 개농장서 구조한 뒤 계양산 시민보호소에 머물고 있다./사진=동물병원 테크니션님
앞 발을 다친 주페. 개농장서 구조한 뒤 계양산 시민보호소에 머물고 있다./사진=동물병원 테크니션님
병원 한쪽엔 대형견들이 입원해 있었다. 입원실은 모두 네 칸이었고, 칸마다 환기 시설이 있었다. 그래야 그나마 냄새를 뺄 수 있다고. 타 병원에선 대형견 입원실이 한 칸 정도로 적은 편인데, 최대한 마련하려 했단다. 그러고도 박 수의사는 "이쪽 공간을 빼서, 두 칸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늘 입원실이 꽉 차서다.

유기동물이든, 개농장에서 구조를 했든. 대형견이면 병원에 가기 더 힘든 걸 잘 알았다. 받아주지 않는단 제보를 많이 받았었다. 그러니 이들만을 위한 치료 시설이 꼭 필요했다. 그걸 박 수의사도 잘 알았던 게다.

대형견이 입원한 공간에 들어서니, 취재하느라 봤었던 반가운 친구들이 있었다. 인천 계양산 개농장서 구조한, 지금은 시민보호소에 있는 개들이었다(2020년 11월21일자, 개농장에 남은 192마리…"살고 싶어요" 기사 참조). 주페는 옆 칸 친구에게 앞발을 물려 치료받으러 왔고, 젤리는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입원 중이었다. 둘 다 엄청 순둥이라, 반갑다고 꼬릴 흔들고 핥아주고 난리였다(안경 깨끗하게 닦아줌).
보기만 해도 이렇게 반갑다고 난리다./사진=남형도 기자
보기만 해도 이렇게 반갑다고 난리다./사진=남형도 기자
사료를 넉넉히 부어주고, 물도 가득 담았다. 냠냠 맛있게 먹는 녀석들을 물끄러미 봤다. 남김없이 깨끗이 먹었다. 그러더니 잠시 뒤 사이좋게 나란히 응아를 했다. 치우려고 다가간 순간, 주페가 반갑다고 펄쩍펄쩍 뛰었다(안 돼, 그르지마, 주페^^). 그 덕분에 앞발에 살포시 응아가 묻었고, 똥 도장이 여러 군데 찍혔다.

물로 시원스레 입원실을 치웠다. 깔끔한 공간에서 자는 녀석들을 보니 참 좋았다. 뜬장에서 꼼짝없이 서서, 배변이 떨어지면 고스란히 그 냄새를 다 맡으며 살았었는데. 약 먹기 싫을까 간식에 섞어주고, 착하다고 예뻐해 줄 사람도 많으며, 아프다고 치료해줄 의사 선생님도 있으니. 비로소 사는구나 싶어서.



"숨 쉬는지 봐주세요", 무서운 수술실


중성화 수술이 끝난 뒤, 고생한 엔젤이의 배에 손을 가만히 올려놓은 박 수의사./사진=남형도 기자
중성화 수술이 끝난 뒤, 고생한 엔젤이의 배에 손을 가만히 올려놓은 박 수의사./사진=남형도 기자
어둑어둑한 저녁이 다가왔다. 배도 고파왔으나, 그보단 체력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계속 서 있다 앉은 건 햄버거 먹을 때 20분 정도뿐. 다른 시간은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해야 했으므로. 그러니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밥 안 먹고, 여길 벗어나고 싶단 마음에 시계를 종종 봤다.

그래서 망고가 잠시 원망스러웠다. 스케일링 마취를 하기 전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데, 위에 밥이 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다가 토할 수도 있어서, 소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입원실에 넣어두었다. 영문 모르는 망고는 꺼내달라고 낑낑댔다.

두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수술실로 들어갔다. 호흡 마취를 하고, 스케일링을 시작했다. 박 수의사는 내게 "숨을 쉬는지 봐달라"고 했다. 호흡을 확인하는 수단은 네 가지였다. 첫째는 배가 오르내리는 움직임, 둘째는 호흡할 때마다 '삑삑' 나는 소리, 셋째는 눈금, 넷째는 고무로 된 쪼그라들었다 펴졌다 하는 장비였다.
스케일링하는 망고. 숨을 잘 쉬고 있을까 계속 걱정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스케일링하는 망고. 숨을 잘 쉬고 있을까 계속 걱정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마취되자 망고는 쭉 뻗었다. 옆으로 누인 채 스케일링을 시작했다. 망고가 숨을 안 쉴까 봐 배를 뚫어지게 보고, 소리와 눈금을 계속 확인했다. 무시무시한 장비가 지나갈 때마다, 이빨에 낀 돌들이 톡톡 떨어져 속이 시원했다. 이번 주말에 미국으로 입양돼 새 가족을 만나는데, 그 전에 스케일링을 하는 거였다. 박 수의사는 "미국에선 스케일링 가격이 비싸서, 미리 하고 가는 게 좋다"고 했다.

엔젤이의 중성화 수술을 할 땐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긴장이 됐다. 배를 가르고, 출혈이 최소화되도록 장비로 그때그때 집으며 진행했다. 엔젤이의 호흡이 느려질 때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초조해졌다. 다시 호흡하는 걸 본 뒤에야 한숨을 푹 쉬었다.

수술 부위를 한 땀 한 땀 꿰매고, 그리 다 끝난 뒤에야 기가 쭉 빠져나갔다. 텅 빈 수술대를 알코올로 닦아내며 생각에 잠겼다. 고등학교 땐, 수의사가 꿈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수술을 지켜보며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루도 잘 못 쉬는, 그의 행복이란


새끼 때 유기되었다가, 좋은 보호자를 만나 새 삶을 살게된 레오. 그게 박 수의사의 낙이다./사진=동물병원
새끼 때 유기되었다가, 좋은 보호자를 만나 새 삶을 살게된 레오. 그게 박 수의사의 낙이다./사진=동물병원
마지막 진료까지 마치니 밤 9시가 됐고, 더불어 녹초가 됐다.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박 수의사는 "계속 못 쉬는 게 힘들다"고 했다. 쉬는 날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다. 진료하는 수의사가 혼자여서다. 사실상 주 7일 근무란다. 수의사는 5년 차, 그리고 유기동물 의료센터를 한 지 이제 반년이 돼 가는 그의 소감은 이랬다. "해보니까, 왜 아무도 안 하는지 알겠어요."(웃음)

스스로 착하지 않다는 사람, 오히려 성격이 못 됐다는 사람, 그리 대단하지도 않다는 사람. 그냥 재밌고, 동물이 좋고, 하고 싶은 걸 할 뿐이라는 그의 보람이란 이랬다.

박 수의사가 치료해준 녀석 중, 빠삐라는 개가 있었다. 허스키와 진도믹스였다. 사설 유기견 보호소에 있었는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병원에 왔을 땐 뒷다리 끝이 녹아 있었다. 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한 날, 마취에서 깼는데 케이지에 넣어주려 했더니 스스로 걸어서 들어갔다. 그리고 박 수의사를 꼬리치며 바라봤다. 죽을 것처럼 엄청 아팠을 텐데도.

그런 빠삐에게도 평생 가족이 생겼다. 지금은 무척 행복하게 잘 지낸단다. 박 수의사는 "치료비가 없어 이 병원, 저 병원에 가고 어떡하지 했는데, 가족과 행복한 모습을 보면 엄청 뿌듯하다"고 했다. 죽을지 말지 몰랐던 고양이 치즈도, 거의 두 달을 입원해 회복했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구조한 이가 입양해 키우고 있다. 회복돼 잘살고 있어서, 그래서 기억에 남는 거라고 했다.



다친 길 위의 아이들이, 살 수 있도록


길 위의 다친 생명을, 차마 모른척 못하는 보호자들이 오롯이 치료비를 떠안아야 하는 게, 맞는 걸까./사진=남형도 기자
길 위의 다친 생명을, 차마 모른척 못하는 보호자들이 오롯이 치료비를 떠안아야 하는 게, 맞는 걸까./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나 여전히 길 위의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줄 곳이 마땅찮다. 지자체 유기동물보호소는 치료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민간 동물보호단체도 구조 요건이 까다롭다. 그러니 대부분 구조자가 부담을 떠안는다. 모른척하지 못하는 선한 마음을 지녔단 이유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싼 병원비도 큰 부담이다.

조수아씨는 몇 년 전 아파트 통로에 작은 고양이가 버려진 걸 봤다. 때는 12월, 한겨울이라 추웠다. 얼어 죽을까 싶어 집에 데려온 뒤, 아침에 병원에 갔다. 척추가 튀어나와 기형이었고, 보호자가 버렸을 거라고 했다. 그 지역엔 유기묘 센터도 없었고, 장애묘가 갈 곳은 더더욱 없었다. 5개월 뒤 숨질 때까지 치료해주다, 화장까지 시켜줬다. 100만원이 넘는 금액은 고스란히 구조자 몫이었다.

편의점 앞에서 진돗개를 구조한 이순영씨도 그랬다. 책임질 자신이 없어 망설였으나, 8차선 도로를 건너려는 걸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구조하기로 했다. 입양은 어려우니 안락사가 될까 싶어 차마 보호소로 보낼 수도 없었다. 결국, 사비를 내는 위탁처로 보냈다. 그 과정에서 예방접종, 검사를 하며 심장사상충 3기라는 사실도 알게 돼 치료해야 했다. 1년 뒤 해외입양을 보낼 때까지 매달 위탁비, 치료비를 내야 했다. 다 합해서 200만원 정도 들었다.

이씨는 "유기동물을 구조하면 금전적 부담도 있지만, 제대로 된 관리와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 무력감도 다 구조자의 몫"이라고 했다. 좋은 마음과 행동이 뿌듯함으로만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엔젤이를 무릎 베개 해주며 마취를 깨우던, 박 수의사./사진=남형도 기자
엔젤이를 무릎 베개 해주며 마취를 깨우던, 박 수의사./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엔젤이의 중성화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깨길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밤 9시 10분. 깨어나 잠시 울던 엔젤이는 12시간짜리 진통제를 맞더니, 다시 쿨쿨 잠들었다.

그러는 사이 10분, 20분이 흘러갔다. 박 수의사는 퇴근하지 못했다. 의학적으론 가도 된다고 하면서도, 깨는 걸 보고 가겠다고 했다. 중성화 수술 100마리를 하면 한 마리 정도는 숨질 수도 있다며. 그러니 이대로 집에 가면 불안해 새벽에 결국 또 올 것 같다고, 그럴 자신을 위해서 더 있는 거라고 했다.

그는 엔젤이 옆에 주저앉아 녀석을 흔들었다. 반응이 없자, 아예 머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살살 깨웠다. 나도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와 대화를 나눴다. 얼마나 지났을까. 엔젤이가 다릴 꿈틀거리며 잠에서 깼다. "이제 퇴근해도 되겠다"며 그는 비로소 웃었다.

어렵사리 불이 꺼진 그 병원엔, 길 위에 버려진 동물도 아니고, 개농장 개도 아닌, 그저 치료되어 간절히 잘 살길 바라는 소중한 생명들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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