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연봉30억 CEO의 우울

오랜만에 만난 금융사 CEO(최고경영자)는 근황을 묻자 요즘 자신이 매우 우울하다고 했습니다. 남들이 알아줄 만큼 많은 성과를 거뒀고 모르긴 해도 연봉만 30억원 정도 되는 사람이 왜 우울한지 이해가 되지 않아 이유를 물었습니다. 원인은 상대적 박탈감, 상대적 빈곤감이었습니다. 그는 최근 자신이 직접 확인하고 들은 2가지 사례를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는 상장을 앞둔 게임회사 크래프톤에 투자해서 대박을 친 경우였습니다. 전문 투자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벌가 출신도 아닌 A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10여년 전 우연히 크래프톤 창업자인 장병규 의장을 만났는데 장 의장이 너무 믿음직스럽고 신뢰가 가서 자신이 가진 현금자산을 전부 털어 크래프톤에 3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이번에 크래프톤이 상장함으로써 그도 큰 부자가 됐고, 상장 후 크래프톤의 시가총액을 25조원 정도로 가정할 때 그의 주식가치는 1조원 정도 됐습니다.

이처럼 크래프톤 상장으로 돈벼락을 맞은 경우는 장병규 의장 같은 창업자만이 아닙니다. 국내 대표 사모펀드 중 하나인 IMM PE도 몇 년 전 크래프톤에 투자한 3000억원이 1조4000억원 정도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연봉 30억원의 CEO를 우울하게 만든 또 한 가지 사연은 지난 3월 뉴욕증시에 상장해 대박이 난 쿠팡에 근무하면서 받은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으로 부자가 된 경우였습니다. 외국계 금융사에 다니던 B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한참을 망설이다 쿠팡으로 전직했습니다. 거기서 3년 정도 근무했는데 일벌레로 유명한 김범석 의장과 잘 맞지 않아 쿠팡을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재직 시 받은 스톡옵션이 그를 하루아침에 큰 부자로 만들어줬습니다. 그가 스톡옵션을 처분해 챙긴 돈은 300억원이었습니다. 연봉 30억원을 받는 사람도 절반쯤 세금 내고 생활비 쓰고 나면 1년에 10억원도 모으기 어렵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A씨나 B씨 같은 벼락부자 탄생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거의 매일 많은 사례가 자본시장에 새로 등장합니다. 다음달 상장 예정인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만 해도 상장 후 한두 번만 상한가를 쳐도 시가총액이 국내 대표 금융지주인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를 추월하고 그렇게 되면 창업자나 대주주가 아니더라도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의 부자들이 탄생할 것입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만은 아닙니다. 미국 중앙은행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가계자산은 13조5300억달러(약 1경5000조원) 늘었고, 늘어난 자산의 3분의1은 소득 상위 1%가 가져갔습니다. 이는 당연히 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며, 주가와 부동산을 치솟게 한 것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공격적 돈풀기와 금리인하입니다.

'단군 이래 최대 버블'이라는 요즘 연봉 30억원의 CEO는 1조원대 부자가 못되고 300억원의 스톡옵션을 받지 못해 우울하지만 나는 재난지원금 25만원을 받지 못해 좌절하고 우울해 합니다. 나만 벼락거지가 될까 봐 그야말로 영혼까지 털어서 뒤늦게 주식과 부동산에 몰빵투자합니다. 나는 패자고 루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