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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여자배구, 사연 많은 '도쿄 삼국지'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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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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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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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가운데) 등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1일 일본 도쿄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연경(가운데) 등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1일 일본 도쿄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아시아 국가가 올림픽 등 세계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대표적 구기 종목은 여자 배구다. 배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동양의 마녀'로 불린 일본 여자 팀은 금메달을 따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한국 여자 배구는 1976년 구기 종목 사상 최초의 동메달을 획득했고, 중국은 1984년 LA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 2016년 리우 대회까지 세 차례나 우승했다.

이처럼 동아시아 3개국의 여자 배구는 자국의 올림픽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세계 랭킹 2위 중국은 네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으며 개최국 일본(세계랭킹 5위)은 1964년의 신화를 재연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한편 한국(14위)은 세계 랭킹만 놓고 보면 참가국들 중 하위권이지만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에 출전하는 세계적 스타 김연경을 중심으로 메달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도쿄 올림픽 배구 조별리그에서 만나게 될 일본과 경기(7월 31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2012년 런던 올림픽 3·4위전 패배의 아픔을 씻겠다는 각오다. 12개국이 참가한 이번 도쿄올림픽 여자배구에서 한국과 일본은 A조, 중국은 B조에 속해 있다.

일본 여자배구 대표팀(오른쪽)의 경기 모습.  /AFPBBNews=뉴스1
일본 여자배구 대표팀(오른쪽)의 경기 모습. /AFPBBNews=뉴스1
유달리 아시아 팀이 여자 배구에서 강세를 보인 이유의 근원에는 일본의 역할이 컸다. 일본은 이미 1950년대부터 섬유 회사 등을 중심으로 여자 근로자들이 배구를 즐기는 문화가 강했다. 배구는 일본에서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의 시대에 큰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여성 노동인력을 위한 일종의 복지였으며 노사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일본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실업리그 최강팀 니치보(日紡·일본방직) 소속이었으며 감독도 니치보를 이끌었던 다이마츠 히로후미였다. 1950년대부터 성장가도를 달린 일본 여자배구는 1961년 유럽 원정 22연승으로 자신감을 얻었고 이듬해에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평가됐던 소련을 제압하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유도와 함께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배구에 대한 일본인들의 기대감은 상승했다. 시청률 85%라는 경이적인 기록이 보여주듯 전국민적 관심 속에 펼쳐진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에서 일본은 소련을 제압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때부터 몸을 아끼지 않는 리시브의 팀 일본은 세계 여자 배구의 대명사가 됐다.

흥미롭게도 일본 여자 배구의 올림픽 우승은 한국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북한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못마땅하게 여기던 '제3세계 올림픽'인 가네포 대회(신흥국 경기대회)에 참가 전력이 있는 여자 육상 400m와 800m 세계 신기록 보유자 신금단의 올림픽 출전이 허용되지 않자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이에 따라 북한 여자 배구팀도 도쿄를 떠나 되돌아갔고 여자 배구 참가국 숫자는 5개로 줄어들었다.

도쿄올림픽 배구 경기가 열리는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  /AFPBBNews=뉴스1
도쿄올림픽 배구 경기가 열리는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 /AFPBBNews=뉴스1
정상적으로 여자 배구 종목을 치르기 위해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예선전에서 북한에 패배해 본선 티켓을 받지 못했던 한국 대표팀의 참가를 요청해야 했고 한국은 이를 받아 들였다.

이에 따라 올림픽에서 첫 경기를 치르기 불과 하루 전에 일본에 입국한 한국 여자 배구는 5전 전패를 기록했다. 설상가상격으로 대표팀이 일본으로부터 항공료 등을 지원받고 올림픽에 나갔다는 소문이 무성해지면서 국민 여론은 들끓었다. 이는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던 한일회담 반대운동과 반일정서로 인해 한국 여자 배구는 일본 금메달을 위해 희생양이 됐다는 인식이 만연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 여자 배구는 이후 일본을 롤 모델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궁극적으로 일본 여자 배구를 이기기 위해서는 당장은 세계 최강 팀 일본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일본 여자 실업팀과의 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 결과는 1972년 뮌헨 올림픽 4위라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급기야 한국 여자 배구는 1976년 올림픽을 앞두고 1964년 일본을 금메달로 이끈 다이마츠 감독을 초빙해 강도 높은 스파르타식 훈련까지 했다. 여기에 당시 이낙선 대한배구협회장은 국내 경기 단체 가운데는 이례적으로 후원회를 조직해 거액의 기금을 조성했다. 이와 같은 지원과 눈물겨운 선수들의 분투에 힘입어 한국 여자 배구는 1976년 올림픽 동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배구 한국-중국전. 한국 양효진(오른쪽)이 공격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배구 한국-중국전. 한국 양효진(오른쪽)이 공격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1964년 일본 금메달의 영향은 중국에까지 미쳤다. '일본이 할 수 있다면 중국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중국 여자 배구 관계자들에게도 퍼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기가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광풍으로 중국의 예술, 체육 분야가 크게 위축됐던 때라 중국 여자 배구의 혁명은 1980년대에서야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압도적인 신체조건을 갖춘 중국 여자 배구는 1981년 월드컵 대회와 1982년 세계 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여자 배구는 중국의 자존심을 살린 종목으로 개방 개혁 시대의 상징이 됐다. "중국 여자 배구의 정신을 배워 중국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1980년대 중국 여자 배구 전성기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 랑핑은 현재 중국 대표팀의 감독이다. 선수 시절 코트 빈 자리에 내리 꽂히는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스파이크로 '쇠망치'라는 별칭을 얻었던 랑핑은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올림픽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으로 알려진 랑핑은 도쿄에서 중국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까. '동양의 마녀' 신드롬이 탄생한 도쿄에서 일본이 '어게인 1964'를 다시 부를 수 있을까. 무엇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엑스트라 배우처럼 초라하게 등장했던 한국 여자 배구가 57년 만에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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