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열심히해" 밤늦은 대본 연습, 보이스피싱이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중국에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유인책' 역할을 한 젊은이들이 법원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합숙하며 외출을 통제받고 늦은 저녁까지 대본을 외우면서 범행에 가담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단독 이광열 판사는 사기, 범죄단체가입, 범죄단체활동 혐의로 기소된 A씨(33)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다만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건강 상태를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함께 기소된 B씨(25)와 C(26)는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다. D씨(27), E씨(25), F씨(30)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와 함께 D씨와 F씨는 16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받았다.

A씨 등은 조선족 G씨가 중국 산둥성 청도시 등에 만든 보이스피싱 콜센터에서 유인책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중국에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조직에서 제공한 항공권을 이용해 중국으로 건너가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경찰 수사를 대비해 A씨 등에게 가명을 사용하게 하고, 여권 및 휴대폰 유심을 별도 관리하며 조직을 이탈하거나 외부와 연락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공부할 때는 집중해서 열심히' '중국에 온 걸 타인에게 말하지 말라' 등의 내용이 담긴 행동강령을 지급했다.


A씨 등은 검사 및 검찰 수사관을 사칭하는 범행 시나리오가 적힌 대본을 제공받고 범행에 투입됐다. 조직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범행을 하도록 하고, 실적이 낮은 조직원에게는 오후 6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대본 연습을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등은 2017년 10월부터 2019년 7월까지 각각 다른 시기에 보이스피싱 유인책으로 활동했고, 그 사이 먼저 활동하던 조직원들의 설득과 회유로 E씨 등이 범행에 새로 가담하기도 했다. 이들이 해당 기간 동안 편취한 금액은 총 14억여원에 달했다.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져 그 총책을 처벌하거나 피해를 회복하기 어려운 사회적 폐해가 매우 큰 범죄"라며 "피해자들은 금전적 손해는 물론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들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B씨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다른 사건에서 징역 2년 8개월의 판결을 선고받는 등 이 사건과 판결이 확정된 죄를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 형평을 고려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