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가석방 의견조회' 패싱 논란, 업무지침이 문제다[서초동살롱]

광복절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광복절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두고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올해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207일만인 지난 13일 가석방됐다.

이 부회장은 처음 가석방 심사대상자로 거론될 당시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법무부가 이번 광복절 가석방을 앞두고 예비심사대상자 기준을 낮춰서다. 그러나 법무부는 "대상자 선정기준을 낮춰 복역률 50% 이상이면 대상자가 된다"며 특혜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말 형기의 60%를 채웠다.


이후 서울구치소가 예비심사 단계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의견조회를 생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절차 시비가 일었다. 법무부 예규인 가석방 업무지침은 예비심사 대상자에 대해 수사·재판 중인 사건이 있는 경우 관련기관 의견 등을 조회해 예비심사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현재 삼성물산 부당합병 재판을 받고 있다. 오는 19일에는 프로포폴 투약 혐의에 대한 재판도 시작된다. 법무부는 "수사기관 의견 조회를 하고 있으며 예비심사 이후 확인된 사건은 관련기관 의견을 가석방심사위 심사에 반영한다"고 해명했다. 가석방심사위는 지난 9일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의결했다.

이에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정해놓고 형식상 의견조회를 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수감자가 다른 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 검찰은 가석방 동의 의견을 제출하지 않는 점, 중대 범죄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가석방이 이뤄진 선례가 거의 없다는 점 등을 비춰볼 때 이 부회장 가석방은 특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수사기관 의견조회를 반영하도록 하는 법무부 업무지침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석방은 해당 사건 범죄의 재범 위험성 등을 따져 결정해야 하는데 별개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이나 사법부 의견을 조회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에 대해 구체적 의견을 밝힐 수 없어 조회가 무의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가석방 되더라도 별건 사건으로 유죄가 선고되면 다시 구속해 법적 책임을 지게하면 된다"며 "법원에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은 결과를 예단하게 해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견조회를 바탕으로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수사기관 의견조회를 명시한 업무지침은 법무부 예규에 불과하고 법적으로는 형기의 3분의1을 채우면 가석방 심사대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의견조회를 가석방 심사에 반영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가석방을 허가하거나 불허해서는 안된다"며 "행정규칙이 법에 우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형법이 올해 12월 개정을 앞두고 있는 점도 별개의 재판이 가석방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방증이다. 현행 형법은 가석방 중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가석방 처분이 효력을 잃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 기간 내 다른 재판으로 유죄를 확정받을 경우 가석방이 취소될 수 있다.

그러나 개정 형법은 가석방 기간 중 '새로 저지른 범죄'로 형이 확정된 경우에 한해 가석방이 취소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이전에 가석방된 사람도 개정법을 적용받는다. 이 부회장이 다른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더라도 그만큼의 법적 책임을 지면 될뿐 가석방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