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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맞는 택배기사님께, '우산'을 씌워드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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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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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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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님, 미화원님, 교통정리하던 모범운전자님…비가 퍼붓던 날, '우산'을 못 쓰고 일하던 이들을 위하여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온몸이 다 젖어도, 택배상자만큼은 젖게 하지 않겠다며 뛰는 택배기사님의 움직임이, 그 책임감이 멋졌다. 그는 누가 뭐래도 '프로'였고, 그 덕분에 집에서 편히 받아볼 수 있는 거였다./사진=남형도 기자
온몸이 다 젖어도, 택배상자만큼은 젖게 하지 않겠다며 뛰는 택배기사님의 움직임이, 그 책임감이 멋졌다. 그는 누가 뭐래도 '프로'였고, 그 덕분에 집에서 편히 받아볼 수 있는 거였다./사진=남형도 기자
비 맞는 택배기사님께, '우산'을 씌워드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양손에 택배 상자가 들려 있으니 우산 쥘 손은 남아 있지 않았다. 택배기사님은 건물 출입구까지 빠른 걸음으로 뛰었다. 그의 몸은 이미 퍼붓던 비에 온통 젖어 있었으니, 어떻게든 보호하려던 건 몸으로 감싸 안은 상자였다.

그는 다시 돌아와 택배 차량서 상자를 또 챙겼다. 뒤에 가만히 다가가 우산을 씌워줬다. 저쪽으로 뛸 땐 나도 같이 뛰었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설명했다. "지나가는데 비를 너무 많이 맞고 계셔서요." 기사님은 정말 고맙다며 환히 웃고는, 잔뜩 쌓인 물건을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전동 카트에 큰 우산을 꽂아 다니던, 요구르트를 배달하시는 여사님. 그나마 이렇게라도 비를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사진=남형도 기자
전동 카트에 큰 우산을 꽂아 다니던, 요구르트를 배달하시는 여사님. 그나마 이렇게라도 비를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사진=남형도 기자
비가 참 많이 내리던 그 날, 우산을 차마 못 쓰던 사람들이 있었다.

평소엔 비 맞는 게 싫어 늘 빨리 걷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빗속에서 묵묵히 일하던 사람도, 갑작스레 닥친 빗줄기에 혹시나 우산이 필요했을 이도.

그래서 한 번쯤은 비 오는 날 밖에 나가 천천히 걷고 싶었다. 여름의 끝자락, 8월 마지막 날 오후에 큰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내일모레, 가게 오픈이라서요


새 가게 오픈을 이틀 앞두고,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며 사다리 위에서 시트지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붙이던 선생님./사진=남형도 기자
새 가게 오픈을 이틀 앞두고,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며 사다리 위에서 시트지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붙이던 선생님./사진=남형도 기자
올리브땡 매장 유리에 연두색 시트지를 붙이던 선생님. 그는 높다란 사다리 위에서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가장자리까지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고, 그만하면 된 것 같은데 작업이 한참이나 꼼꼼히 이어졌다. 마침내 다 마쳤는지 그가 사다리 밑으로 내려왔다. 말을 건넸다.

"비 맞아도 해야 해요. 내일모레 가게 오픈이라 어쩔 수 없어요. 어차피 내일 와도 비 맞고 해야 할 텐데(기상 예보가 그랬다)."

우비라도 좀 입지 그랬냐는 걱정에, 그는 "그러게요, 이제 집에 가야죠"하며 환히 웃었다. 너무 잘 붙이셨다고, 고생 많으셨다고 응원 담긴 작별 인사를 했다.



비 맞고 일해 기쁘다던 집배원님


우편물 젖는 게 가장 걱정이라고 했던, 집배원님과의 대화./사진=남형도 기자
우편물 젖는 게 가장 걱정이라고 했던, 집배원님과의 대화./사진=남형도 기자
바깥에 세워진 집배원 오토바이를 보고 잠시 서서 기다렸다. 잠시 뒤 우편물을 다 돌린 그가 나왔다. 우산은 쓰고 있지 않았다. 함께 우산을 쓰고 대화를 나눴다.

"비 오면 힘든 것 많지요. 우편물 안 젖게 하는 게 어렵고, 오토바이는 속도도 안 나고 미끄러질 수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힘들어요."

우편배달 차량 지급은 안 됐냐고 묻자, 그가 일하는 우체국에선 10% 정도 됐다고 했다. 겨울에 덜 춥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지만, 아무래도 기동성은 좀 떨어진다고.
어떤 날에도 집에서 편히 우편물을 받아볼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어떤 날에도 집에서 편히 우편물을 받아볼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런데, 힘드시겠다는 말에 집배원님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비를 맞으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뻐요. 이런 날은 사람들이 더 고마워하기도 하고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세상일이 다 그렇잖아요."



나를 더 걱정하던,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


시장에서 물건을 팔던 할머니. 비가 와서, 하나도 팔지 못하고 빗물에 젖은채 하나씩 치우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시장에서 물건을 팔던 할머니. 비가 와서, 하나도 팔지 못하고 빗물에 젖은채 하나씩 치우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할머님, 어째 이래 비를 다 맞고 계세요."
"응? 다 했어, 이것 때문에. 근데 누구여?"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 그는 굵어진 빗줄기에 노란 우비 하나를 입고, 허리를 푹 숙인 채 뭔가를 치우고 있었다. 다 팔지도 못한 채소를 안쪽으로 옮기는 거였다. 허릴 깊게 숙이고 느릿느릿, 하나씩 옮기느라 비를 쫄딱 맞고 있었다.

괜찮다고, 가던 길 가라고 할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작은 등 위에 우산을 씌워줬다. 잠시 뒤 물건을 다 옮겼다. 할머니는 "고마워요"라며 희미하게 미소를 보였다. 뭐라도 사고 싶었다, 현금만 있었어도.

돌아서서 가는데 할머님이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휴, 등에 비 다 맞았네." 이번엔 내가 답할 차례였다. "에이, 괜찮아요 할머님. 많이 파세요!"



차 막히면 안 된다며, 빗속에서 교통정리


덕분에, 여기 교통이 훨씬 원활해졌습니다. 합정역 사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모범운전자회 선생님./사진=남형도 기자
덕분에, 여기 교통이 훨씬 원활해졌습니다. 합정역 사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모범운전자회 선생님./사진=남형도 기자
합정역 사거리엔, 버스정류장 개설 공사로 교통정리를 하는 모범운전자회 선생님이 있었다.

형광 우비를 푹 뒤집어쓴 그는 두 손에 경광봉을 들고, 차들을 이리로 보내고 저리로 안내했다. 그의 지휘에 따라 느리지만 일사불란하게 교통이 착착 정리되었다. 다가가 우산을 함께 쓰고 이야길 나눴다.

"하하, 어쩔 수 없이 비 와도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9월 2일에 버스정류장이 개통하거든요. 그래서 이 주변이 다 막히는데, 그러지 않게 안내해주는 거예요. 아침 7시에 나왔는데 오후 5시에 들어갑니다. 자정까진 다른 분이 또 하고요."

힘들긴 해도 교통이 원활한 걸 보면 보람 있다는 그의 뒷모습이, 빗물을 머금어 반짝거리던 차도보다 더 환히 빛났다.



"쓰레기가 잘 안 쓸려", 홍대 거리의 미화원님


빗물에 젖어 쓰레기를 치우기 더 힘들다며, 고생하시던 홍대 거리의 환경미화원님./사진=남형도 기자
빗물에 젖어 쓰레기를 치우기 더 힘들다며, 고생하시던 홍대 거리의 환경미화원님./사진=남형도 기자
홍대 번화가에서 바쁘게 쓰레기를 쓸던 환경미화원님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가만히 우산을 씌워줬다. 청소구역이, 저 멀리 보이는 삼거리 끝까지라고 했다.

"이런 날은 빗물에 젖어서 쓰레기가 잘 안 집혀요. 우비도 입어야 하니, 아무래도 청소하기 더 힘들어요. 그래도 비를 안 맞고 할 수 있나요. 그냥 하는 거지요."

벌써 가을이라 떨어진 낙엽을 힘겹게 쓸어내자, 그가 지나간 자리가 말끔해졌다. 시민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느냐고 묻자, 미화원님은 작은 당부 하나를 했다. 저녁이면 쓰레기가 참 많이 나온다고, 음료수도 먹고 그냥 두고 간다고. 부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 달라고.

바삐 또 치우느라 우산 밖으로 나갔지만, 그 뒤로도 그에게 어떤 우산이 필요할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땡큐 베리 머치", 우산 못 챙긴 외국인 관광객


서울에 여행온 외국인 관광객. 우산이 있었어도, 양손에 캐리어를 들어야 해서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를 위해 씌워줬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친절합니다 :)  /사진=대화하고 싶은데 영어가 짧아 속상한 남형도 기자
서울에 여행온 외국인 관광객. 우산이 있었어도, 양손에 캐리어를 들어야 해서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를 위해 씌워줬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친절합니다 :) /사진=대화하고 싶은데 영어가 짧아 속상한 남형도 기자
서울역 택시정류장에서 만난 한 외국인 관광객. 그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 두 개를 끌고, 낑낑거리며 기차를 타려는지 계단으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잠깐이면 흠뻑 다 젖을 만한 폭우인데, 우산을 못 챙긴 듯했다.

그에게 다가가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우산을 씌워줬다. 그는 "서울 날씨가 이런 줄 몰랐어요. 당황했는데 고마워요"라고 웃어 보였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곳까지 그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걸었다. 덕분에 그는 몸이 젖지 않았다.

기차를 타러 발걸음을 서두르며, 관광객은 "정말 고맙습니다(Thank you very much)"라고 내게 몇 차례나 인사를 했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해요. 좋은 여행 되세요"라고 나도 활짝 웃었다.



꽃 할머니와 배추 할아버지


하루종일 하나도 못 판 꽃을, 비를 맞으며 다시 집에 가져가는 기분은 또 어떨까 싶어서./사진=남형도 기자
하루종일 하나도 못 판 꽃을, 비를 맞으며 다시 집에 가져가는 기분은 또 어떨까 싶어서./사진=남형도 기자
버스정류장 의자에 놓인 연보랏빛 난 화분. 그 덕분에 흐릿하고 축축한 공간이 잠시나마 화사해졌다. 그 옆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말을 걸었다.

"어르신, 예쁜 꽃이 참 많네요." (기자)
"으응, 다 못 팔아서 다시 집에 가지고 가는 거야." (할머니)
"얼마나 파셨는데요?" (기자)
"한 개도 못 팔았어." (할머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한숨을 쉬던 할머니. 잠시 뒤 그를 데리러 승합차 한 대가 왔고, 꽃을 옮기는 동안 비를 맞지 않게 따라다니며 우산을 씌워줬다. 할머니는 그제야 "정말 고맙다"며 조금 웃었다.
난 비를 맞아도 괜찮은데, 모종은 맞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사진=남형도 기자
난 비를 맞아도 괜찮은데, 모종은 맞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사진=남형도 기자
근처엔 할아버지가 배추 등의 모종을 가게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거리에 내놓았다가, 비가 많이 오니 들여놓는 거였다. 자식 같은 모종을 보호하겠다고, 당신의 몸이 젖는 건 신경도 안 썼다. 그를 위해서도 우산을 활짝 펼쳤다.

"비가 너무 와서 정리하는 거예요. 아이고, 안 씌워줘도 괜찮은데. 정말 고마워요."



비 오는 날, 우산 쓸 수 없던 이들을 생각하며


건물 안에 비가 들이칠 수 있다며, 구멍을 시멘트로 막고 있던 건물 경비원님./사진=남형도 기자
건물 안에 비가 들이칠 수 있다며, 구멍을 시멘트로 막고 있던 건물 경비원님./사진=남형도 기자
비 오는 날엔 우산을 쓰는 게 당연한줄 알았지, 비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미처 다 생각하지 못했다.

의식하며 다니니 비로소 눈에 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두 손으로 택배상자를 드느라, 누군가 먹을 음식을 배달하느라, 사다리 위에서 일하느라, 우산을 들 수 없었다. 비 오는 날엔 2000~3000원은 돈을 더 번다며 나온 라이더의 삶의 무게는, 다 젖은 그의 옷처럼 축축하고 또 무거웠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 같았던 내 매일의 편의는, 모두가 우산 속에 숨어도 기꺼이 바깥에서 맞으며 사명을 다해주는 누군가의 노력 덕분에 다 가능했던 거라는 걸, 그들을 만나 대화하며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동네 고양이 연탄이를 위해, 우산이 씌워진 밥그릇을 준비했다. 비가 와도 퉁퉁 불어난 밥을 먹진 않았으면 해서./사진=눈에서 하트 발사하는 남형도 기자
동네 고양이 연탄이를 위해, 우산이 씌워진 밥그릇을 준비했다. 비가 와도 퉁퉁 불어난 밥을 먹진 않았으면 해서./사진=눈에서 하트 발사하는 남형도 기자
그런 이들에게 우산을 씌워주기도 했다. 비를 다 맞은 뒤였어도, 비를 다 막을 순 없었어도, 결국엔 생(生)을 위해 우산 밖으로 다시 나갔어도, 잠시나마 피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알려주고 싶었다. 비를 다 맞는 날에도 발길을 멈춰 바라봐 주는 이가 있다고, 우산을 절반이나마 나누고 싶은 이가 있다고. 그러니 세상에 있는 누구도, 어떤 고단한 순간에도 혼자는 아니었으면 싶다는 것도.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쓸 수 없는 이들을, 눈 오는 날엔 고스란히 맞을 이들을, 햇볕이 뜨거운 날엔 해를 피할 수 없는 이들을 떠올리려 한다. 작은 비바람에도 미약한 우리는, 다만 함께 꼭 붙들며 살아갈 뿐이니까.
비 맞는 택배기사님께, '우산'을 씌워드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에필로그(epilogue).

721번 버스를 탔을 땐 나도 온몸이 다 젖어 있었다. 우산을 쓰고도 비를 많이 맞은 탓이었다. 버스에 에어컨 바람이 나오니 체온이 떨어져 으슬으슬했다. 팔짱을 끼고 웅크리며 목적지까지 버텨보려 했다.

그때, 버스 기사님이 내 앞에 앉은 승객에게 이렇게 물었다. 생각지 못한 물음이었다. "혹시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춥지 않으세요?" 그러자 승객이 웃으며 답했다. "네, 조금 추워요."

기사님은 "아이고, 앞 유리가 잘 안 보여서 좀 틀어 뒀었지요"하며 에어컨을 껐다. 찬 바람이 멎었다. 미세하게 떨리던 내 몸도 그제야 가라앉았다.

그날, 기사님의 보이지 않는 우산은 참 커다랬고, 그는 분주히 운전하면서도 승객들을 위해 그걸 손에 꼭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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