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마장동 고깃집 알바하다 혼쭐…"떡심 잘보이게, 리뷰 테러"

지난 14일 오전 10시쯤 H 축산업체는 단골손님의 발길로 붐비고 있다. /사진=하수민 기자

추석 명절 전인 지난 14일 오전 8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위치한 H축산. 5~6평 남짓한 좁은 공간은 사장 김씨를 포함해 서너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씨는 익숙한 손길로 길고 하얀 도마 위에 무거운 소고기 한 덩이를 턱 올려놨다. 한 눈에 봐도 성인 여성이 쉽게 들기 어려워 보이는 무게였다. 김 사장은 "요 놈은 14kg 정도"라 했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손질용 칼은 가정용 칼과 길이는 비슷했지만 폭이 좁고 끝이 눈에 띄게 뾰족했다. 김 사장은 익숙한 손길로 고기를 숭덩숭덩 반토막냈다. 반은 냉장고로 들어갔고 나머지 반이 곧 구이용의 먹기 좋은 크기의 고기로 손질됐다. 5분 정도면 충분했다. 그동안 김 사장은 한쪽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로 주문 전화 3~4통을 받았고, 가게로 찾아오는 손님 몇몇을 응대하기도 했다. 기둥 한 켠에는 밀린 주문이 적힌 메모지가 줄줄이 이어붙어져 있었다.


"하루에 100개 이상 고기 포장"…명절 특수에 마장동 들썩 머니투데이는 14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수도권 최대 축산물시장인 마장동 축산물시장의 H축산의 일일 아르바이트로 분했다. 시장은 올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간만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계속되는 코로나19(COVID-19)로 대면 만남이 어려워지자 한우와 같은 고급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는 이들이 늘면서다.

취재진의 갑작스러운 '하루 무료알바' 제안을 김씨의 남편 조씨(55)가 선뜻 허락한 것도 일손이 부족해서다. 부부는 연이은 명절 연장 근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구슬땀을 흘리며 고기를 썰던 김씨는 "추석 앞두고 거의 매일 밤을 새웠다. 어제는 비교적 이른 오전 4시에 퇴근했다"고 말했다.이어 "오늘은 배송 마감일이어서 선물세트 40여개만 제작하면 된다"며 "어제까지 하루에 100개 이상 만들었다. 오늘만 넘기면 한숨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오전 11시 사장 김씨는 고기를 썰고, 기자는 고기를 포장 상자에 옮겨 담고 있다. /사진=하수민 기자

마장동에 온 만큼 기자는 '칼질'을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기를 썰어봐도 되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씨는 "처음 하는 사람에겐 칼을 절대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작업이 위험하기도 하고, 또 자칫하면 판매용 고기가 짓이겨져 상품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씨는 14kg 정도 되는 부분육의 비계와 근육을 발라내는 시범을 보였다. 그는 성인 팔목만 한 길이의 장도를 들고 힘을 줘 살을 분리해냈다. 김씨는 "고기의 결을 잘 살려서 자르는 게 포인트"라며 정교한 칼질을 다시 한번 선보였다. 기자와 같은 초보는 해낼 수 없는 작업 수준과 속도였다.


결국 취재진이 대신 맡은 업무는 부위별 구이용 고기를 예쁘게 담아내는 일이었다. 이날 포장한 박스만 40여개였다.

포장 과정도 간단하지 않았다. 랩으로 포장한 아이스팩 위에 고기의 핏물을 빨아들이는 푸른색 '미트페이퍼'를 먼저 깔아야 했다. 그 위에 1000g에 맞게 계량되어 잘린 등심, 치맛살, 갈밧살 등 온갖 고급 부위를 겹치지 않게 쌓았다. "등심은 떡심이 잘 보이게 'ㄱ'자로" "갈빗살은 차곡차곡 결이 잘 보이게"라는 주문을 받았다.

나름대로 포장을 한다고 고기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자 곧바로 타박이 날라왔다. 김씨는 "손으로 너무 조물조물하지 말아달라"며 "또 고기끼리 붙여서 놓으면 갈색으로 변한다"고 주의를 줬다.

최근 김씨가 상품 포장에 더 신경을 쓰게 된 건 '온라인 주문' 때문이다. 김씨는 "맛은 괜찮아도 포장이 조금 성의 없다 싶으면 인터넷에 평점을 나쁘게 주는 손님들도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기자가 가장 처음으로 고기를 담아낸 상자를 보자 김씨는 "이렇게 하면 '리뷰 테러'를 받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여섯 상자를 포장하며 고기 세팅이 손에 익자 비로소 "이제 좀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택배 대란' 나기도…"한번 맛 들이면 여기만 온다"

지난 14일 오후 1시 사장 김씨는 급히 부른 퀵 오토바이에 한우 선물 상자를 옮겨 담고있다. /사진=하수민 기자

"탑차 좀 빌려줘."

가뜩이나 바쁜 추석 대목을 앞두고 배송 상황까지 여의치 않았다. 배송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뒤늦게 들어온 배송 주문이 어려워진 것. 이에 김씨는 인근 가게를 수소문하면서 상품을 당일 배송해갈 차량을 빌리러 다녔다.

그래도 온라인 주문 덕택에 비교적 코로나19 타격이 덜한 편이라 김씨는 지치기보다 감사할 뿐이다. "가게를 직접 찾는 손님은 줄었지만 대신 비대면 주문량이 많이 늘어난 덕분에 피곤함도 싹 가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통 백화점 선물세트는 포장이 고급스러우니 품질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큰 오산"이라며 "이 가격에 이 정도 품질은 백화점에서 못 찾는다. 손님들도 마장동에 한 번 맛 들이면 여기만 오신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날 가게를 찾은 손님 중에는 최근 받은 재난지원금을 사용하기 위해 직접 방문한 이들도 있었다. 인근 동네 주민인 이모씨(76)는 "마장동 고기를 알아주니까 여기로 왔다"며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먹을 고기를 꼼꼼히 골라갔다.

마장동 상인들은 코로나19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특수를 오랜만에 맞았다. 김씨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보다는 감출 수 없는 에너지가 보였다. 이날 H축산은 5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씨는 "코로나19 전후로 매출 집계를 안 해봐선 모르지만 확실히 명절 매출은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