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기 전락, 박원순이 박은 대못"…오세훈의 언어 정치

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서울시 민간위탁 관리지침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시 바로 세우기', '시민단체 전용 ATM기', '대못'


표현의 수위가 높다. 적폐청산 행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임 시장 시절 사업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시의회와의 관계 악화는 불가피하지만 내년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 등 정치 이벤트를 고려한, 여론의 반향을 이끌어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18일 서울시에 따르면, 고 박원순 전 시장 재임 기간인 지난 10여년 간 추진된 시민사회 분야 민간보조·위탁 사업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대대적인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오 시장은 연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명은 '서울시 바로 세우기'였다. 오 시장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임 시장 시절 만든 '서울시 민간위탁 관리지침'을 언급하며 "전임 시장이 박아놓은 '대못' 때문에 당장 시정 조치가 쉽지 않다"며 "행정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각종 비정상 규정이 '대못'처럼 박혀 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이 밝힌 '대못'은 세가지다. 종합성과평가를 받은 기관은 같은 해에 특정감사를 유예해주도록 한 규정, 수탁기관은 바꿔도 사람은 바꿀 수 없도록 한 규정, 관련 조례 등에 따라 각종 위원회에 시민단체 추천 인사를 포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오 시장은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지원된 총 금액이 1조라는 주장에 "근거 없는 금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마을, 협치,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등 민간위탁 9개 분야, 민간보조 12개 분야에서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약 9개월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집행된 금액은 1160억원, 지원을 받은 단체는 887곳으로 집계됐다.


지난 13일에는 시민사회 분야 민간보조와 민간위탁 사업을 감사 등을 통해 살펴보고 잘못된 부분은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재정 지원과 사업자 선정, 사업 운영 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의 '도덕적 해이'로 시민들의 혈세가 낭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시민단체들이 그들만의 마을, 그들만의 생태계를 만들었다"며 "서울시의 곳간은 결국 이렇게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해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 10일 기준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서 감사나 조사를 진행 중인 것은 총 27건이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조성 및 운영실적, 사회주택 추진, 태양광 보급산업, 청년활력 공간, 창동 플랫폼 운영실태 조사 등이다.

잇따른 기자회견 이전에도 오 시장은 유튜브 '오세훈TV'를 통해 전임 시장 시절 중점 추진 사업에서 벌어진 과오들을 지적해왔다. 오 시장은 보조금을 수령 후 폐업한 태양광 사업을 고발 조치한 데 이어 한강 노들섬 사업 위탁사 선정 과정과 운영, 사회주택 사업 운영 등을 비판한 바 있다.

시의회 민주당 "오세훈, 어그로 정치" 저격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오 시장의 최근 행보를 두고 '어그로 정치'라고 비판했다. 어그로(aggro)는 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기 위하여 인터넷 게시판 따위에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일을 뜻한다.

문장길 시의회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6일 논평을 내고 "오 시장은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심취한 나머지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일궈온 서울시의 지난 시정을 선정적인 언사와 편향된 해석으로 오도하고 폄훼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민관협치의 거버넌스를 'ATM'으로, 공정한 절차를 위한 법·규정을 '대못'이라 표현했다"며 "선정적이고 저질적인 단어를 사용해 그저 대중의 관심을 끌기위해 노력했다"고 지적했다.

문 대변인은 "사업수행에서 법 규정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 있으면 명명백백 밝히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면서도 "그러나 현재는 그 어떤 실체도 드러나 있지 않다. 그저 의혹만을 가지고 작은 티끌이 전체의 문제인양 전임시장 죽이기에 몰두하는 오 시장의 모습은 볼썽사납기 그지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제302회 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1

집행부-시의회 마찰 전망…내년 선거 정치적 전략양측의 충돌 격화는 불가피해졌다. 시의회는 오는 11월 서울시에 대한 행정감사를 앞두고 10월 20일까지 시민제보를 받는다. 행정감사와 SH사장 후보 인사청문회, 내년도 예산안 심의 등 향후 집행부와 시의회 일정이 예정돼있다. 오 시장이 추진하는 '서울비전 2030'을 위해서 시의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양측의 힘겨루기는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4월 취임한 이후 오 시장은 시의회에 자세를 낮추며 협력을 구했지만 시의회의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시정질문 등을 거치면서 갈등으로 인한 파열음은 계속 관측돼왔다.

오 시장의 이 같은 행보는 이슈메이킹 등 정치적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오 시장은 내년 지선에 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내년에도 당선된다면 서울 최초 '4선 시장'에 오른다.

시의회와의 협력 관계는 필요하지만 지선을 앞두고 벌어질 대선 결과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대선 결과로 민심의 향배가 확인되는 만큼 지선에 참여할 유권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전임 시장의 시민단체 지원에 피로감이 쌓인 여론이 상당하다는 판단, 지난 10년 전임 시장의 과오를 바로 잡는 모습이 표심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치 지형이 오 시장과 국민의힘에게 불리하지 않은 만큼 시의회가 무작정 집행부의 정책 추진에 반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도 숨어있다. 시의회와는 오 시장과의 갈등이 여론에 '발목잡기'로 비춰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역풍'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향후 줄줄이 예정된 시의회와 집행부 간 일정에서 마찰이 벌어지고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시민들의 삶에 더 이로운 방향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쥐기 위한 여론전과 힘겨루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