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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신앙 깊고 금슬 좋던 부부가 왜"…'간병 살인' 노부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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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균 기자
  •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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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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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노부부가 살던 집 대문./사진=김도균 기자
숨진 노부부가 살던 집 대문./사진=김도균 기자
가을볕이 목덜미를 뜨겁게 하는 지난 16일 송파구 오금동 한 빌라. X층을 올라가니 한 문 앞에 미처 다 떼어내지 못한 노란색 출입통제 테이프가 집 주인에게 일어난 비극을 알려주고 있었다. 문에는 주인이 국가를 위해 공헌했음을 알리는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팻말, 모 교회의 신도임을 알리는 작은 표식도 붙어있었다.

이 집에서는 최근 80대 남편이 치매를 앓고 있던 70대 부인을 살해하고 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3일 오후 부부 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송파구 오금동의 한 빌라에서 숨진 A(80)씨와 B(78)씨를 발견했다. 노부부가 살던 집은 굳게 잠겨있었고 밀린 수도요금 청구서가 이들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금슬 좋았던 교인 노부부… 사건 현장이 된 '국가유공자의 집'


생전 부부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웃들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같은 빌라에 거주하는 C씨는 마지막으로 부부를 본 건 석 달 전쯤이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지난 6월 말 부부와 함께 코로나19(COVID-19) 백신 주사를 맞으러 다녀왔다고 한다. 아침에 나가는 길에 우연히 같은 방향인 것을 안 A씨가 오고 가는 길 모두 차에 태워줬다는 것이다.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는 D씨(68) 역시 두 사람에 대해 인품이 좋아 실수 없고 점잖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D씨는 "아내가 아픈 3년 전부터 남편인 A씨가 가끔 혼자 영업장에 들르곤 했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이들 부부를 독실한 교인으로 기억했다. D씨는 숨진 두 노인과 10여년 전 같이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그는 "당시 남편 A씨는 집사, 부인 B씨는 권사로 목회 활동을 했다"고 회상했다. C씨 역시 "신앙이 깊으신 분들이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한 번 들여다 봤어야 했는데"라고 자책했다.

인근 주민들은 치매 노인이 산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조용한 집이었다고 말했다. 관할 경찰서 관계자도 "이전에 신고 접수된 내역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D씨 역시 "금슬이 좋았던 부부였다"고 기억하며 "둘이 싸우거나 서로 때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부부는 암투병도 이겨낸 사이였다. 이어 "B씨가 치매 전 암에도 걸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노부부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가 살던 빌라의 등기부등본에 적힌 소유자와 수도요금 고지서에 적힌 청구 대상의 이름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이 집은 노부부의 자가였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정황 상 '간병 살인'으로 보인다.

인근 주민들은 "A씨는 부인 B씨의 치매 병세가 시작된 2018년 무렵부터 돌봄을 전담해왔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의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스스로 요양보호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송파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상담과 교육을 받았다. 중앙치매센터 관계자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보호자 심리 상담 모임에도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B씨를 돌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증세가 급격히 악화된 지난 5월부터는 안심센터를 찾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땅의 수많은 A씨들… "간병 스트레스 덜어줄 제도 필요해"


17일 오전 10시쯤. 노부부가 다니던 치매안심센터 앞./사진=김도균 기자
17일 오전 10시쯤. 노부부가 다니던 치매안심센터 앞./사진=김도균 기자

국내 치매환자가 늘면서 수많은 A씨들이 간병 스트레스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치매 환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2021년 기준 65세 이상 노년 인구 853만7023명 가운데 치매 환자는 87만1329명이다. 65세 이상 노인 중 10.21%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이다. 2019년 79만여명, 2020년 84만여명이었던 치매 환자가 인구 노령화에 따라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늘어가는 치매 노인 돌봄은 가족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모양새다. 2017년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치매를 포함해 돌봄이 필요한 노인 가운데 89.4%가 동거 또는 비동거 가족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사적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20.4%로 조사됐다.

하지만 정확히 누가 환자들을 돌보는지를 알 수 있는 통계는 없었다. 보건복지부 산하에서 치매 정책을 주관하는 기관인 중앙치매센터 관계자 역시 "센터 차원의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돌봄 가족의 심적 부담이 늘면서 '간병 살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전북 익산에서는 50대 딸이 치매를 앓고 있는 모친을 말다툼 끝에 살해했다. 지난해 5월 대구에서는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돌봄 과정에서 누적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제도 보완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치매 환자 가족에게 휴식을 주는 '치매가족휴가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2020년 한 해 동안 이 제도를 사용한 사람은 1138명이었다. 80만 명이 넘는 치매 인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업무를 하는 한 관계자는 " 돌봄을 전담하던 가족이 휴가를 떠나게 되면, 대체할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련 제도를 정비해 인력을 확보하는 한편, 이들 대체 인력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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