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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 매일 10km씩 뛰어 보니...[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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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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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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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6일~9월23일 '100일간 매일 이어달리기'의 기록

[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100일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10km 이상 달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 번 해 보지 뭐"
'100일 매일 이어 달리기'라는 말에 솔깃해서 시작한 게 끝을 맺었다.
달린 거리 1047km, 하루 평균 10.47km. 10km 이상을 달린 날이 55일, 5~10km 38일, 5km 미만을 달린 날도 7일 있었다.
하루 최장거리는 40km. 8월 337.7km를 달려 한달 생애 최장 주행거리를 기록했다. 50중반에 소소하지만 새로운 목표와 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고 감사한 일이다.
100간 달린 거리 1047km, 서울 송파구 광나루 에서 베이징까지 954km. 평양까지는 겨우 196km.
100간 달린 거리 1047km, 서울 송파구 광나루 에서 베이징까지 954km. 평양까지는 겨우 196km.
시작할 땐 '100일'을 장담했던 건 아니었다. 장난처럼 '웅녀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아니면 그냥 호랑이 되는 거고.
어쩌다 보니 며칠을 연속 달리게 됐고, 며칠 연속 뛴게 아까워서 매일 뛰게 됐다.
새해 다짐으로 '이시영 따라잡기' 운운하며 첫 달 233km 달리기로 스타트를 끊었지만 2월에 몸에 칼을 댔던 후유증으로 운동량이 현저히 떨어졌다. 뭔가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던 터에 뭐라도 좀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100일간 '뭐라도 해보면(드라마 D.P 조상병 대사네)' 뭐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기자와 정자의 공통점이 사람되기 힘든 거라는데, 100일 치성 드리면 사람되지 않을까,
이렇게 웅녀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렇게 목표 달성 할 줄 알았으면 남북통일 세계평화 기후정상화 코로나종식 적폐청산 언론개혁 뭐라도 거창하게 걸고 할 걸 그랬다.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따느님한테 "이게 실은 딸 임용고사 합격기원 100일 달리기 프로젝트란다" 라고 엮어 보려다가 까였다. "아 뭐래, 구리게...그냥 하던 대로 해, 괜히 갖다 붙이지 말고"
그래, 그냥 가자...사는 거나 달리는 거나, 뭐 꼭 '명분'이 있어야 하나. 그 자체가 의미지.

6, 7, 8월 그 맹렬한 더위도 때 되니 알아서 지나갔다. 6월16일 처음 100일 달리기 시작할 땐 코로나도 그렇게 알아서 가줄 거라 기대 했는데, 이놈은 좀처럼 물러갈 줄 모른다.
코로나로 저녁 약속 줄어들지 않았으면 애초에 시작할 생각도 못했을 '웅녀 프로젝트'다. 하지만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 앞에서 '코로나 덕분에'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다.
내가 즐겨 달리는 미사리 주로에도 코로나로 실직하고 '카페 트럭' 끌고 나온 분이 계신다. 무덥던 어느 날, 힘 내시라고 자몽에이드 한 잔 시원하게 사 마시고 나도 힘내서 뛰었다. 다들 파이팅!!!

1. 인바디와 가민으로 측정한 100일간의 변화

달리기의 즐거움을 더해 주는 요소 중의 하나는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데 있다.
국내 기업인 인바디사가 만드는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InBody)는 체성분 체형 분석치를 간단히 체크할 수 있다. 헬스클럽 같은 곳에 있는 업소용이 더 상세하고 정확하지만 가정용 체중계로도 추세변화는 관찰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누군가의 코칭이나 격려를 받기 힘든 일반인들에게는 기록과 공유가 동기부여가 된다. 성능에 따라 가격이 만만찮지만, 가민 순토 폴라 같은 전용 GPS 워치는 코치 역할을 해주는 필수품이다. 배터리 지속시간이나 내구성 같은게 좀 떨어지지만 갤럭시나 애플워치로도 어지간한 기능은 갖추고 있다.

100일간 매일 10km씩 뛰어 보니...[50雜s]
<체지방률 BMI 등 낮아졌지만...이시영 체형은?>
인바디 가정용 측정계 기준 6월20일~9월22일 체중감소는 1.8kg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골격근량이 0.1kg줄어든 반면 체지방량은 12.5kg에서 10.9kg으로 감소, 긍정적인 워크아웃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체지방률은 17.9에서 16.0으로 낮아졌다. 한 때 14%대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이후 15~16%선에서 큰 변화가 없다. 새해 각오를 다질 때 눈 높이는 배우 이시영의 체지방률 8%에 두고 시작했지만,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BMI(체질량 지수)는 24.5에서 23.8로 낮아져 추세적 개선은 있었다.
전체적으로 체중-골격근량-체지방량 수치를 그래프 형상으로 표시했을 때 D자 모양의 '표준체중 강인형'을 유지하고 있다는게 '인바디'의 평가다. 꼭 몸을 바꾸려고 100일 달리기를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신체의 변화는 더뎠다. 배 둘레 햄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건재하다. 20년간 달리기를 이어 왔으니 몸이 어느 정도는 '워크아웃'이 돼 있어 100일간의 이벤트로 드라마틱한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위안을 삼을 수 밖에.

<혹독한 코치 가민, 조금만 나태해지면 '질책'...VO₂Max '최상' 개선>

'가민 포러너 945'로 측정한 심폐능력 혹은 운동능력 지수 VO₂Max(최대 산소 섭취량)는 시작 당시 48(연령대중 상위 10% '매우 좋음')에서 51(상위 5% '최상')으로 올라섰다.
IT(정보기술)와 운동 덕후인 창업자 Gary와 Min 이름 첫글자를 따서 만들었다는 GPS기기 Garmin은 매일매일 운동을 '비생산적' '회복' '운동능력 유지' '생산적' '운동능력 향상' 단계로 평가한다.

100일간 매일 10km씩 뛰어 보니...[50雜s]
100일 달리기 종료를 3일 앞둔 9월20일 가민워치는 VO₂Max를 근거로 "당신의 체력은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저강도 유산소, 고강도 유산소, 무산소 운동 사이에서 운동 강도에 변화를 주십시오"라며 '운동능력 향상' 판정을 내렸다. 누군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싶지 않겠냐고. 하지만 가랑이 찢어지고 열반주(사망)에 이르게 되면 가민이 책임질 것인가?

100일 달리기가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살짝 군기가 빠지고, 저녁 음주 뒤끝으로 운동 강도를 낮췄더니 D-51, 49일째인 8월3일엔 가민 어플이 "트레이닝 부하에 무산소운동이 부족하여 체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라고 준엄하게 꾸짖는다. 해석하자면, 너무 살살 뛰고 있으니 더 빡쎄게 죽어라고 뛰라는 거다.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상사의 모든 책임은 가민에게 있다. 그래도 어찌 하랴, 시키는 대로 강도 높은 인터벌 러닝으로 성의를 보였더니 겨우 '운동능력 유지'로 평가는 올라갔지만 여전히 "체력을 향상시키려면 더 길게 운동하거나 더 자주 운동하십시오(8월4일)"라고 다그친다.

50일간 526km. 하루 평균 10.5km를 매일 달렸는데, 더 자주, 더 오래 운동하라니, 가민이 사람 잡네. 이것은 가민의 갑질 스포츠폭력 달리기셔틀 가스라이팅 아닌가.
궁시렁대면서 조금 빡쎄게 뛰었더니 이번에는 "훈련 부하가 너무 고강도의 활동에만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입니다(8월15일)"라며 '비생산적' 판정을 내린다. 어쩌라고 참.

100일간 러닝에 대한 일일평가는 '생산적'의 비중이 컸고, '운동능력 향상'기간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비생산적'구간의 비중이 높았다.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히' 해서만 되지 않고, 강도와 형태에 변화를 줘서 운동 역치를 높여가야 한다. 50대 아마추어 뱁새 러너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2. 잠실과 한강, 달리기 성지 D-46, D-40

<한강둔치, 위례강변길>
D-46. 8월8일. 100일 달리기 기간중 가장 장거리인 40km를 달렸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한여름 최고의 오락 우중주를 염두에 두고 일어나자마자 문 열고 하늘 내다 봤는데...안 온다. 그래도 낮에는 곳곳에 소나기 심지어 국지성 호우가 올 수도 있다기에 모처럼 미사리쪽으로 장거리 로드 런을 나섰다.
그런데...안 온다. 띄엄띄엄 몇 방울 흩뿌리다 말다를 반복한다. 달궈진 돌에 물뿌려 수증기 만드는 핀란드 사우나처럼 덥고 습하다. 모내기철 농삿꾼만큼이나 간절히 비를 바랬건만.
하늘에 대고 삿대질 해봤자 뭐 하나. 구름으로 햇빛 가려주는게 어디냐는 긍정적 마인드로 발걸음 뗄 수 밖에.

가다 보면 시원하게 쏟아지겠지 하고 참고 가다 보니 위례강변길 끄트머리 하남, 20km까지 가 버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위례강변길(몇몇 사람들은 에스페란자길이라고 부르는)은 중간에 급수와 화장실이 마땅찮은게 흠이다.
물도 떨어져 가는데, 길 가에 냉장고!!! 그 속에 시원한 생수!!!
노원구인가 어느 지자체와 교회에서 길가에 설치했다는 기사는 봤는데, 이렇게 갈사(?死) 직전에 내가 구원을 받을 줄이야. 하남시장(찾아보니 김상호 시장이다) 만세, 지방자치 30년 만세다. '하남시민을 위한 생수'라고 냉장고에 씌여 있지만, 내가 낸 국세가 지방으로 교부되니 나도 자격 있다. 당당하게 감사히 마셨다.

환상적인 달리기 코스, 위례강변길
환상적인 달리기 코스, 위례강변길
늘 그렇듯 돌아오는 길의 피로도는 갈 때의 2배다. 이럴 때 서울과 하남경계에서 음료와 샌드위치를 파는 푸드트럭은 나의 오아시스다. 집에서 12km달려와서, 혹은 하남에서 8km돌아와서 사 마시는 그 탄산음료 스포츠음료의 맛이란. 작은 캔 하나에 1000원. 값도 착하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장님은 "몇 년동안 수모를 겪어가며 이 자리를 지켜왔다"고 한다.
지금도 일 년에 두 번 벌금 내며 버틴다고 했다. 라이더나 러너들 산책하는 사람들의 사랑방이 됐고, 교통에도 전혀 방해되지 않는데 그냥 벌금 받지 말고 좀 내버려두면 안될까. 정부차원의 푸드트럭 양성화 방안도 여러 번 나왔었는데.
또 하나의 오아시스는 암사생태공원. 정문 앞에 있던 '삼거리 휴게소'라는 이름의 간이 쉼터는 라이더들이 물 마시고 담배도 피고(나도 흡연자지만, 주로에서 담배는 제발 좀 참아줬으면 한다) 하던 곳인데 세종~포천 고속도로 나들목 공사때문에 사라졌다. 자전차 애호가들은 많이 아쉬울 듯하다.

도로공사로 암사고개 중간 체육공원 공간도 사라지고 길도 조금 바뀌었다(내가 좋아하는 이름은 아이유고개. 아이유 3단 고성처럼 경사가 3단으로 이뤄져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나).
20년 가까이 이 길을 달리는 동안 길과, 길 옆 풍경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미사리 방향 한강 주로의 푸드트럭.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분이 운영하고 있다.
미사리 방향 한강 주로의 푸드트럭.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분이 운영하고 있다.
내 키보다 조금 크던 나무들도 이젠 늠름한 그늘을 느리우고 있다. 달라지는 게 얘네들 뿐이겠나. 얘들도 지나가는 날 보며 '너도 많이 삭았다'고 그러겠지.

직사광선은 없다지만 섭씨 30도 넘는 한낮의 포도는 몸뚱아리를 쪄 말린다. 길 옆의 아리수 급수대와 화장실에서 머리에 물을 끼얹어가며 돌아왔다.
대한민국 한강변만큼 달리기 인프라 잘 된 곳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화장실에는 에어콘도 있다.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한 건 올해지만, 달리기 기반시설로 따지면 우리는 진작에 '러닝 선진국' 반열에 올라 서 있다. 러닝 선진국이 우연히 된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 땀 눈물로 사람이 그나마 대접받는 세상이 된 덕이다.

<잠실 1~5단지와 석촌호수>
오전 7시에 벌써 30도까지 오른 이런 날, 그늘 바깥은 죽음이다. 그래서 7말8초 폭염에는 한강이 아닌, 가로수가 심어진 도로를 따라 아파트 숲과 석촌호수 코스를 택했다.
'잠실 1~5단지' 석촌호수를 모두 돌면 13km의 멋진 그늘 코스가 된다. 단지를 옮겨갈 때마다 신호등을 건너야 하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며 다리 스트레칭 하는 시간 갖는 것도 나쁘지않다. 잠실 주민이 아니더라도 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 역에서 내려 역사 7번 출구쪽 물품보관함에 짐 맡기고 1단지부터 시작해 한 바퀴 돌고 오기에 좋은 코스다.
나무그늘과 놀이동산, 롯데월드타워가 어우러진 석촌호수 둘레길
나무그늘과 놀이동산, 롯데월드타워가 어우러진 석촌호수 둘레길
잠실 1~5단지는 '주공아파트'에서 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로 이름도 바뀌었다.
재건축이 이뤄진 1~4단지는 모두 단지 바깥을 빙 둘러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가 있다. 레이크팰리스가 약간 단지 크기가 작지만 각 단지의 둘레는 대략 평균 2km 정도다.
엘스(구 주공1단지)와 트리지움(구 주공2단지) 산책로가 가장 완벽하게 연결돼 있다. 엘스는 산책로 주변 조경이 좋고,트리지움 산책로는 높낮이 굴곡이 있어 트레일런 기분도 약간 맛볼 수 있다. 잠실 석촌호수 둘레길은 봄이면 벚나무로 꽃대궐을 이루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 가을엔 멋진 단풍으로 물들며, 롯데월드 놀이동산의 동화 속 같은 건물들로 눈이 즐거운 길이다.

잠실 주공5단지 내부의 오래된 수동 펌프와 저수조.
잠실 주공5단지 내부의 오래된 수동 펌프와 저수조.
한 여름 석촌호수를 달릴 땐 Permission to dance, Butter, Dynamite 등
BTS 최신 3곡을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뛰었다. 빌보드 차트를 휩쓴 K팝 히트곡 한 대목 쯤은 따라 흥얼거려 줘야 겠기에, 그리고 댄싱에 수화를 넣어서 청각장애인들도 함께 노래를 느낄 수 있게 했다는 BTS의 마음이 예뻐서, 돈 주고 다운받았다.
아침 댓바람 출근 전에 뛰어나가는 남편 아빠를 보고 가족들은 혀들을 쯧쯧 차지만, 러닝에는 퍼미션이 필요 없다. Don't need permission to Run.
BUT!!!! 현실은...permission이 필요하다. (가족의) 퍼미션 없이 무작정 뛰다가 가정파탄 날 뻔한 선수들 많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ㅠㅠ

100일간 가장 많이 달렸던 곳은 역시 집 앞 한강 둔치 잠실 인근이다.
대한민국 한강 잠실 둔치의 밤은 잠들지 않는다. 자정에도 발로 술로 달리는 사람들이 강변에 꽉 찼다. 여성 러너들도 이 시간에 달릴 수 있는 나라,
지구상 인간 행복도의 70프로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느냐가 좌우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잠실...1960년대말, 서울 인구분산을 위해 도심빈민들의 광주대단지 강제이주가 이뤄진 뒤,
광주와 서울 강북을 잇는 징검다리 신도시로 조성됐다. 제방이 쌓여져 잠실 섬은 육지가 됐고, 현대 대림 극동 삼부 동아 5개 건설사들은 엄청난 택지를 조성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그 대가로 박정희에게 건네진 돈은 유신 종신집권 종잣돈이 됐다.
부모세대들의 피 땀 눈물로 다져진 그 길을 오늘도 달렸다.
잠실 1~5단지와 석촌호수를 모두 돌아보는 13km 달리기 코스도
잠실 1~5단지와 석촌호수를 모두 돌아보는 13km 달리기 코스도
3. 트레일러닝, 섬 D-80, D-79, D-38 D-32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직사광선 내리쬐는 도로에서만 달렸다면 매일 10km 뛰기도 벅찼을 것이고, 100일간 버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 러너들에게 여름엔 산이 답이다. '트레일 런'은 나무 그늘이 있고, 고갯마루의 시원한 바람이 있다. 장거리 러닝 시간 여유가 되는 주말엔 트레일런을 주로 했다.

<강남 7산 종주, 산에서 치는 '번개'>

D-38, 62일째인 8월16일 광복절 기념로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강남7산 종주에 나섰다. 선열들께서 남겨주신 이 땅에서 분에 넘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밖에 나가 흙이라도 다시 만져봐야 하지 않겠나. 바닷물 춤추는 것까지는 못 봐도.
지리산 화대(화엄사~대원사)종주로 천왕봉에서 만세라도 부를까 하는 생각을 안한 건 아닌데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이다.

아침 7시에야 눈을 떴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그냥 운동이라도 해야지 , 짧고 건강하게 살아서 건보재정 건전화에 기여하다가 운좋게 주로에서 급사라도 하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애국이지...라고 스스로 등을 떼밀어 대모산으로 향했다.
강남7산 종주는 서울 강남을 끼고 있는 대구청우바백광을 말한다.
대모산 구룡산 청계산 우담산 바라산 백운산 광교산, 즉 청광종주 앞부분에 대모산 구룡산을 붙인거다. 32~34km정도 된다. 거리는 지리산 성중(성삼재~중산리)종주와 비슷하고 상승고도는 성중(2100~2300m)보다 조금 더 높다.
버킷리스트(리스트가 너무 길지만) 중 하나다. 작년인가 한번 나섰다가 알바(길 잃고 헤매기)하는 바람에 중도이탈 음주장정으로 마무리한 기억이 있다.
(광백바청우관삼, 즉 광교산 백운산 바라산 청계산 우면산 관악산 삼성산을 강남7산 종주라고 하기도 한다. 44~47km로 더 터프한 코스다. 여긴 즉흥적으로 나설 길이 아니다)

가끔 하는 청광종주에 293m짜리 대모산과 306m짜리 구룡산 붙인데 불과하지만, 장거리 트레일의 피로도는 거리에 제곱해서 늘어난다. 대모 구룡 모두 낮은 뒷동산 급이지만, 정상부근 경사가 상당해서 초반에 속도 욕심내다간 근육 탈탈 털릴 수 있다.
구룡산에서 내곡동 평지로 내려와 도로를 한참 달려 다시 청계산을 오를 때가 1차 멘붕점이다. 옥녀봉을 거치면 경사도는 덜하지만 거리가 늘어난다. 원터골에서 올라가려면 도로 뛰는 거리가 늘어나고 매봉까지 악명높은 직선 계단코스다(못 세어 봤는데 2000개는 족히 되는 듯하다. 아들녀석이 늘상 타는 GOP 초소 근무길 계단 수와 비슷하다. 진달래 능선쪽 계단에는 번호가 붙어 있는데 1560번인가에서 끝난다)
강남7산 종주 초반부인 구룡산 구간. 능선길보다 서울둘레길을 따라가는게 트레일러닝에는 제격이다.
강남7산 종주 초반부인 구룡산 구간. 능선길보다 서울둘레길을 따라가는게 트레일러닝에는 제격이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낮 기온이 32도까지 오르는 터라 얼음생수를 보충할 수 있는 원터골 코스를 택했다.
매봉과 석기봉삼거리 이수봉 국사봉 봉우리마다 막걸리와 음료수 파는 터줏대감 상인 아저씨들이 있어서 시원한 음료수까지 보충해 갈 수 있었다. 볼 때마다 그 무거운 음료수를 아이스박스에 담아 올라오는 노동이 얼마나 힘들까 싶어 존경스럽다. 밥벌이의 지엄함을 실감한다.

서울~수원 대도시 코스이지만 표지판이나 GPS 잘 보지 않으면 초행길에서는 까딱하면 알바하기 십상인 곳이 적지 않다.
국사봉에서 하우고개 내려가는 길이 특히 그렇다. 정상 갈림길에서 용인 쪽으로 빠지기도 하고, 내려가다가 골짜기로 접어들기도 한다. 발 아래 수도권 순환고속도로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데도 오른쪽에 공동묘지가 안보이면 길 잘 못 든 거다.
하우고개 넘어 우담산(발화산)으로 꺾어지는 표지판을 못보면 백운호수로 내려가게 되고, 바라산 가는 중에도 내리막에서 막 달리다보면 까딱하면 용인 고기리 계곡으로 빠진다.
내가 다 당해봐서 안다ㅠ.

종주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하오고개에서 다시 발화산으로 기어올라가는 계단이 2차 멘붕지점쯤 된다. 씽씽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면, 핸드폰 카카오택시 맵으로 눈길이 갈지도 모른다. 하오고개 경사를 올라 KBS철탑을 만나게 되면 그때부턴 평탄길 이어 내리막이라 다시 힘이 난다.

3차 멘붕지점은 바라산자연휴양림의 희망365계단이다. 뭘 희망하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리근육에 젖산이 가득 쌓인 주자에게는 절망365계단이다. 그래도 365일 절기에 맞춰 붙여놓은 해설 표지판 보면서 입춘 대서 처서 입추...가다 보면 대한에서 계단은 끝이 난다.
바라산(428m)에 오르면 백운산(567m)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백운산 통신대에 다다르면 다 온거나 다름없다. 광교산(582m) 정상 시루봉까지는 대략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설렁설렁 갈 수 있다. 그래도 중간중간 오르막이 없진 않다. 시루봉에서 형제봉 가는 길 중간인가에 250개 되는 계단이 마지막 허벅지 브레이커.
형제봉에서 경기대까지는 긴 내리막과 계단으로 이어진 트레일이어서 마지막 러닝으로 멘탈을 회복할 수 있다.

경기대 캠퍼스에서 산길은 끝이 나고, 곧바로 웅장한 경기대 전철역사가 눈에 들어 온다. 신분당선 종점이다. 32km, 상승고도 2409m, 8시간39분 여정의 끝이다.
고수들이 볼 땐 트레일'러닝'이라기보다는 패스트 워킹 수준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코스에서 열리는 트레일런 대회 우승자는 6시간 이내로 들어온다. 사람들이 아니다. 속도를 욕심낼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 즐겁고 만족스러운 나들이가 된다.

광교역사의 깨끗한 화장실에서 땀을 씻는다.
두 발로 뛰지 않는 한, 어떤 권력자에게도 부자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정화(淨化)의 기쁨이다. 화장실을 만들고 관리하는 분들에게 감사하고, 8시간 넘는 가동에도 멀쩡한 두 다리에게도 고맙다.

덤으로, 광교산 시루봉에서 친 번개에 화답한 친구가 동천역으로 마중나와 있는 것 또한 매우 고마운 일이다. 청광종주 강남7산 라인에 살고 있는 죄로 산에서 내리던지는 번개를 시시때때로 맞는 36년지기다. 귀찮으면 이사 가든지 하면 될텐데...휴일이면 은근히 산에서 번개 안 치나 기다리는 줄 내가 다 안다.

<50리길 마다 않고 별주막>

산길 끄트막엔 주막이 제격이다. 과천 토박이 녹색당원 쥔장이 운영하는 별주막.
산길 끄트막엔 주막이 제격이다. 과천 토박이 녹색당원 쥔장이 운영하는 별주막.
100일 기간중 트레일런에 지친 근육을 달래준 또 하나의 고마운 장소는 주막이다.
7월5일 D-80, 그날은 산을 타고 나서 목말라서 막걸리를 마신게 아니고,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재 넘어 갔다. 바깥은 36도. 에어콘 시원한 집에서 바깥 내다 볼 땐 나가면 죽음일거 같았지만, 나가 보니 산 그늘이 든든한 방패가 됐다. 가장 큰 적은 역시 두려움이다. 청계산 매봉 4000원짜리 얼음 파워에이드, 이수봉 냉 포카리스웨트가 큰 힘이 됐다. 불법 영업 아저씨들, 파이팅이다.
청계산에 올랐다가 과천쪽으로 발길이 향했다면 그날의 종착역은 과천 주공5단지 옆 상가 지하의 '별 주막'이다. 올여름처럼 시뻘겋게 피부를 달구는 태양에게 대항하는 작은 무기는 얼음 막걸리다. 멍게도 미리 얼음을 껴안고 있다. 통영 멍게가 여기까지 와서 고생이 많다.
100일런 시작 4일째인 6월19일엔 청계산 쪽 말고 우면산쪽으로 올라 과천 남태령의 과천도가를 찾았었다. 옛 직장 동료 선배들과 별주막에서 약속을 잡았다. 한 잔의 막걸리를 꿀맛으로 마시기 위해 알코홀릭은 그렇게 대낮부터 산길 20km를 달려 땀을 뺐다. 한 오십리 정도는 뛰어가서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어야 진정한 벗 아닌가.

100일런 시작할 때 공사 막바지였던 과천도가에서 이제는 첫 제품 관악산 생막걸리와 과천 미주를 내놓고 있다.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 맛이다. 어느 단골 술집에건 준비해 달라고 요구 할 수 있는 맛. 녹색당원 서형원 대표와 직원들의 정직과 정성을 느낄 수 있다. 감미료를 넣지 않고 이런 맛을 낸 노력이 가상하다. 관악 미주는 생막걸리의 농축판. 짧고 굵게 마시려면 관악 미주, 차분히 시원하게 마시려면 관악 생막걸리다.
내가 갈 모든 산 자락 밑에 별주막 계열사가 차려지길(블랙야크 100산만 해도 100개네).

<체크포인트 남산, 젊은 트레일러너들의 성지>

D-79, 7월6일은 '체크포인트 남산"에서 매주 하는 남산시티 트레일 모임을 찾아가 12km 뛰었다. 남산 밑에 자리잡은 체크포인트 남산. 딱 이런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이다.
남산 러닝 베이스캠프 같은 곳. 옷 갈아입을 수 있고, 러닝 용품 팔고, 커피 맥주도 있다. 젊은 러너들이 모인다. 스키 등산 러닝 전문 브랜드 살로몬이 시착용 트레일러닝화와 장비를 지원한다.

참가자 평균연령을 내가 훌쩍 높였다.
'펀런' 생각하고 갔는데, 앞에서 이끄는 트레일러닝 고수(닉네임 히멘)이 장난 아니게 빡쎄게 달린다. 마음만 청춘이지 근력은 진짜 청춘들을 따라가지 못함을 실감한다. 특히 지구력보다 근력이 더 중요한 트레일런 능력은 더욱 차이가 난다.

젊어서부터 러닝을 즐기는 이들이 부럽다.
체력 절정기인 20대는 달리기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다.
직장이나 가정이 정착기에 들어선 30대는 달리기 시작하기에 상당히 좋은 나이다.
인생에서 가장 활동력이 왕성한 40대는 달리기에 딱 좋은 나이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기반을 닦은 50대는 달리기에 매우 좋은 나이다.
가족과 사회에 진 의무에서 어느정도 벗어나는 60대는 달리기에 정말로 좋은 나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인생을 즐길수 있는 70대는 달리기에 환상의 나이다.
80대 이상은 달릴 수만 있으면 좋은 나이다.

나는 30대 중반 돼서야 달리기 시작했다. 10년 더 일찍 시작했으면 삶이 조금은 더 풍족했을 듯하다. 몇 년 전부터 젊은 층의 달리기 인구가 늘어나면서 '러닝 크루' 문화가 생겼다. 2000년대초반 1차 마라톤 대중화 시기를 이끌었던 40~50대 아재 아짐 중심의 '마라톤 동호회'에 비하면 이름부터 좀 있어 보인다.

코로나 19로 여행을 못가고, 마땅히 운동도 하기 힘들어지면서 청년층이 달리기나 트레일러닝, 등산에 발을 더 많이 내딛기 시작하는 건 매우 반가운 일이다.
100일 달리기 마치기 직전 소모품 사러 러너스클럽 신촌점에 들렀었다. 정민호 사장께 "이 어려운 시기 어떻게 견뎌내고 계시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뜻 밖에도 "코로나 수혜를 입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꼰대 세대'를 대체하는 MZ세대 신규 진입자들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날도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는 듯한 청년이 호카오네오네 브랜드의 맥시멀리즘 러닝화를 신어보며 이것저것 달리기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보더니 망설임없이 계산하고 나간다.
스스로를 위해 돈을 쓰는데 인색하지 않은 이들 청년들의 재력은 기성세대에 비해 딸리겠지만 소비성향을 반영한 구매력은 오히려 '꼰대 세대'를 능가하는 걸로 보인다.

이들이 보다 빨리 기초체력부터 탄탄히 기를 수 있게 하려면 중고등학교 입시 체력장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모든 운동의 기본인 100미터 1000미터 달리기는 반드시. 그러다 보면 좀 더 빨리, 친근하게 달리기의 매력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도 좋지만 기본체력부터 갖추게 해서 사회에 내보내는게 어른들이 할 일 아닌가.

장봉도 트레일 코스
장봉도 트레일 코스
<장봉도 무의도 석모도 신도 시도 모도...산과 바다를 동시에>

트레일 러닝을 위한 산이 꼭 '뭍'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산을 찾아 때론 섬으로 간다.
사는 도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아기자기한 섬들이 있다. 그 섬마다 제각각 나름 한가닥씩 하는 트레일을 품고 있다는 게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D-32, 8월22일 찾은 섬 트레일 코스는 장봉도. 왕복23km 트레일이다.
인천 영종도 삼목항에서 배를 타면 신도를 거쳐 장봉도로 간다. 차를 싣고 갈 수도 있지만, 산을 가는 마당엔 짐만 된다. 삼목선착장 무료주차장에 세우고 세종호를 탄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침6시에 일어나 운전하고 온 탓에 눈도 구영탄(이 이름을 알면 아재)이고, 몸도 완전히 깨지 않았다.

아무나 갈 수 있는 산 들 도로인데 혼자 뛰면 되지 왜 굳이 돈 내고 뛰냐고들 한다(이날도 처음 왔다는 남녀커플 러너가 나한테 물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고 문지방을 넘게 해주는 강제만으로도 2~3만원 값은 한다. 방방곡곡 구석구석 뛰어 볼 만한 트레일을 사전 답사해서 GPS파일로 올려 주는 누군가가 없으면 혼자서 처음 가보는 트레일을 밟아볼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서해안 섬 산 트레일(등산)의 최고 매력은 산과 바다를 한 큐에 즐긴다는 것. 장봉도행 페리가 거쳐가는 신도 시도 모도, 그리고 무의도 석모도 강화도 모두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섬 트레일의 최적지이다. 능선을 따라 양 옆 바다를 눈 아래 내리깔고 가는 환상의 경치를 즐길수 있는 것도 섬 트레일의 매력이다. 3월 무의도 비대면 트레일 대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출발을 띄엄띄엄 떨어져 한 탓에 코스를 거꾸로 역주행하는 참사를 겪었지만, 거꾸로 돌든 바로 돌든, 섬 한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게 섬 트레일의 특징이기도 하다.

섬 산의 높이는 육지와 비하면 대개는 뒷동산 수준이다. 장봉도 역시 최고봉인 국사봉 높이가 150m 밖에 안된다. 하지만 섬 산의 고도는 에누리없이 해발 0m부터 시작이다. '장봉도'가 길 장(長)에 봉우리 봉(峰)이라는 데서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경사가 가파른 작은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져 있다. 봉우리마다 한바가지씩 땀을 쥐어 짠다. 13km까지 상승고도가 830m였으니까 야산치곤 만만찮다.

트레일코스의 압권은 섬 끝 가막머리전망대를 돌아서부터 시작하는 해안둘레길. 해식 절벽을 따라가는 트레일이 절경이다. 절경을 감상하는 만큼 대가를 치러야한다. 오르막내리막 계단이 즐기차게 이어지고 뽀족한 암석들이 발바닥을 찌른다. 눈이 누리는 호사보다 발바닥과 허벅지가 당하는 고문이 더 괴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섬은 대개는 DNF(Do Not Finish, 중도포기)하기도 쉽다. 길이 계속 이런 난코스면 오후 2시 배도 못타겠다 싶어서 13km 지점인 장봉4리에서 둘레길을 벗어났다. 관통도로 따라 로드런으로 장봉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예정 코스에서 3km정도 자체 다스카운트해서 들어왔다. 섬마을 관통도로 러닝도 나쁘진 않았다. 운좋게 막 떠나려던 1시40분 배를 탔다. 섬을 오가는 배는 철마다 주중 주말마다 시간표가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배 시간에 맞춰 러닝을 계획하는게 상식이다.

4. 위기의 연속!!! D-36, D-52, D-98

습관을 고치거나 새롭게 만들려면 적어도 3주, 21일은 지속적으로 계속해야 한다는게 미국의사 맥스웰 몰츠가 1960년대에 주장한 '21일의 법칙'이다. 인간의 의심·고정관념을 관장하는 대뇌피질과 두려움·불안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를 거쳐 습관을 결정하는 뇌간까지 정착하는데 그 정도 시간은 걸린다는 거다. 실제론 21일이면 어느 정도 '적응'은 되고 습관이 완전히 몸에 배려면 3주가 아니라 3개월은 걸리는 것 같다.

100일간 하루도 빼먹지 않으려고 보니, 틈이 날 때마다 뛰어야 했다. 출근 시간 전 1시간 뛰고 출근하는게 처음엔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눈이 저절로 떠졌다. 물론 눈 뜬 다음에도 나갈까 말까로 심적 내란 상태를 겪어야 했지만.

야밤 달리기는 전에는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100일 달리기 시작하고부터는 아침에 못 뛰면 밤에 뛰었다. '따블'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침에 덜 뛰면 밤에 또 뛰기도 한다.
이전엔 점심 약속이 없으면 회사 앞 헬스클럽을 찾아 트레드밀에서 뛰었는데, 클럽이 문닫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을 열어도 러닝머신 속도가 시속 6km로 제한돼 '워킹머신'이 된 고로, 집에서 꼭 뛰어야 했다.

<취중주, '미쳤네' vs 'Respect'>

'100일'을 못 견디고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가 될 뻔 했던 위기가 몇 차례 있었다. D-52, 8월2일이 100일 달리기 최대 위기였다.
시작할때부터 우려했듯이 '술'이 웬수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저녁 약속이 대폭 줄었지만 없어지지는 않았다. 저녁약속이 있는 날은 오전에 뛰고 나가는 걸 원칙으로 했지만 이날은 일찍 월요회의가 있는 날이어서 아침엔 뛸 시간이 없었다. 그 전날 40km를 달려서 마일리지를 쌓았고, 저녁 약속도 없으니 가볍게 밤에 달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에 보기로 약속했던 존경하옵는 윤모 부사장님, 퇴근 직전에 띠리링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어디서 볼까요"
"글쎄요..좋으실 대로"
"근데, 오늘 약속 있수? 없으면 걍 오늘 하지"

'저 오늘 아침에 못 뛰어서, 밤에 뛰어야 되는데요' 이러면 얼마나 밥맛이겠어.
사회생활 이러면 안되지. 100일 달리기는 할일 하면서 하는 거다. 아마추어가 본업 팽개치고 뛰면 밥줄 끊긴다. 뛰다가 가끔은 일도 한다가 아니고 일 하다가 틈 내서 뛴다가 모범답안이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좋죠~ 좀 이따 뵐게요"
그런게, 둘이서 와인1병, 소주3병, 뛰기도 안뛰기도 애매한 음주량이다. 신기한게 술먹으면 몸은 쳐지는데 머리는 달리기 본능이 살아난다.

한밤중 한강변 달리기의 즐거움은 화려한 야경. 사진은 올림픽 대교와 광진구 아파트촌.
한밤중 한강변 달리기의 즐거움은 화려한 야경. 사진은 올림픽 대교와 광진구 아파트촌.
10시 반에 러닝 팬츠 입고 나가려는데 따느님이 방문을 막고 선다.
"술 먹고 뛰면 죽어, 심근경색 순간이야"
"놔라." 기생 천관 집을 향하는 애마의 목을 쳤던 김유신 할배처럼(비유가 이상한가) 비장하게 밀치고 길을 나섰다. '나적나 달적가'(나의 적은 나, 달리기의 적은 가족)
비틀비틀 휘적휘적 시속 7km. 이건 뭐 달리기가 아니고 공기 헤엄치기수준이다. 어쨌든 5km를 달리고 들어왔다. 그렇게 취중주로 48일째를 넘겼다.

취중주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일반인'님들의 댓글과 '달리기 미친님'들의 댓글 반응간극이 풀코스 거리만큼 멀었다.

(일반인들 댓글)
-미쳤구만. ㅠㅠ
-미쳤구만 2.
-가족말 들으~~
-그래도 술먹고는 하지 마세요 ㅠㅠ 취재원 중에 술 먹고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 하시다 돌아가신 분이 있습니다 ㅠ
-안돼요. 위험해요.
이 냥반이 청춘인줄 아싱가비네.....
-왜 그러시는 거에요~~~^^;;
-음주육상 엄금! 위험해요.
-전에 술마시고 달린다고 쓰셨을 때 설마 했는데. 불행이 나만 비켜간다 자신하시는 거 같아 걱정되네요. ㅠ
....
('미친님'들 댓글)
-Respect. 멋지십니다.
-대단한 정신력에 힘을보탭니더
파이팅!!^^
-음주의 정석!!!!

2번이 정답 아니냐고...페이스북 달리기모임에는 3200명의 '미친님'들이 가입돼 있다.

<코로나 백신 접종, 달려도 멀쩡했다>

&#039;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려면...&#039;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또 한번의 고비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이었다. D-36, 64일째인 8월18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2차 접종을 했다. 백신 맞고 곧바로 뛰어 다니다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방역전선에 누를 끼칠텐데. "매일 10km 뛰던 멀쩡한 아재, 아재 백신 맞고..." 이런 기사로 언론들이 포털을 도배할테니.

그래서 접종 당일 무리하지 않는 차원에서 출근전 5km 몸풀기. 접종하고는 30시간 정도 경과한 뒤 저녁 퇴근후 5km 서행 회복주로 웅녀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AZ는 2차 접종 때 1차보다 훨씬 수월할테지만, 무리하지는 마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을 충실히 따랐다. '무리'한 건 아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신체가 젊을수록 접종 후 고열 등 고통이 심하다고들 했다. 1차때는 '덜 아재' 체면 세워주느라 그랬는지. 38도 가까이 열도 올라 주고 근육통도 약간 있었는데, 2차 때는 정말로 미열도 없이 넘어 갔다. 말 그대로 암시랑도 않다.

백신, 강요할 순 없지만 공포를 조장하진 말자 쫌.
접종 이후에 부작용 생기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국가에서 책임 져 주자 쫌.
애들도 아니고, 살만큼 산 나같은 나이 아재 아짐들은 겁 먹지 말고 그냥 맞자 쫌.
그래야 달리기 대회도 열고, 먹고 마시는 장사들도 맘 편히 하고 다시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볼 것 아닌가.

<추석 연후, 폭우 속 우산주>

마지막 위기는 D-1, 피니시 하루 전날 찾아왔다.
추석 당일 고향인 광주 갔다 올라오는 고속버스 귀경길이 5시간 반(28년 전 17시간 운전했던 거에 비하면 광속이지만)씩이나 걸렸다. 늦은 저녁 소화시키느라 퍼져 있다가 창 밖을 보니 어라, 폭우가 쏟아지네?
잦아들겠지 했는데 웬걸 천둥 번개까지, 그것도 꽤나 가까이서 번쩍 쾅쾅. 시간은 어느덧 자정으로 가는데.

'100일 연속'이 뭐라고, 98일 했으면 됐지. 아무리 우중주가 좋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하다가, 자정을 30분 앞두고 분연히 일어섰다. 마지막 마늘을 한웅큼 입에 털어 넣었을 웅녀 할매의 결기로.
낮이라면 아무리 폭우라도 그냥 우중주를 즐겼겠지만, 어두운 밤 버킷으로 붓는 빗물이 안경을 가리면 그렇잖아도 어두운 주로를 달리는게 불편할 수 밖에.

할 수 없이 우산을 들고 나섰다. 가장 가벼워 보이는 편의점 4000원짜리로. 주로에서 비 오는 날 애인 우산 씌워서 뛰는 청춘을 본 적은 있지만, 내가 우산 쓰고 뛰어 보기는 또 태어나서 처음이다. 우중주 아닌 우산주. 살다 보니 별 짓을 다 하네.
막상 해보니 이런 날은 우산주도 괜찮군 싶었다.
일단, 얼굴에 비가 정면으로 들지 않으니 시야가 확보된다. 상체가 덜 젖으니 체온도 유지된다. 사람이 없으니 한갓지다.
바람이 그리 심하지 않아서 우산주가 가능했다. 언젯적 우산인지 연식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1km 뛰다 보니 손잡이 부분이 피로골절이라도 되는 듯 힘없이 꺾어져 버렸다. 너도 애썼다.

그래도 우산대 중간 부분 잡고 '싱잉 인 더 레인(Singing in the rain)' 기분으로 러닝 인 더 레인 했다. 아닌게 아니라 뛰다 보니 "비도 오고 그래서 니 생각이 나서..." 노래도 흥얼거려졌다.
느지막이 산책이나 자전거 라이딩 나왔다가 황급히 피신하거나 피 그치기를 기다려보는 몇 몇을 빼곤 한강변이 온통 내 차지, 황제 달리기다.
언제 여름이 있었냐는 듯 차가워진 공기에 빗물샤워 맛도 좋고, 초딩 애들처럼 철적철적 물웅덩이 밟는 스텝 소리도 경쾌했다. 군데군데 발목까지 차 오르며 폭포수처럼 한강 둔치 주로를 쓸어내리는 빗물 속에서 3km만 몸담그고 왔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 인적 끊기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한강의 한기가 으스스해지기도 했다. 새벽 우중에 까만 러닝 셔츠와 팬츠에 하얀 우산 쓰고 뛰어 댕기며 호러 무비 찍는 건 그 정도로 그만. 충분히 즐거운 우산주였다. 역시 뛸까 말까 싶을 땐 뛰는게 답이다.


5. 러너의 숙명, 부상 D-87, D-70, D-1

러너의 진짜 위기는 술이나 날씨 때문이 아니라 부상으로 다가온다. 부상은 운동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루 두세끼 먹는 밥도 때론 체하기도 하고 식중독을 일으키듯, 달리기도 하다 보면 당연히 탈이 난다. 부상은 당하지 않는게 아니라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게 상책이다.

부상은 피할수 없다. 치료는 조기에, 휴식은 충분히.
부상은 피할수 없다. 치료는 조기에, 휴식은 충분히.
<장경인대염 거위발건염 족저근막염, 복사건염까지..,>

추석 차례상 과식 반성도 할 겸, D데이 전날인 9월22일은 조금 길게 뛰고자 했다. 언제 비 왔냐는 듯 푸른 하늘에 해도 들락날락 상쾌한 바야흐로 완연한 가을 날이다.
나의 루틴 코스, 암사동 아이유 고개 넘어 생태공원 찍고 오는데, 왼쪽 복숭아뼈(복사뼈) 바깥쪽이 욱신거린다. 누구한테 채이거나 삔 적도 없는데. 고향집에서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아우와 둘이서 늦게까지 폭탄주 말았던 후유증인가.

오래 눌려서 타박상 비슷하게 좀 아프더니, 달리기 충격으로 심해졌나. 돌팔이 자체진단으로는 그거 말고 별로 이유가 없어 보인다(이전에는 어떻게 퍼질러 앉아서 밤새 먹고 마시고 고스톱하고들 했나 모르겠다).
장딴지 허벅지 뒤쪽이 약간 저리는 느낌이 있는거 보면 ''비골근(건)손상' 같은 건가. 검색해보니 비골건(腱)이 손상되면 복사뼈가 붓고 통증이 발생한다고 돼 있다. 평소 발을 많이 사용하거나 심한 운동을 하는 직업군에서 많이 나타난다나(기자직도 발로 뛰어야 하는 직업이긴 하다). 이번에도 다음날 즉시 H의원을 찾아가 침 뜸 주사 처방약 파스 테이핑으로 부상주위를 집중 공략했다.

아무튼 달리기 부상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매일달리기를 시작한지 열흘 조금 넘어선 6월28일 즈음엔 거위발건염의 징후가 나타났다. 무릎 안쪽 근육과 뼈를 잇는 거위발 모양의 건(腱)에 무리가 가서 생기는 통증이다.
장경인대염 거위발건염 족저근막염. 내가 겪어본, 그리고 러너들이 가장 흔히 격는 3대 부상이다. 장경인대염은 허벅지와 무릎을 잇는 장경인대의 이상으로 생기는 무릎 바깥쪽 통증, 족저근막염은 발바닥근육을 감싸고 있는 막에 생기는 염증이다.

<'말아라' 학파 H의원 원장, 치료는 신속 융단폭격>

달리기 관련 부상에 대한 의사들의 처방은 두가지로 갈린다. 말아라 vs 뛰어라.
전자는 내가 자주가는 H의원 원장님을 비롯한 대다수 의사들의 처방이다. 그래서 의사는 '개' '자동차'와 함께 '러너가 피해야 할 3가지'에 꼽힌다.

양의사 한의사 자격증을 동시에 갖고 있는 회사 근처 H의원 원장님은 침 뜸 부항 고주파 체외충격파 주사 파스 처방약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요법을 한꺼번에 동원해 융단폭격을 해준다. 비용도 2만원을 넘지 않는다. 치료할 때마다 "달리기는 나이 들어 해서는 안되는 운동"이라는 지론을 설파한다. 어쨌든 치료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달리기 근육계통에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쪼르르 달려간다.

D-69, 7월16일에도 비골근 손상인 듯 오른쪽 복사뼈가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20년 가까이 주말 러너로 살아왔지만 매일 달리기는 처음이라 몸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미리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100일 달리기 기간, 거위발건염 비골근통증 족저근막염...뭐가 됐든 이상한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조기에 치료를 했다. 덕분에 별 문제 없이 평균 하루 10km이상 뛰었다.

<'달려라 학파' 달리는 의사들>
&#039;뛰어라&#039;의사의 격려와 &#039;말아라&#039;의사의 치료 덕에 100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뛸 수 있었다.
'뛰어라'의사의 격려와 '말아라'의사의 치료 덕에 100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뛸 수 있었다.
후자 '뛰어라' 학파는 '달리는 의사회'계열 외과 의사님들. 이동윤 김학윤원장 같은 분들이 대표주자들이다.
치료와 더불어 적절한 운동을 해서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100일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페이스북 달리기 모임 쥔장(관리자)인 이동윤 원장이 도쿄올림픽 개막시기에 맞춰 '100일매일이어달리기'라는 프로젝트를 멤버들에게 제안했던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다시 한번 감사).

2019년 서울국제 마라톤 하루 전날 장경인대염 증세로 김학윤 정형외과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이런 의사와 이런 환자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의사: 풀코스는 몇 번이나 뛰었고, 기록은요?(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가 아니다)
환자:최고 기록은 3시간25분입니다. 풀코스 완주는 사오십번 정도...
의사:10km는요?
환자:42분이나 43분정도 됩니다.
의사: 10k에 비하면 풀코스 기록이 균형이 안맞네요. 39분정도까지 스피드를 올려야겠어요(마라톤 코치 처방인지 의사 처방인지 알 수가 없다)
환자: 회사 앞 병원에서 엑스레이 찍어보니 거위발건염이라며 뛰지 말라고 하던데요.
의사:허이구 참내. 나도 거위발 건염 달고 살아요.
그렇게 나온 '처방'
-내일 풀코스는 4시간20분 정도 속도로 천천히 뛸 것(물론 물리치료를 병행한다^^)

<아픔보다 창피함이...타박상은 생활>

단순 자빠짐에 따른 무릎 손 타박상도 러너들에게는 일상 생활이다.
D-70, 7월15일 아침 러닝을 위해서는 처음 가본 석촌호수 둘레길에서 둘레둘레 구경하고 뛰다가 넘어졌다. 석촌호수 길은 우레탄 바닥이라 마찰이 심해서 신발 앞부리가 조금만 걸려도 넘어진다. 무릎이 까졌다. 아스팔트였으면 피 줄줄 날뻔 했다. 이럴 때 (다들 그렇겠지만) 넘어진 아픔보다 남들이 쳐다보는 창피함이 더 크기에 재빨리 일어나서 괜히 땅바닥 눈부라리고 다시 뛴다.

한강 둔치 주로를 달리면서도 길바닥에 남아 있던 차양진입 방지봉 나사못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체력이 고갈되면 발을 드는 높이가 낮아진다. 땅바닥을 딛고 나가는 순간은 조금만 길이 울퉁불퉁하거나 1~2cm 높이의 장애물만 튀어나와 있어도 넘어지기 십상이다. 뒤에서 자전거라도 고속으로 따라올 때 넘어지면 큰 부상이다. 가급적 인도로 뛰는게 맞지만 사람이 너무 붐비거나 그늘이 자전거도로 쪽에 있으면 발길이 그쪽으로 가게 된다. 나도 자전거를 타지만,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전용'이 아니라 사람과 같이 쓰는 공간이다.

라이더들은 달리기 주자들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나도 자전거 탈 때는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에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해맑게 놀다가 부지불식간에 도로로 뛰어들 수도 있고, 한강변에 몇 번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자전거들이 그토록 많이 빠르게 지나가는줄 모르고 여유있게 그것도 옆으로 나란히 손잡고 산책하기도 한다. 뭐든지 역지사지, 한 번 씩들 해보면 이해하게 된다. 자전거가 속도를 줄이고 조심하는게 맞다.

6. 100일간 베이징까지 뛴 셈, 서울-평양 울트라를 기다리며

100일 장정을 마치기 하루 전인 9월22일. 광나루 토끼굴 인근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 아래서 기념 한 컷 남겼다. 베이징까지 거리 954km. 100일간 달린 거리가1047.89km이니 베이징을 도달하고도 남는 거리다.
그 위 평양 표지판은 196km로 씌어 있다. 물론 직선 거리이긴 하지만, 제주 울트라대회 200km코스 참가자들은 잠도 자지 않고 34시간 컷 오프 이내에 단숨에 간다.

2005년, 인민군의 삼엄한 경계 속에 삼일포~장전항~금강산 풀코스 42.195km 구간을 뛰었던 '금강산 마라톤 풀코스'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평 울트라 대회는 얼마나 가슴벅찬 일일까. 대회 생기면(안 생기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내 기어코 뛴다. 버킷리스트 새로 추가다.

100일 달리기를 마친 9월23일. 비골건염(으로 추정되는) 통증을 잡기 위해 침 뜸 주사 약처방을 받고 절뚝거리고 다녔다. 퇴근할 때까지도 '100일달리기가 아니라 '99일 달리기'로 마감할까, 그깟 하루 차이가 무슨 대수라고'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파스 위에 테이핑, 그 위에 발목보호대까지 더해진 '발목 보강공사'를 믿고 다시 길을 나섰다. 1km를 걷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는게 웅녀의 자손으로서 도리니까.

나가서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을 하며 가을 밤 공기를 마시다보니 몸이 절로 앞으로 굴러갔다. 달리는 동안은 오히려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길에 올라서면 발은 움직이고 몸은 굴러가게 마련이다. 1km당 8분의 저속 조깅 속도로 자제하면서 3km를 달리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생각같아선 잠실 운동장이라도 빌려서 축하 파티 하고 싶지만 거리두기 4단계 방역수칙을 준수하기 위해 맥주 한 캔으로 홀로 조용히 자축했다.
족히 1500km는 달렸을 신발. 100일 달리기와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족히 1500km는 달렸을 신발. 100일 달리기와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100일달리기 이전부터 애용했던 러닝화는 1000km 넘게 달리고 나니 밑창이 찢어져 회복 불능이 됐다. 이 친구도 이제 보내줘야 할 때가 됐다. 대신 나에 대한 보상으로 쌔끈하고 비싼 운동화를 하나 입양할 계획이다.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부려보는 작은 사치는 즐거운 기억과 또 다른 동기부여를 선사한다.

100일 달리기가 확실하게 남겨준 건, 비가오나 해가 쨍하나, 평일이나 휴일이나, 낮이나 밤이나, 술마시거나 맨정신이거나, 어떤 핑계가 있어도 매일 뛰는 습관이 만들어지게 됐다는 것이다(적어도 지금까지는).
100일 달리기 하는 동안 '대단하다' '독하다' '멋있다' '미쳤다'는 소리들을 들었다. 딱히 돈 드는(혹은 버는) 것도 아니고, 머리 쓰는 것도 아니고, '손발 쓰는 일'인데(발뿐 아니라 손동작도 달리기에선 매우 중요하다)...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겸손을 떨긴 했지만, 남에게 인정받는 욕구는 사람의 중요한 본능 가운데 하나다.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 반복해서 외치고 칭찬하고 칭찬받아야 발걸음을 계속 옮길 용기와 힘이 생긴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달린다, I R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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