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임대주택 몰수하라" 화난 베를린 시민들 '찬성표' 던진 이유

독일 수도 베를린의 시민 과반이 대형 부동산기업이 소유한 민간 임대주택 24만 채를 몰수하는 방안을 지지했다. 과격해 보이는 이 방안에 시민들이 찬성한 배경에는 주거비 폭등이 있다.

'월세가 비싸도 너무 비싸다'는 문구가 베를린 시내 벽에 쓰여있다 /사진=AFP

27일(현지시간) 도이치벨레(DW)에 따르면 3000채 이상을 가진 부동산기업의 보유 주택들을 몰수해 공공임대로 돌리자는 방안에 대해 하루 전(26일) 진행된 베를린 주민투표에서 56.4%가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는 39%였다.

주민투표 결과는 법적 구속력을 갖진 않지만 차기 베를린 시정부와 연방정부가 이 제안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마련했다. 이날에는 독일 총선과 함께 베를린 시의회 선거도 치러졌다.

베를린의 임대주택 월세는 2016년 초부터 최근 5년간 42%나 치솟았다. 독일 역사상 최고 상승률이다.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는 이런 거주난·주택난 해소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가 반영됐다.

베를린 내 전체 임대주택은 150만 채 정도다. 독일의 대표적인 대형 부동산기업 도이체보넨 등 업체 10여 곳이 각각 3000채 이상씩 보유했는데, 이들 기업의 임대주택은 전체 물량의 15%인 24만 채다.


주민투표는 2019년부터 대형 부동산기업 보유 주택을 몰수하자고 주장해 온 '도이체보넨 몰수 행동' 등이 발의해 이뤄졌다. 이 단체는 4개월 만에 베를린 시민 34만9000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를 성사시켰다. 이번 투표 결과는 도이체보넨뿐만 아니라 보노비아, 피어스그룹 등 다른 대형 부동산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모두를 위한 주택'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베를린 시민들 /사진=AFP

앞서 베를린시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임대료를 동결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 강력한 임대료 억제 정책은 지난 4월 독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폐지됐다. 다만 판결은 임대료 통제가 아닌 권한 침해에 대한 것이었는데, 2015년부터 이미 연방정부 차원에서 '임대료 멈춤' 정책을 시행 중인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관련 조치가 나와 연방정부 권한을 건드렸다는 얘기였다.

2015년 독일 연방정부는 치솟는 임대료를 잡겠다며 '임대료 멈춤(Mietpreisbremse)' 정책을 도입했다. 주변 평균 임대료보다 10% 이상 올릴 수 없게 상한을 정했다.

칼레 쿤켈 도이체보넨 몰수 행동 운동가는 "우리는 이번 투표로 주민 의사가 확인된 조처를 중단하거나 연기하려는 어떤 시도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부동산업체의 주택에 대한 공공소유 전환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시의회 선거는 사회민주당(SPD)이 승리하면서 사민당 중심으로 연정이 구성될 전망이다. 선거 기간 동안 사민당은 임대료 상한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물가상승률 범위를 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내세웠고, 녹색당은 임대료를 2.5%까지만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