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이라, 남궁민이기 때문에 본다

사진제공=MBC

본업을 잘하는 이에게는 몇 번이고 반하게 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잘하는 이들이 선사하는 섹시함은 아찔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라이브로 들었을 때의 벅차오름에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더불어 가수의 단단한 노래 실력이 있다.


이는 연기자에게도 해당한다. 멋진 포장을 걷어내야만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그들의 진짜 매력은, 아름다운 외형이 부수적으로 느껴질 만큼의 단단한 실력에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흔하지 않은 '노래 잘하는 가수'가, '연기 잘하는 배우'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분명 다양한 작품에서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전작을 묻는다면 답을 머뭇거리게 하는 배우가 있다. 이는 연기하는 배우만큼이나 시청자도 현재 그의 작품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체 몇 개의 작품을 했는지 하나하나 떠오르진 않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 혹은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만큼 매 작품마다 전혀 다른 가면을 쓰고 시청자와 만나고 있어서다. 최근 MBC 금토드라마 '검은 태양'으로 '명불허전'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배우 남궁민의 이야기다.


남궁민, 그의 이름을 들으면 어디선가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부터 들리는 듯하다. 오랜 시간 훈련으로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목소리를 기반으로 한 뛰어난 대사 전달력과 탄탄한 연기력까지, 배우로서 최상의 조합을 갖추고 있다. 배우로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중무장한 남궁민은 따뜻함과 서늘함, 다정함과 냉정함, 멜로와 코믹, 심지어는 잘생김과 못생김까지 극과 극의 캐릭터를 넘나들며 시청자들을 매번 놀라게 한다. 그럼에도 어느 하나 어색한 작품은 없었다. 외려 매 작품 자신을 위해 준비된 캐릭터를 만난 듯 소화했고, 언제나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나쁜 말을 쏟아내는 소름 유발자가 됐다가, 가장 다정한 말들로 설렘을 선사했는가 하면, 상대 배우뿐 아니라 시청자까지 눈물을 쏙 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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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믿고 보는 남궁민’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게 아니다. 2001년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로 데뷔한 그는 2002년 SBS 시트콤 ‘대박 가족’에 출연, ‘남궁뎅이’라는 별명으로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 이후 꾸준히 작품에 출연했지만 이렇다 할 대표작은 없었다. 반듯하고 단정한 분위기와 금테 안경이 ‘리틀 배용준’이라 별명을 선사했지만, 그뿐이었다. 남궁민이 시청자에 각인된 작품은 군백기 이후 만난 MBC ‘내 마음이 들리니’(2011). 극중 장준하(본명 봉마루)로 분해 절절한 사연을 강렬한 연기력으로 소화, 다수의 시청자를 ‘서브 앓이’에 빠뜨렸다.


무엇보다 배우 남궁민의 강력한 한 방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선택에 있다. 안경을 벗는 것만으로도 분위기 변신에 성공한 그는 2015년 연달아 악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SBS ‘냄새를 보는 소녀’(2015)에서는 살인을 일삼는 소시오패스 권재희로, 같은 해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는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남규만으로 분한 것. 물론 그가 갖춘 연기력, 캐릭터와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반듯한 얼굴, 다정한 목소리와 말투는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여기에 ‘미녀 공심이’(2016) 안단태, KBS 2TV ‘김과장’(2017) 속 김성룡으로 코믹 연기에 도전, ‘배우 남궁민에게 한계란 없다’는 걸 증명했다. 특히 남궁민의 연기 인생 첫 타이틀롤이었던 ‘김과장’은 그의 활약에 힘입어 그해 KBS 2TV 미니시리즈 평균 시청률 1위로 기록됐다.


배우 남궁민의 연기 인생에서 SBS ‘스토브리그’(2019)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시청자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다는 스포츠 드라마, 흔히 ‘K드라마는 ~에서 연애하기’라는 우스갯소리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야구 그리고 스토브리그에 집중한 이야기로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장점이 극대화된 작품이자, 남궁민의 영민한 선택이 빛을 봤기 때문. 극 중 리그 꼴찌팀인 재송 드림즈에 새로 부임한 단장 백승수 역을 맡은 남궁민은 수많은 사연이 담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고, 그해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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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방송 중인 MBC ‘검은태양’에서 남궁민은 지난 1년의 기억을 잃은 채 국정원에 복귀한 최고 요원 한지혁으로 열연 중이다. 극중 한지혁은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을 나락에 빠뜨린 조직 내부의 배신자를 찾기 위해 돌아온 인물. 4회까지 방송된 가운데 속도감 있는 전개와 매회 쏟아지는 반전, 그 속에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한지혁이 선사하는 긴장감이 시청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특히 이번 캐릭터를 위해 14kg에 달하는 벌크업(근육량 증대를 위해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체격을 키우는 것)으로 외형마저 크게 달라진 그는 첫 방송부터 시청자의 기억에 남궁민이 아닌 한지혁으로 머물고 있다.


남궁민에게 언젠가부터 ‘편성배우’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다양한 채널, 더 다양한 작품이 넘치는 드라마 판에서 편성을 받기란 시쳇말로 하늘의 별따기 수준인 요즈음. 때문에 편성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오랜 시간 표류하는 작품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손을 잡으면 ‘당연히 편성된다’는 의미다. 방송사가 남궁민의 선택에 손을 들어준다는 건, 결국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시청자도 믿고 본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굴도 목소리도 남궁민인데, 만나는 캐릭터에 따라 자신의 이름은 지우고 캐릭터로 기억될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내니 ‘믿고 편성’하고 ‘믿고 볼만’하다. 그래, 시청자 모드의 필자는 결국 ‘남궁민이라, 남궁민이기 때문에’ 매번 그의 작품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