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이끈 그…기시다 총리의 日, '한일관계' 먹구름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NHK 방송 갈무리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전 정무조사회장(이하 정조회장)이 29일 자민당 신임 총재로 당선되면서 한일 관계에는 또다시 먹구름이 드리울 전망이다. 내달 4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총리 지명 선거를 거쳐 스가 요시히데 총리 뒤를 잇는 제100대 일본 총리로 등극하는 그가 선거활동 기간 공개 발언을 통해 한일 갈등 해소가 어려울 것임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아베 신조 전 내각에서 4년 7개월간 외무상(장관)을 지낸 일본 내 외교통이다. 또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의 정치적 지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차기 일본 총리의 외교정책도 아베·스가 요시히데 내각과 같은 기조로 유지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그는 현재 한일 갈등의 주요 근원으로 꼽히는 2015년 외무상으로서 당시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장과 함께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끈 인물이라는 점도 한일 관계 개선 회의론에 힘을 싣는다.

실제 그는 자민당 총재 선거 활동 기간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 독도 등 한일 갈등 현안에 대해 "한국 측에 책임이 있다"며 한국에 대한 강경 자세를 보였다.

지난 24일 외교안보를 주제로 한 온라인 정책토론회에서는 "한국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고, (강제) 징용문제는 1965년 일한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며 "(한국에) 국제법을 확실히 지키도록 요구해야 한다. 볼은 한국에 있다"고 말했다.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해선 한국이 먼저 해법을 제시하는 등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28일 일본 정부는 하루 전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해 압류해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매각 명령을 처음으로 내리자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정말 유감스럽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독도 영토 문제와 관련해선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필요성을 언급하며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예고했다. 그는 "이전부터 ICJ 제소를 몇 번인가 시도한 적 있다. 상대방(한국)이 응하지 않아 재판으로 가진 않았다. 이런 행동을 확실히 계속해야 한다"며 다른 국가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식하지 않도록 일본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ICJ의 강제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아 일본 정부의 제소는 ICJ 재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시다 전 정조회장이 ICJ 제소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ICJ 제소로 독도가 '분쟁 지역'이라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놓는 국제 여론전을 펼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국교 정상화 이전 1954년과 1962년 우리 정부에 독도 문제의 ICJ 제소를 제안한 바 있다.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 방문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ICJ 제소를 시사했으나 이뤄지진 않았다.

기시다 당선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선 "시기와 상황을 고려한 뒤 참배를 생각하겠다"며 여지를 남겨뒀다.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 경제적 갈등 해소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다. 선거 경쟁자였던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은 과거사와 경제 갈등을 분리해 보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며 그의 당선시 수출규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수출규제와 관련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그동안 경제 분야 현안에서 협의를 통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뤄낸 만큼 수출규제 상황이 더 악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이날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노 행정개혁상과 2차 결선투표까지 접전 끝에 차기 총재에 당선됐다. 그는 1차 투표에서 고노 후보보다 한 표 많은 256표를 얻어 예상 밖 1위에 올랐으며, 2차 결선투표에서는 257표를 획득하며 87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