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뛴 마라톤에서 한국신기록…왜 그에게 지도자 제의는 없었나

권은주 감독(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민준 명예기자(변호사). /사진=남민준

남민준 변호사(남변):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세계 10위 안에 드는 빼어난 기록이기도 했고 무려 21년이나 깨지지 않은 신기록이었다. 기록을 세웠을 때와 기록이 깨질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하다.

권은주 감독(권): 기록을 세웠을 때는 별 다른 생각이나 느낌이 없었다. 처음이라 '열심히 연습했으니 연습한 대로만 하자'는 생각 뿐이었다. 기록이 깨졌을 때는 잠깐 섭섭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기쁘기도 하고 김도연 선수가 부럽기도 했다. (기록이 수립된) 그 대회에 있었다. 5Km, 10Km를 지나는데 김도연 선수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였고 30Km를 넘어 가는데도 김도연 선수의 랩 타임이 여전히 좋아서 (경기가 끝나기 전인) 그 즈음에 기록이 깨지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순간 잠시 섭섭한 느낌이 스쳐 갔다. 많이들 물어 보시는 것처럼 그렇게 아쉽거나 섭섭하지는 않았다(웃음). 선수들은 알 텐데 기록을 세운 김도연 선수가 느꼈을 엄청난 성취감을 생각하니 부러웠고 한국 마라톤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 오히려 기뻤다.


남변: 5000m로도 한국기록을 세웠었는데 장거리에서 마라톤으로 전환한 계기가 궁금하다

권: 원래 마라톤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곧바로 마라톤을 할 수 없으니 5000m, 1만m, 하프마라톤을 좀 하다가 마라톤을 하게 된 건데 보통 그렇게 한다.

남변: 42.195Km를 뛰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정말 힘들 때는(사점, Dead Point) 어떻게 참고 계속 뛰는지 궁금하다.


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참고 달린다(웃음). 진짜 힘들 때는 속으로 욕을 하기도 하고(웃음) 경기 때 뒤따라 오면서 계속 이것 저것 얘기하시는 감독님이나 코치님 지시에 속으로 '그게 그렇게 쉽나'하고 투덜거리면서 뛰기도 했다.

남변: 한 번 경기를 뛰고 나면 몸무게도 많이 빠질 것 같다.

권: 1kg 정도 빠진다. 생각보다는 적다. 보통 경기 일주일 전에 식이요법을 하는데 전 3일은 완전히 단백질을(간이 되어 있지 않은 고기등)을 먹어 탄수화물을 고갈시키면서 일종의 에너지 저장 창고를 만들고 나머지 3일은 주 에너지로 쓸 수 있는 탄수화물을 먹는다. 30Km를 넘어 가면서 에너지가 고갈되면 이렇게 식이요법으로 만들어 둔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체중이 2Kg 정도는 빠지는데다 선수들은 항상 훈련을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처럼 체중이 많이 빠지지는 않는다.

남변: 선수생활을 회상하면 아쉬운 점은 없나.

권: 지금 한다고 하면 조금 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상이 있거나 좋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완전히 재활을 하거나 쉬어야 하는데 그때는 잘 해야 한다는 생각과 미래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했다. 한국 신기록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 대표로 출전한 대회는 아시안게임이었고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은 부상 때문에 출전하지 못 했다. 그 부분은 두고 두고 많이 아쉽다.

그래도 선수 생활할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수로서는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서 실력 발휘하면서 나만 잘 하면 됐지만 선수가 아닌 사회인으로서 사는 건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남변: 올림픽 전후 항상 얘기되는 문제인데 인기종목에 비해 비인기종목의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 같다. 육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골프처럼 스타플레이어가 유니폼을 이용한 광고로 지원 받을 수는 없나.

권: 육상도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 부분은 많이 아쉽다. 유니폼을 이용한 광고는 세계육상연맹(IAAF) 규정상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후원을 받는다 해도 국가대표를 후원하는 브랜드와 다른 브랜드의 후원을 받는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후원 받는 브랜드가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형편이다.

남변: 빼어난 기록으로 오랜 시간 한국 장거리 육상의 간판 선수였다. 현재 아마추어 런닝 클럽의 감독이지만 선수들에게 전수하지 않고 묵히기에는 권감독의 경험과 노하우가 많이 아깝다.

권: 크게 인기가 있는 종목이 아니다 보니 국가대표팀 외에 시·군이나 공공단체에 육상선수단이 있지만 지도자로서의 제의를 받은 적은 없다(웃음). 초등학교에서 꿈나무들을 잠시 가르친 적이 있는데 경쟁사회다 보니 지도자에게나 선수에게나 결과가 중요했다. 하지만 결과를 내기 위해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걸 가르치면 장기적으로는 꿈나무의 건강과 발전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래 있진 못 했다.

남변: 코로나 때문에 주춤하지만 최근 달리기 동호회가 꽤 인기가 있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사람들이 달리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권감독을 초빙해 달리기를 배우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권: 인스타로 연락하면 된다. 과한 비용은 아니지만 유료다. PT와 같다(웃음). 누구나 할 수 있는 달리기지만 다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운동을 하는 게 중요한데 운동 전에 몸을 풀고 함께 뛰면서 수준에 맞게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달릴 수 있도록 조언한다.

남변: 인터뷰를 할 때 항상 묻는 마지막 질문이다. 꿈이 있다면?

권: 원래 달리는 걸 좋아했다. '권은주의 마라톤 클럽'같은 걸 만들어서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들,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서 내 경험도 전하고 그 분들이 즐겁게 함께 달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건강도 챙기고 스트레스도 풀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함께 즐겁게 달릴 수 있는 그런 클럽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인터뷰 후기]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스포츠신문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필자에게 '권은주'라는 이름 석 자는 낯 선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도전에서 무려 21년이나 깨지지 않은 기록을 세운 후 오랜 시간 한국 여자 마라톤의 간판 선수로 활동했던 권은주 감독을, 필자는 감히 '한국마라톤의 전설'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무려 1000명이나 뽑는 시험인데도 필자는 사법시험에 여러 차례 떨어졌습니다. 그런 필자의 눈에 '한국에서 제일 잘 달리는' 권은주 감독은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입니다만, 인터뷰를 하면서 필자는 약간의 의문과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벌이나 가진 재산 같은 결과물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학벌이나 가진 재산이 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 역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물인 학벌이나 재산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했던 노력과 흘린 땀방울 역시 그에 대한 평가에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대단한 기록과 오래 시간 동안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권은주 감독에게 (반드시 국가대표가 아니더라도) 지도자로서의 제의가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필자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아마추어 동호인들을 가르치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가 선수시절 땀과 눈물로 쌓은 선수로서의 경륜과 노하우는 후배 선수들에게 전해질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필자의 의문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권은주 감독은 여전히 달리기를 사랑하고 여러 사람들이 건강하게 달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만, 육상계 스스로 만든 이런 벽이 오히려 육상을 대중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육상뿐 아니라 부족한 지원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노력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감사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저의 영웅, '권은주 감독님'의 건승을 빌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