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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반쪽이·조커가 아니라…'안면장애인'입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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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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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난치병 앓는 김민혜씨(36), 여전히 이어폰 꽂아야 외출하지만…0.1% 안면장애인 힘든 삶 낫게 바꾸려 노력 "우린 모두 얼굴이 다 다르잖아요, 안면장애도 그저 단순한 특성일 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제주 바다에서 활짝 웃는 김민혜씨(36). 제주에 살면서도 이렇게 오는 게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가 원할 때 언제든 맘 편히 바람을 쐬러 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저 한 사람으로 온전히 바라봐주기를./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제주 바다에서 활짝 웃는 김민혜씨(36). 제주에 살면서도 이렇게 오는 게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가 원할 때 언제든 맘 편히 바람을 쐬러 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저 한 사람으로 온전히 바라봐주기를./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1986년 가을, 제주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딸이었다. 엄마는 하루빨리 아기를 보고 싶었다. "우리 아기 좀 보여주세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가족들이 아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따가 봐, 이따 보면 돼" 하며 말이다.

엄마는 뒤늦게 아기 얼굴을 마주했다. 오른쪽 얼굴 전체와 오른팔에, 붉은 반점이 있었다. 아기의 병은 이름도 낯선 '스터지웨버증후군'. 뇌의 미세혈관 구조에 영향을 주는 신경 피부 증후군이라 했다. 신생아 5만 명당 3명꼴로 발생하는, 희귀하고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고 했다.

엄마는 아기를 보며 이렇게 다짐했다. '이 아이는 내가 더 잘 키울 거야.'
어렸을 때 민혜 님의 사진.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얼굴과 팔에 붉은 반점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안면장애를 가지고 있었다./사진=김민혜님
어렸을 때 민혜 님의 사진.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얼굴과 팔에 붉은 반점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안면장애를 가지고 있었다./사진=김민혜님
이름은 김민혜. 나이는 서른여섯 살. 그 아이는 엄마의 바람대로 어엿하게 잘 자랐다. 그리고 이젠 자신과 같은 이들을 위해, 그처럼 태어나고 자랄 아이들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소릴 내고 있다.

내게도 민혜 님의 편지가 왔었다. 고작해야 전체 장애인의 0.1% 정도가 겪는 극소수의 이야기라 했다. 그래서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가고 싶은 길을 내가 조금은 열어줄지 모른단 기대감에, 긴 글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 편지를 무시하더라도 자신은 다른 방법을 연구해 계속 목소릴 낼 거라고 했다.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 전하면 좋을까. 고민하느라 꽤 시간이 흘렀으나, 그의 편지를 잊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10월 5일 아침, 민혜 님을 만나러 제주에 갔다. 그 하루를 함께하며 좀 더 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안면장애'를, 안면인식장애로 알아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민혜 님./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민혜 님./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민혜 : 안면장애인이라고 하면, 흔히 가장 많이 묻는 게 그거예요. "아, 그럼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보세요?"

형도 : 안면 인식 장애로 착각하는 거군요.

민혜 : 맞아요. 헷갈려 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심지어, 안면장애인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르더라고요. "그런 것도 장애에 포함되니?"라고 묻고요.

안면장애인은 2003년부터 법정 장애인으로 등록됐다. 원래 2급부터 5급까지였으나, 장애등급제 폐지 후엔 경증과 중증으로만 구분된다. 통상 노출된 안면부의 60% 이상의 변형이 있는 이들이 안면장애인에 포함된다. 민혜 님도 경증 안면장애인이다.

흔히 안면장애인이 화상을 입은 장애인만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화상장애인은 안면장애인에 포함된다.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긴 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민혜 님처럼 선천적인 병으로 장애가 있는 이들도 많다.



합병증도 대부분 동반…시각장애에, 경기약 달고 살아


/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그리고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다. 안면장애인 대부분은 '합병증'도 있다.

민혜 님도 그랬다. 붉은 반점이 눈을 덮으니 녹내장이 생겨, 초등학교 6학년 때 안구 제거 수술을 받았다. 안면장애인이면서 시각장애인이다. 의안을 착용하는 탓에, 하루 내내 먼지가 달라붙고 눈물눈곱이 계속 생겨 힘들단다.

두피를 덮은 건 문제가 더 심해서, 지적장애가 동반된 이들도 있다. 민혜 님은 그렇진 않았으나, 경기를 많이 일으켜서 매일 경기약을 먹는다. 그래서 두통이 계속 있단다. 학창시절엔 학교 다니기도 힘들었고, 지금 직장에서도 병가를 종종 낸다.

민혜 : 아픈 날이 많거든요. 따가운 햇빛을 받으면 눈물이 줄줄 나오고 부어서, 초등학교 땐 아침 조회 때 교실을 지키는 게 일이었어요. 고등학교 땐 뇌전증 때문에 계속 쓰러졌었거든요. 수업하다가도 쓰러지고, 그래서 양호실에 가고 그랬었어요.

형도 : 수업 듣는 것도 힘드셨겠어요.

민혜 :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선생님들께서 사비를 걷어서 '들 것'을 사놓기도 하셨었어요. 너무 쓰러지니까요. 그럴 때 바로 저를 들고 양호실로 내려갈 수 있게요.

형도 : 너무 감사하네요.

민혜 : 맞아요, 그때 선생님들이 너무 감사해요.



#안면장애ㅋㅋ 해시태그 달고 낄낄


일본 만화에 '죽어라 안면장애인!'이란 대사를 입힌 뒤,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돼 희화화 된 장면. 심한 상처가 된다. 누군가에게는./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일본 만화에 '죽어라 안면장애인!'이란 대사를 입힌 뒤,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돼 희화화 된 장면. 심한 상처가 된다. 누군가에게는./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이렇게 대다수는 안면장애인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함부로 조롱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민혜 : SNS에 #안면장애라고 해시태그를 단 사람들이 많거든요. 사진을 보면 얼굴을 일그러트리거나 우스꽝스럽게 만든 것들이에요. ㅋㅋㅋ하며 비웃고 조롱하고요.

형도 : 저도 자주 봤어요. 상처가 많이 되셨겠어요.

민혜 : 거기에 댓글을 남겼었어요. '제가 안면장애인 4급인데, 같은 안면장애인끼리 친구 하자'고요. 그랬더니 안면장애인이 있는 줄 몰랐다며 지워준 사람도 있지만, '남의 게시물에 와서 뭐 하는 짓이냐', '당장 꺼져'하며 차단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어요.

민혜 님의 말을 들은 뒤 SNS에 #안면장애를 검색해봤다. '얼굴 몰아주기'라며 표정을 다 같이 일부러 일그러트리고,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만든 사진들이 나왔다. 웃음거리를 만들거나 희화화가 필요한 상황이 다수였다.
SNS에서 안면장애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해시태그들./사진=SNS 화면 캡쳐
SNS에서 안면장애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해시태그들./사진=SNS 화면 캡쳐
민혜 :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는 잘 알아요. 이런 걸로 놀리면 안 된다는 걸요. 설령 쓴다고 해도 옆에 사람들이 "너 그러면 안 돼, 그 태그 삭제해" 해요. 욕먹을 행동이란 걸 알거든요.

형도 : 맞아요, 그런 경우는 잘 없지요. 안면장애만 유독 조롱거리처럼 쓰이네요. 속상하게요.



'반쪽이.괴물.조커'…이어폰 껴야만 외출


민혜 님은 그가 말하고 싶은 걸 빠짐없이 이야기하기 위해, 꼼꼼하게 자료를 다 정리해왔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민혜 님은 그가 말하고 싶은 걸 빠짐없이 이야기하기 위해, 꼼꼼하게 자료를 다 정리해왔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사람의 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고 했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지, 얼마나 많은 을 하는지. 민혜 님은 사람의 눈빛을 읽는다고 했다. 저 사람은 날 경멸한다, 관심이 없다, 내 옆에 앉지 말라고 한다, 그런 것들 말이다. 그 말을 하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민혜 :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진 별명이 있었어요. 얼굴 반이 이렇게 됐다고 해서 '반쪽이, 괴물, 조커, 아수라 백작' 그런 거였죠. 남자애들한테 돌도 맞아봤고요. 여자애들도 저랑 놀지 말라고, 따돌리고 그랬죠.

형도 :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했을까요.

민혜 : 다행히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중재도 해주고, 그때부턴 친구들이 같이 지내야 할 친구라고 받아들여 줬어요. 정말 자연스럽게. 한 번은 초등학교 때 친구인 남자애가 동창회에서 무릎을 꿇는 거예요. 자기가 찌개를 엎은 뒤 화상을 입었는데, 제 생각이 났다면서요. 꼭 사과하고 싶었다면서요.

형도 : 그래도 다행이에요. 조금 늦었지만 사과해서요.

민혜 :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했지요. 다 친구 아니냐고요. 나도 어렸고, 너네도 어렸지 않냐고요. 그때는 다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고요. 그 이후로 무슨 날만 되면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와요.

철없는 시절, 민혜 님을 놀린 그 친구들은 그리 지금도 가까이 남았다. 그러나 타인들도 다 그런 건 아녔다. 폭력적인 시선과 말들이 아무렇잖게, 그를 파고들었다.

민혜 : 아기가 예뻐서, 귀여워서 보면 애 부모가 아기 얼굴을 돌려버려요. 아우, 나 죄지었나, 막 그런 생각이 들지요. 한 번은 아이들이 절 보며 "엄마, 저 사람 봐. 왜 저렇게 생겼어?"라고 물으니, 엄마가 그렇게 답하더라고요. "엄마 말 안 들어서 그래. 넌 엄마 말 잘 들어야지?"

그래서 나갈 땐 이어폰을 필수적으로 낀다.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게 무서워서다.



100만 원짜리 치료 계속 받는데…보험은 고작 '평생 6번'


레이저 치료를 받고 있는 민혜 님. /사진=메디컬다큐 7요일 화면 캡쳐
레이저 치료를 받고 있는 민혜 님. /사진=메디컬다큐 7요일 화면 캡쳐
3개월에 한 번씩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레이저 치료다. 고통스럽다. 한 시간이 넘도록 살 타는 냄새를 맡아야 한다. 옆 방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 같이 이겨내자"고 속으로 기도한다. 성형수술도 고려했으나 골격 자체가 뒤틀려 있고, 미세혈관을 잘못 건드리면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엄두도 못 냈다.

2015년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 제주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오는데 치료비가 비싸다. 비행기 비용까지 하면 1회에 100만 원씩 든단다.

그런데, 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건 터무니 없이 적다.
영부인께 보낸 편지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민혜 님에게 보낸 답장. 보험 혜택이 평생 6회라고 명시돼 있다./사진=김민혜님
영부인께 보낸 편지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민혜 님에게 보낸 답장. 보험 혜택이 평생 6회라고 명시돼 있다./사진=김민혜님
민혜 : 보험 혜택이 '평생 6번' 밖에 안 돼요. 쌍꺼풀 수술 같은 '미용 목적'으로 들어가서요. 저는 치료 목적인데도요. 지금까지 30번 정도 치료받았으니, 보험 혜택은 진작에 끝난 거죠.

형도 : 지금까지 거의 3000만 원 넘게 든 건데, 비용 부담이 많이 크시겠어요.

민혜 : 그런데도 병원에선 이제 시작이라고 하거든요.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른 친구들은 결혼하려고, 연애하려고, 집 사려고 적금 드는데 저는 치료비 때문에 적금 들고 있어요.

형도 : 정부에서 치료비 지원되거나 그런 것도 없고요?

민혜 : 전혀 없어요. 안면장애인의 보험 혜택을 늘려주고, 치료비 지원을 정부 차원에서 늘리는 게 필요해요. 긴급복지 지원제도란 게 있어서, 치료비에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동주민센터에 갔었어요. 그랬더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긴급 수술만 지원한다. 수술하면 장애 등급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아세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위해 문신 지우는 비용이 지원된다는 거요. 정말 복지가 평등한 걸까요?



0.1% '소수 장애인'의 비애, 아무런 지원이 없다


/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그러나 누구도 그를 대신해 목소릴 내줄 사람이 없다. 소수 장애인이어서다.

전국의 안면장애인 수는 지난해 기준 3000여 명. 전체 장애인(263만 3000명) 대비 0.11%에 불과하다. 지체, 시각, 청각, 지적 등 모든 장애 범주를 통틀어 가장 적은 숫자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더 밀려 있다.

민혜 : 장애인으로서 보호와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요. 협회도 만들고 목소리도 내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 되고요. 안면장애인들은 나오는 걸 꺼려하니까요. 억울한 일이 생겨도 그냥 묻고 살아가는 게 당연시되지요.

형도 : 잘 알지요. 목소릴 한껏 높여도 잘 안 바뀌는데, 목소리도 잘 못 내면 오죽할까요.
영부인께 김민혜 님이 보낸 편지./사진=김민혜님
영부인께 김민혜 님이 보낸 편지./사진=김민혜님
그러니 스스로 목소릴 높여왔다. 문재인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께 편지도 쓰고, 커뮤니티에 글도 쓰고,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도 했다.

영부인 편지는 보건복지부에서 민원으로 처리돼 답변이 왔다. 기계 같은 대답엔 그리 쓰여 있었다. 심지어 안면장애와 관련해, 혐오라는 표현이 있었다. '혈관종, 화염상모반이 노출 부위에 있는 경우에는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어 안정된 사회생활이 어려우므로 급여 대상으로 함'이라고. 그에 대해 민혜 님은 "국가기관에서 지체장애인에게 다리가 혐오를 준다, 이런 말을 안 쓰지 않느냐""제게 극혐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다를 게 뭔가 싶다"고 했다.

동분서주 직접 나서는 그를 보고 다른 안면장애인은 이런 말도 했었다. "고작 몇 명이 힘을 합친다고 바위를 무너뜨릴 수 있겠어요?"라고. 하지만 민혜 님은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무겁고 큰 바위라도, 부딪히고 부딪히다 보면 언젠가는 기울 겁니다. 그리고 무너질 거예요. 어차피 안 될 거라고 하면,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바뀌는 건 없을 거예요."



"내가 너라면 그냥 죽어"…마음이 더 아픈 이들, '심리치료' 필요


민혜 님과 함께 제주 바다를 거닐었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민혜 님과 함께 제주 바다를 거닐었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민혜 님과 함께 근처 바다에 가서, 산책했다. 제주에 살면서도 그는 몇 년 만에 온 거라고 했다. 가까이서 바다를 산책하니 좋다고 했다. 바닷 바람이 그의 얼굴을 시원하게 감쌌다.

함께 걸으며 민혜 님은 "나 때문에 같이 있는 사람들까지 시선을 받을까, 괜히 미안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행인 중에는, 나와 민혜 님을 번갈아 가며 빤히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지금껏 어떻게 살았니?" "내가 너였으면 XX했겠다." 민혜 님이 누군가에게 실제로 들은 말들이다. 그러니 신체 장애보다 마음이 더 아픈 이들이, 안면장애인이라고 했다. '반쪽이'란 단어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데, 주위에선 "그냥 무시해버려"라고 쉽게 얘기한다.
시선이 느껴져 불안하거나 혼자 있게 됐을 때, 엄지 손가락을 이렇게 뜯는 게 버릇이 됐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왜 그렇게 보느냐"고 당당히 따지지 못하고, 대신 그의 손을 뜯는 걸로 안정을 얻는단다. 심리 지원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사진=김민혜님
시선이 느껴져 불안하거나 혼자 있게 됐을 때, 엄지 손가락을 이렇게 뜯는 게 버릇이 됐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왜 그렇게 보느냐"고 당당히 따지지 못하고, 대신 그의 손을 뜯는 걸로 안정을 얻는단다. 심리 지원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사진=김민혜님
인터뷰하는 내내, 민혜 님은 유독 많이 울었다. 그는 누군가 꾸준하게, 그리고 전문적이고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민혜 : 정부에서 심리치료 지원이 됐으면 좋겠어요. 일대일로 얘기하는 게 정말 편하거든요. 안면장애인으로 살아오며 온갖 시선을 받으면서 상처받은 것, 우울감이 있는 걸 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창구가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필요해요.

형도 : 정말 그럴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어떤 게 필요할까요?

민혜 : 보통 안면장애인들이 다 합병증이 있거든요. 턱이 비대칭이면 치아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귀가 좋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런 합병증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고요. 안면장애인을 위해 자극이 적은 화장품도 개발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1시간 반 동안, 서로 눈을 감고 대화한 이유


눈을 감고, 서로의 대화에만 집중한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있는 그대로, 그의 삶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눈을 감고, 서로의 대화에만 집중한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있는 그대로, 그의 삶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실은 민혜 님과 처음 만난 순간, 함께 눈을 감자고 했다. 그리고 대화해보자고 했다. 우리가 서로를 아는데 시각적인 게 얼마나 중요할까 싶어서. 그게 어쩌면 편견을 만들지 않을까 싶어서. 타인의 시선에 지친 그 역시, 좀 더 맘 편히 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리 눈을 감고, 우리는 장장 1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학창 시절부터 일기를 꾸준히 썼다는 사람. 5학년 때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좋았던 부분을 밑줄 그어준 덕에 글 쓰는 게 좋아졌다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책을 내는 게 꿈이란 사람. "네 첫 책은 내가 1등으로 사줄게"라며 친구에게 받은 응원이 좋았단 사람. 그러니 어쩐지 인복은 많다는 사람.

드라마를 몰아보는 게 좋고, 영화도 좋다는 사람. 함부로 누굴 판단하는 이가 싫다는 사람. 천주교 신자라 기도를 할 때 "힘든 일 주지 마세요"가 아니라, "힘든 일을 주시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게 조금만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한다는, 삶을 단단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
/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형도 : 민혜 님은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민혜 : 제가 포크를 좋아하는데요. 가수 김광석 씨 팬이에요.

형도 : 아, 너무 주옥같은 노래들이지요. 특히 좋아하는 곡이 있다면요?

민혜 :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좋아요.

형도 : 저도 들을 때마다 눈물 쏟는 노래네요.

민혜 :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게 됐느냐면요. 어느 날, 제주 해안가 쪽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갔는데요. 할아버지가 물질하시다가 다치신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가 약을 발라주셨어요. 그 모습이 좋아서 사진을 찰칵 찍었거든요. 나중에 사진 보면서, '어, 이 모습과 어울리는 노래가 있었는데'하고 엄청 찾아봤는데 그 노래였던 거예요. 할아버지가 2010년에 돌아가셨거든요. 아유, 그때부터는 계속 눈물이 나서 그 노래를 못 듣겠어요.
엄마에게는 더없이 특별한 딸이고,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특별하니 평범한 거라고. 그러니 안면장애를 그 사람의 단순한 한 특성 정도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눈을 떴을 때, 그가 미소 짓는 모습이 좋았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엄마에게는 더없이 특별한 딸이고,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특별하니 평범한 거라고. 그러니 안면장애를 그 사람의 단순한 한 특성 정도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눈을 떴을 때, 그가 미소 짓는 모습이 좋았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눈을 감고 대화하니, 나누는 이야기 외엔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람만을, 그가 걸어온 삶만을 상상하고 느꼈다. 낯선 경험이었으나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화는 점점 깊어지고 즐거워졌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민혜 님의 삶 자체에만 제대로 공감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눈을 뜬 뒤에도, 내가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민혜 님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우린 한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둘 다 어쩐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는 특별하고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인터뷰 전날 밤, 하고픈 말이 많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누군가 그의 말을 오롯이 들어준 것도 거의 처음이었으리라./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인터뷰 전날 밤, 하고픈 말이 많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누군가 그의 말을 오롯이 들어준 것도 거의 처음이었으리라./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민혜 님의 어머니는 어딜 가든 그를 데리고 외출했다. 내 딸이라고 자랑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그를 숨기지 않았다. 삼촌과 이모들은 뽀뽀해줬고, 안아줬고, 민혜 님은 애교를 부렸다. 사촌들과 한 방에서 놀다가 스르르 잠들기도 했다.

할머니는 민혜 님을 유독 예뻐했다. 늘 손녀의 오른쪽 얼굴만 쓰다듬었다. 치료를 받으면 아프다고, 그러니 하지 말라고 했다. 연세가 들어 치매가 온 뒤에도 민혜 님은 알아봤다.

민혜 : 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에요. 특별한 사람이에요. 가족에게, 특히 엄마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잖아요. 저 스스로에게도 그렇고요.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명, 한 명이 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평범한 거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별나다고 생각해요.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니라고 하죠.
말도 잘하고 글도 정말 잘 쓰는 멋진 사람. 제주 바다에서 활짝 웃어보이는 민혜 님./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말도 잘하고 글도 정말 잘 쓰는 멋진 사람. 제주 바다에서 활짝 웃어보이는 민혜 님./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PD
형도 :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봐줬으면 하고 생각하세요?

민혜 : 그냥 그 사람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생기지 않았잖아요. 누군 쌍꺼풀이 있고, 누군 그렇지 않잖아요. 그 사람이 가진 특징이라고 단순히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형도 : 그 말이 참 좋네요. 정말 공감해요.

민혜 :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어요. 평범하게 행복을 누리기 위해, 또 저 같은 삶을 살아갈 어린아이들을 위해서요. 그 아이들이 조금은 더 편히 살아갔으면 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민혜 님이 완성한 퍼즐 그림. 그의 삶도 이렇게 잔잔하고 평온하기를./사진=김민혜 님
민혜 님이 완성한 퍼즐 그림. 그의 삶도 이렇게 잔잔하고 평온하기를./사진=김민혜 님
에필로그(epilogue).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민혜 님은 퍼즐을 만든다고 했다. 1000조각씩 되는 걸 사다가 하나씩 맞췄다. 그러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온전히 거기에만 몰두할 수 있었단다. 다 만들고 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도 했다. 귀한 거라 감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퍼즐이 좋은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걸 하면서 삶의 철학도 생겼단다.

민혜 : 퍼즐 조각이 1번부터 1000번까지 있잖아요. 중간에 256번째 조각이 있다고 하면, 얘만 딱 떼놓고 보면 어느 그림에 있는 건지 모르거든요.

형도 : 그렇지요.

민혜 : 그런데,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256번째 조각이 어느 역할은 꼭 하거든요. 그게 없으면 그 부분에 그림이 완성이 안 돼요. 그래서 저도 사회에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몸은 아프고 장애가 있지만, 어딘가에선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그런 거요.

형도 : 민혜 님의 삶이 하나의 퍼즐이라면, 그리고 지금 조각을 하나씩 맞추고 있는 거라면, 나중에 어떤 인생 작품이 될 것 같으세요?

민혜 : (한적한 강가 풍경 사진을 보여주며) 이 그림 같았으면 좋겠어요.

형도 : 왜 그럴까요?

민혜 : 30대 중반인 지금은 뭔가 폭풍처럼 삶이 휘몰아치는 기분인데요. 이 그림은 평화롭고 잔잔하고 휴식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좋아서요.

그 말이 울컥하고 마음에 걸린 뒤 도통 빠지질 않아서, 자정이 다 되도록 이 글을 붙잡고 있다. 그의 소소한 바람대로, 지루하도록 평온한 삶을 어떻게든 선물하고 싶어서.

▼▼▼ 민혜 님과 함께 눈을 감고 대화한, <남기자의 체헐리즘> 영상도 많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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