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공시생 죽음으로 몰아간 '합격 번복'…87일째 묵묵부답

지난 7월27일 고3인 이군이 세상을 떠난 후 이군의 어머니와 아버지 등 유족이 지난 8월5일 부산광역시교육청 앞에서 불합리한 면접 제도 개선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 애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다른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은 억울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군이 세상을 떠난지 3개월이 돼 간다. 유족들은 여전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유족들의 바람은 납득이 되는 채용 방식이었다.

부산경찰청, 면접과정 부정 행위 등 전반적 조사 특성화고 3학년이었던 이군은 지난 7월27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군에 대한 조사는 부산경찰청에서 진행 중이다.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지난 13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고소인이 언론을 통해 주장한대로 면접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등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있다"면서 "교육감에 대한 수사도 함께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유족은 지난 7월 부산시교육청 공무원들을 상대로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어 9월에는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을 직무유기와 자살방조 혐의로 고소했다.


유족은 지난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유족은 "수많은 공무원 준비생들이 면접 시스템으로 인한 억울한 일은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며 "공무원 면접 50조 3항 면접관의 양심에만 의존하는 우수제도를 폐지하라"고 청원했다.

지방공무원 임용령 50조 3항에 따르면 면접관 과반수로부터 다섯 개 평정항목에서 '상'을 받은 응시생은 '우수' 평가를 받게 된다. '우수'를 받은 응시생은 필기시험과 상관없이 최종합격이 가능하다. 만약 면접에서 '보통'을 받으면 '우수'를 받은 응시자까지 포함한 필기시험 성적 순으로 선발된다.
'불합격할만하다'는 이유 찾기 위해 몸부림

/사진=머니투데이 제작 삽화

이군은 지난 7월26일 3년 동안 준비했던 부산시교육청 시설직 9급 공무원 '합격'을 확인했다. 누구보다 기뻐했지만 한 시간 만에 결과는 '불합격'으로 바뀌었다. 부산시교육청은 '행정적인 실수'라고 했다.

이군은 결과가 바뀐 것도 힘들었지만 본인이 왜 떨어졌는지 궁금했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면 원인은 '면접' 점수였다. 이 채용은 필기시험을 치른 5명이 면접을 봐서 3명이 최종 합격했다. 이 중 2명은 필기 시험에서 1위, 2위를 했다.

나머지 한 명인 A군은 필기 시험은 5등이었지만 면접에서 유일하게 '우수'를 받아 필기에서 3위를 한 이군을 제치고 합격했다. 두 명의 면접관으로부터 다섯 개 평정항목 모두 상중하에서 '상'을 받아 면접 '우수'가 되면 필기시험 점수와 상관없이 합격하게 된다.

이군은 면접 점수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3명의 면접관이 10분 동안 본 면접 항목은 △공무원으로서의 정신자세 △전문지식과 그 응용능력 △의사 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예의 품행 및 성실성 △창의력 의지력 및 발전 가능성 등 다섯 가지다.

이 10분 동안 면접으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됐다. 이군은 특히 '전문지식과 그 응용능력' 면접 문항과 관련해 A군이 두 면접관으로부터 '상'을 받고 본인이 '중'을 받은 이유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같은 반 학생인 A군 보다 이군이 관련 성적이 더 우수하고 자격증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군은 답답한 마음에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에 전화했다. 부산시교육청에 문의했지만 "다음에 더 열심히 공부해라"는 말뿐 다른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은 이번은 잊고 가을에 있을 채용에서 잘해보자고 그를 위로했다. 가을에는 2명 채용이 예정돼 있었다. 이군은 "필기 시험은 더 잘 볼 자신이 있다. 노력하면 되니까, 근데 면접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 때도 '우수' 2명이 나오면 떨어지게 된다. 노력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닌 것 같다"며 점점 자신 없어 했다고 유족은 전했다.

이군은 시험 결과 발표가 있었던 다음 날 가족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족은 "'본인이 불합격할만하다'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답을 얻지 못해 힘들어했다"고 했다.

"두 명의 면접관, 경력이 없다고 계속 트집...불합격 납득 안된다" 현재 공무원 채용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비단 이군만은 아니다.

B씨는 지난 7월 서울시 지방직 간호직 공무원 시험에서 최종 불합격했다. 필기 점수가 88.33점으로 합격선 점수(85점)를 웃돌고 면접 준비도 많이 해서 합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떨어졌다.

그는 기술직 공무원 학원에서 제공하는 응시생들이 사전에 합격선을 조회하는 사이트에서 200등으로 안정권이었다. 서울시는 애초 선발하기로 한 292명을 훨씬 웃돌아 325명을 최종적으로 뽑았다.

B씨는 불합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면접관의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간호직 공무원은 자격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8급으로 채용된다. 그 역시 서울 소재 대학의 간호학과를 졸업했고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다.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 채용이기 때문에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많이들 응시한다.

B씨는 "면접관 두 명이 계속해서 '경력이 없는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는 "(병원) 경력은 없지만 잘 할 수 있다. 열심히 할 것이다"고 했지만 면접관들은 "경력이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냐"며 계속 추궁하면서 면접 시간 동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바로 발령을 내야 하는 상황은 이해하는데 면접의 초점이 경력 여부에 있었다"며 "면접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너무 허무했다"고 토로했다.

B씨는 내년에 다시 응시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험을 잘봐도 또다시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지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1년 이상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며 "왜 떨어졌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며 답답해했다.
세종시·경기도, 공정성 위해 '우수', '미흡' 대상 추가 면접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면접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 면접을 통해 최종합격자를 선발하는 지자체도 있다. 지방공무원 임용령 50조 3항에 따르면 면접시험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면접시험을 추가로 실시할 수 있다. 단 추가 면접 대상자는 '우수'나 '미흡'을 받은 응시자들만 해당된다.

세종시의 경우 공무원 임용 면접에서 '우수'나 '미흡' 응시자가 발생하는 경우 재면접을 실시한다.

세종시청 관계자는 14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우수' 등급을 받는 경우 필기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합격이 주어지다보니 공정성 등을 위해 추가 면접을 실시한다"며 "이를 통해 해당 응시자가 정말로 우수한 재원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 '미흡'을 받은 응시자의 경우 면접 당일의 컨디션 등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에 다시 기회를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또 객관성, 공정성 등을 위해 추가 면접에 들어가는 심사위원도 첫 면접 때와는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세종시 외 경기도 등도 비슷한 이유로 재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 인사과 관계자는 "짧은 시간 안에 응시자를 파악하기에 어렵다고 판단해 다시 검증을 하는 것"이라며 "지방공무원 임용령에 따라 '우수'나 '미흡' 응시자가 발생하는 경우 추가적으로 면접을 진행한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도내 시·군 차원에서 진행되는 임용은 추가 면접을 실시하기에 여건상 어려운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면접에 비리 개입할 여지 최소화해야"

지방공무원 임용 면접시험 평정표, '상', '중', '하'로 점수를 매긴다. '하'를 제외하고는 해당 점수를 준 이유를 적지 않는다.

이군의 사건이 알려진 이후 공무원 채용 방식을 놓고 온라인상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유족이 의문을 제기한 것처럼 행정적인 실수를 포함해 어떤 채용 비리가 있었는지 등은 경찰조사에서 밝혀질 일이다. 하지만 채용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면접의 비중, 최종 채용 방식 등 의견은 다양했지만 '각종 채용 비리가 개입할 여지는 최소화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일치했다.

적어도 시험에 응시한 사람이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납득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재는 다섯 개의 면접 항목마다 '상', '중'을 주면서 그 이유를 적지 않는다. '하'를 줄때만 특기사항란에 구체적인 사유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면접은 필기 점수와 상관없이 당락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면접 시험 역시 필기만큼이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철저한 원인규명과 제도 개선책" 약속했지만 부산시교육청은 이군 사건과 관련해 자체 감사를 진행 중이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면접과 채용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관련 민원이나 불만을 처음 접수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은 "철저한 원인규명과 관련자 엄중문책, 제도 개선책을 선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부산시교육청은 경찰 조사 이후로 미루는 분위기다. 부산시교육청 감사팀 관계자는 "사실확인을 하고 있다. 경찰 조사가 나와야 최종적인 결론이 날 것"이라고 했다.

지방직 공무원 채용 관할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관련해 제도 개선 추진을 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방직 공무원 채용이 국가직과 동일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면접 방식의 보완 등은 향후 논의 할수 있겠으나 현재는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지자체 최종 임명자가 면접을 신중하게 치러서 응시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를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
면접 평가 기준 설명 요청에 교육청은 '묵묵부답'행정안전부가 지난해 상반기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특별감찰 결과, 적발된 건에는 공정한 채용 기회 박탈 행위도 있었다. 한 예로 C공무원은 일반임기제 공무원(8급) 채용에 특정인을 내정했다. 내정자의 경력이 채용조건에 미달하자 인사위원회 의결도 없이 자격요건을 완화해 채용했다.

2018년 1월 은행권에 채용 비리가 터졌을 때 그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행태도 놀라웠다. 서류 탈락 대상이었지만 은행권 임원이나 고위공무원의 자녀 또는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접의 기회가 주어지고 합격했다. 면접 점수에서 최하위점을 받아도 합격이다. 심지어 특정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면접점수를 조정해 다른 지원자를 탈락시키기도 했다.

채용 비리는 드러났지만 일부 부정 채용자들은 여전히 은행을 다니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피해자에 대한 구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 누리꾼은 이군 사건과 관련해 '개인의 나약함'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애초 이군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납득이 되는 채용 시스템이었다면 이제 19살 된 이군이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군의 유족은 "아이가 너무 힘들어한다, 면접 평가 기준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교육청은 어떤 답도 주지 않았다"면서 "그 이틀이 이군에게는 지옥 같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부산광역시교육청은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한 '2020년 정보공개 종합평가'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이 평가는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됐다. 부산시교육청은 Δ사전정보공표 등록건수 Δ비공개 세부기준 적합성 Δ고객수요 분석실적 지표에서 만점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