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해도 안되는 인구정책…인구학자 조영태 교수가 제안한 '이것'

10월28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국가정책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정현수 기자

국내 대표적인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인구정책기본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현행 인구정책의 근간인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하 저고법)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대응(완화)과 적응으로 대표되는 기존 인구정책을 넘어 기획력을 높이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조 교수는 28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정책포럼 주제발표를 통해 "완화나 적응을 해도 미래 인구구조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며 "저고법을 건설적이고 발전적으로 계승할 인구정책기본법과 함께 대한민국의 더 큰 발전을 기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방점을 찍은 건 인구정책의 '기획'이다. 기존 인구정책은 대응과 적응에 초점을 맞췄다. 대응은 2005년 시행된 저고법에 따라 출범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담당한다. 저출산 속도를 완화하기 위한 출산·양육 지원 정책이 대표적이다. 5년 단위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도 지금까지도 4차례 나왔다.

하지만 '인구절벽'을 넘어 '인구지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의 속도를 막지 못했다.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운 건 적응이다. 인구변화에 대응하면서도 파급효과에 적응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하기 위해 2019년부터 기획재정부 중심의 인구정책TF(태스크포스)가 가동 중이다.

조 교수는 "저고법이 규정하는 정책의 기본방향은 인구를 종합적으로 포괄하지 못하고 범사회적인 파급효과의 점검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며 "기재부 인구TF는 저고법에 근거하기 보다는 TF로서의 역할과 기능만을 하고 있어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우리나라의 미래를 기획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정의한 인구정책의 기획은 '오늘의 인구변동이 만들어낼 미래의 인구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국가와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이다. 사회보장제도 재정안정을 위한 정년연장과 연령규범 완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제시한 것이 인구정책기본법이다. 조 교수는 저고법의 한계로 △출산과 고령화 등 지엽적인 인구해석에 기반 △인구정책의 복지정책화 △권한과 책임 없는 거버넌스 체계 △주무부처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인구정책 등을 거론했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저고법의 그릇이 작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인구정책기본법의 방향은 초저출산, 고령화, 이민, 가구변화 등 종속변수로서의 인구 범위를 확장하고 산업계, 교육, 방위, 사회보장, 노동시장 등 결정요소로서의 인구 범위를 포괄해야 한다"며 "민간 인구연구소를 지역거점국립대학에 설치하는 등 풍부한 학술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 참석자들도 현행 인구정책의 한계와 인구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인구문제가 크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온 국민이 인식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인구의 규모나 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본격적인 인구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 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 우려 등 미래에 대비한 사회구조조정을 현재의 법과 제도의 틀에서 과감하게 제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다"며 "힘과 지혜를 집중한다면 인구전략을 통해 예정된 인구변화의 충격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